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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도(Guido)와 함께 슬롯

9월의 한국은 날씨가 꽤 더웠다. 귀도(Guido)와 나는 다른 비행기표가 없어 일행보다 하루 일찍 한국에 도착했다. 우리 둘은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만 넣어두고 반나절동안 슬롯 구경을 하기로 했다. 슬롯이 처음인 그는 나름 출장에 본인의 휴가까지 더해 마음먹고 한국을 여행하려 했다. 일본은 몇 차례 여행한 적이 있다며 그는 두 나라의 차이를 신기해했다.


귀도와 나는 예전 사무실에서 동료로 처음 만났다. 수년간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안 슬롯 작업한 적은 몇 번 없지만, 서로의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뒤 그는 다른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고 그동안 별다른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3년, 내가 그가 일하는 사무실로 이직하며 우린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됐다.


우리가 처음 슬롯 일한 프로젝트는 놀랍게도 서울숲에 세워지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유럽 사무실의 일원으로 한국의 공모전에 참여하는 것은 짜릿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공모전의 규모가 큰 만큼 여러 명의 팀원들이 슬롯 각자의 역할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최종 발표를 위해 귀도와 팀 몇 명과 슬롯 한국에 방문하게 된 건 나에겐 큰 선물과도 같았다.


베를린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는 구글 맵에 방문하고 싶은 장소를 가득 저장해 왔다. 그중 제일 방문하고 싶었던 건물은 청담동에 위치한 송은아트센터였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동네 구경도 슬롯 할 겸 택시에서 멀찍이부터 내려 좀 걷자고 했다. 청담동의 언덕을 건물의 주변도 보고 멀리서부터 사진을 찍고 싶었다. 늦더위는 금세 갈증을 느끼게 했다.


“우리 더운데 차가운 커피 한잔 할까? 슬롯에는 스타벅스가 많은데 스타벅스 가도 괞찮아?”


그의 평소를 생각했을 때 그는 아니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성격이라 차라리 분명하게 질문하는 게 낫다고 생각슬롯. 이탈리아 사람도 스타벅스에 가냐는 질문에 그는 크게 웃으며 대답슬롯.


“나 실은 런던에서 스타벅스 알바도 했었어. 전혀 상관없어. 가자.”


일할 때만큼이나 까도 까도 재미난 구석이 많은 그에게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건네며 커피와 이탈리아인의 농담을 건넸더니 박장대소를 한다. 시원한 수분과 슬롯 청담동 길에 다시 올라 헤르족 드 뮤론(Herzog de Meuron)의 송은아트센터를 마주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뾰족한 지붕은 건축법규로 인해 영향받은 주변 다른 사선 지붕들을 무안하게 한다. 박공지붕도 그들에겐 흥미로운 주제였던 모양이다.


널찍한 청담대로를 향해 반듯하게 수직으로 자리한 입면의 중앙창은 건물의 비율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마음껏 느끼게 해 준다. 번잡한 강남 한복판에 필요와 멋을 모두 갖춘 여유로운 운율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콘크리트의 물성이 사진보다 대단하다. 입면 재료 구현을 위해 평소에도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로 유명한 이 건축사무소는 그들의 첫 슬롯 작업에서도 어김없이 익숙한 ‘새로움’을 보여줬다.


슬롯와 구석구석 사진을 찍으며 생각에 잠기길 반복하니 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아까워 가까운 봉은사로 안내했다. 내가 유럽의 어느 국가를 가면 성당과 구시가지를 궁금해하듯, 그도 동양적인 무언가를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봉은사와 그 주변 삼성동의 조화는 마치 유럽의 구시가지의 한가운데 위치한 고딕성당 옆에 마천루가 들어선 모양일 테다.


다음 날 우리는 점심 후에나 도착할 예정인 일행을 마중하기 앞서 안양을 다녀왔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는 이미 한국에 여러 차례 다양한 작업을 슬롯. 그중에서도 우리는 그의 한국 첫 작업에 해당하는 안양 파빌리온으로 향슬롯. 평소 ’ 시적인 표현‘이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는 시자의 건축과 파빌리온이라는 비일상적인 기능은 압축적인 외관으로 아주 잘 표현되었다.


오후 느지막이 도착한 나머지 일행과는 서울의 ‘궁’으로 안내를 했다. 5개 궁 가운데 적어도 한 군데는 슬롯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다. 일행의 강한 요청에 부랴부랴 창경궁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창경궁 앞마당에서 처마와 결교방식을 놓고 한참이나 떠들면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도시의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 신기하다. 나에게 익숙한 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한국에 외국인 친구들과 (물론 정확히는 친구 1명이자 동료 1명, 상사 2명과 협력업체 직원 1명이었다.) 방문하는 건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살 때는 그 정도 친분을 가진 외국인 친구가 없었고, 유럽에 사는 동안에는 내가 가기에도 벅찬 한국을 누군가와 슬롯 갈 일은 더더욱 없었다. 서울 한복판의 대규모 공모전에 한국인으로 외국 사무실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 것은 그만큼 나에게도 신기한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공식 일정을 마친 우리는 각기 다른 비행기로 베를린에 돌아갔다. 제일 먼저 출국이었던 나는 슬롯에게 내 한국 카드를 건네며 일렀다. 그의 독일 카드는 대부분 사용하는데 문제없었지만 유독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작동이 잘 안 됐기 때문이다. 택시 이용후에 갑자기 지불이 되지 않으면 난감할 것이다. 알바로 시자의 건축을 보러 파주까지 가겠다는 그에게 나는 흔쾌히 카드를 건네며 베를린에서 맥주나 한 잔 사라고 권했다.


해산물이 어디에나 풍족한 한국은 그에게 한국은 재미난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끊임없이 울려대던 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보는 나조차도 재미있었다. 어떻게 찾았는지 모를 근사한 식당과 장소를 누비는 그를 보며 한국을 장 즐겨준 것이 고마웠다. 슬롯에서 만난 이들을 아주 친절하게 기억하는 그가 대단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이번 주말, 연말을 맞아 그가 그려낼 멋진 건축을 상상하며 올해 마지막 인사를 메시지로 건넸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참을 사소한 수다를 떨다 연말 인사로 대화를 마무리슬롯. 다음에 또 어떤 인연으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언제 어디서 만나던, 맛깔난 건축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그와의 만남은 항상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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