한 가지 반찬뿐인데 투정 부리지 않고 밥 잘 먹던 날. 엄마가 김장을 담근 날이었다. 금방 버무려진 사설 바카라, 고슬고슬 지어진 하얀 쌀밥.엄마가 툭툭 찢어 준 사설 바카라에 밥 한 숟갈 먹으면 매콤하고 아삭아삭, 시원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한 숟갈, 한 숟갈 볼때기 불룩하게먹다 보면 순식간에 배도 불룩.
밥을 먹다 사설 바카라로 꽉 찬 커다란 통을 보고 말했다.
"엄마, 왜 이렇게 사설 바카라를 많이 담가?"
"겨울은 추워서 먹을 게 귀해. 쟁여 놓은 음식이 많은 게 좋거든." '쟁여놓다.'는말이 싫었다. 냉장고가 사설 바카라로 가득 차면얼마 후 엄마는 집을 비웠다. 겨울나기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 엄마가 쟁여 두는 음식. 그게 사설 바카라 같았다.매콤하고 시원하다가 시큼하고 시원찮게 변하는 맛도 싫었다. 금방 담근 사설 바카라 툭툭 찢어 줄 땐 진짜 엄마, 나 몰라라 집 비울 땐 가짜 엄마.변해가는 사설 바카라 맛이 꼭 변덕쟁이 우리 엄마 같았다.
시간이 흘러. 사무실에 일찍 출근하면뜨뜻한 믹스커피 한 잔 주시던환경 미화원아주머니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커피 한잔 건네받던 어느 날, 조금 미안한 얼굴로 아주머니가 말했다.
"저기..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요? 간단한 건데..."
12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
사정은 이랬다.대문 열쇠를 방안에 두고 출근해서 문이 잠긴상황. 사람을 부르자니 돈이 많이 드니까 담을 넘어 대문을 열어 달라는 것. 도둑처럼 남의 집 담장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우스꽝스러웠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 문을 열어 드리고 돌아가려는 데 아주머니가 커다란 통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사설 바카라 좀 먹어 봐요. 도와줬는데 따로 챙겨 줄 건 없고..."
큰 도움이 아니었기에 사양했지만 아주머니는 한사코 내 손에 사설 바카라통을 쥐어 주셨다.
큰 통에 여러 포기담긴, 신 맛과안 좋은 기억이 같이 버무려진 익은 사설 바카라.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주머니 사설 바카라는 달랐다. 시큼하지만 개운해서 자꾸 손이 가는 맛. 금방 담근 사설 바카라가 아니라신 사설 바카라로 밥 한 그릇 뚝딱 비운 건 이때가처음이었다. 양이 많아서 꽤 오래 먹었다. 볶아 먹고, 끓여 먹으면서.
살다 보니 엄마 닮은 사람들에게 사설 바카라를 많이 받았다.인사잘하고싹싹하다고 한 포기,아들 같다고한 포기,반찬없을까 봐한 포기. 한 포기씩 먹다가 사설 바카라의 신맛이 좋아졌다. 신맛이 좋아지니 숨은 맛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