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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꽁 머니께 못다한 이야기

추석에 요양원에 계신 시슬롯 꽁 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슬롯 꽁 머니 저예요.

슬롯 꽁 머니 며느리. 슬롯 꽁 머니 면회 갔다가 한 마디도 못하고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하고 밍숭 맹숭 싱겁게 서 있다만 만 왔네요. 그나마 얼굴도 절반은 마스크에 가려서 슬롯 꽁 머니 내 얼굴 기억이나 하실는지...염려 되었어요.


슬롯 꽁 머니 귀가 살아 있을 때

저 말해주고 싶었어요. 슬롯 꽁 머니 들을 수 있을 때, 내 말 전할 수 있을 때 들려드려야지... 매번 다짐 하지만 이 날도 역시 오두커니 서 이발걸음만 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네요.


슬롯 꽁 머니슬롯 꽁 머니 손이라도 제대로 잡아 드리고 올걸... 매번 후회한다.


저는 슬롯 꽁 머니께 고마운 것이 많아요.

예전엔 몰랐는데,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더라고요. 제게 주신 사랑.

옛날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 고쟁이 안 속에 며칠 씩 묵었던 사탕 한알이, 그 안에서 나오던 만 원짜리 한 장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아요. 슬롯 꽁 머니께도 그런 할머니의 사탕 같은 사랑을 저 많이 받았거든요.


그땐 몰랐어요.

슬롯 꽁 머니에게 귀한 걸 내게 주신 걸

내 맘에 들지 않아도 마땅치 않아도 그게 슬롯 꽁 머니 마음이고 사랑이었다는 걸요.


슬롯 꽁 머니, 저는 슬롯 꽁 머니 음성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사실 떠오르는 단어는 많지 않아요.


제가 슬롯 꽁 머니! 하고 부르면

'응'

'하~'

'아 그렇지'

'음 하하하하'


이런 의성어 같은 것들이 떠올라요.

그냥 그렇게 있어주시던 슬롯 꽁 머니, 늘 부축해 드려야 함께 걸을 수 있었던 슬롯 꽁 머니

나란히 함께 걷던 그 길 위에 나누었던 슬롯 꽁 머니와의 시간들이 춘천 곳곳에 남아 있어요. 슬롯 꽁 머니 메아리처럼 제가 속삭입니다. 슬롯 꽁 머니의 웃음이 멀리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것 같아요.


슬롯 꽁 머니, 슬롯 꽁 머니 뵙고 오던 추석 전날 그날도 그랬어요.

슬롯 꽁 머니 계신 요양원이 명동 한가운데 있잖아요. 우리 슬롯 꽁 머니는 아실까? 춘천서 가장 번화한 그곳에 슬롯 꽁 머니 떡 하니 누워 계신걸...


명동 골목길을 저는 결혼하고 처음 가봤지요.

서울 살던 서울사람이 처음 본 춘천 명동은 얼마나 작았게요. 제게는 작고 시시한 명동 거리가 슬롯 꽁 머니께는 데려갈 수 있는 춘천의 가장 번화한 도심이었다는 걸 몰랐지요. 15년의 세월 동안 명동의 거리도 많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몇 곳은 그대로 남아있네요. 은지 임신했을 때 내 손을 잡고 슬롯 꽁 머니는 비너스 속옷 가게를 찾으셨어요. 한 벌에 15만 원이 넘는 속옷 세트를 두 세트 사주셨지요. 이런 비싼 속옷은 입어 본 적이 없었어요. 겉 옷은 명품을 입어도 남들이 보지도 않는 속옷에 이런 거금을 들이기가 저는 많이 아까웠거든요.


'아이참, 슬롯 꽁 머니 쓸데없이 왜 이런데 돈을 쓰시지? 차라리 이 돈을 내게 주었다면 나는 임산부 속옷도 사고 내 옷도 한벌 샀을 텐데...' 슬롯 꽁 머니의 행동에 저는 늘 계산기를 들이대며 실속을 챙겼더랍니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 슬롯 꽁 머니께 받은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신기합니다. 슬롯 꽁 머니께서 주려고 했던 마음이 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거든요.


"애야. 속옷만큼은 편하고 좋은 걸 입어라.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네가 무엇보다 제일 편안해야 해. 임신하면 여자 몸도 많이 변하고 불편해질 거야. 그러니 속옷만큼은 명품이어야 해. 임산부를 위한 속옷을 말이다. 달라야 하거든. 아무거나 입어서는 안 돼. 잘 만든 회사에서 제대로 만든 속옷이 네게 앞으로 필요할 거야.


축하한다. 며느리. 그리고 고맙다. 내 손주 품어주어서..."


슬롯 꽁 머니 마음이 아마도 이랬을 거라는 거... 지금에야 추측해 봅니다.

슬롯 꽁 머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편지를 써 볼라구요.

다음 번 면회는 식구들 한 명씩 신청해 보자 했어요. 우르르 몰려가 아무말도 못하고 온다고...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말도 많은데... 창피해서 입도 벙긋 못하고 오거든요. 아마 은지 아빠도 비슷할거에요. 슬롯 꽁 머니 가장 사랑하는 아들... 하지만 슬롯 꽁 머니 아들이 표현 잘 못하는거 아시잖아요. 그날도 슬롯 꽁 머니 한번 안아드리고 오라고 그러라고 했는데,결국 슬롯 꽁 머니 손만 멀슥하게 잡아 보고 팔 한번 벌려 보지도 못하는걸 제가 봤잖아요.


준비한 말도, 그동안 못다한 감사함의 표현도 우리 남편 쑥스러워서 못해요. 평소 이야기 잘 하던 저도 이러는 걸요. 그래서 앞으로 슬롯 꽁 머니 한 사람씩 보자고 했어요.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을 때 울 슬롯 꽁 머니 들을 수 있을때 꼭 전해 드리자고. 그래야 한다고...


슬롯 꽁 머니 다음 번엔 제가 이 편지 읽어 드릴께요. 그리고 앞으로 슬롯 꽁 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 있으면 이렇게 써서 기억할래요. 잊지 않고 꼭 전할 수 있게...


슬롯 꽁 머니, 잘 자요.

같은 하늘 아래 슬롯 꽁 머니 계심에 감사하며, 슬롯 꽁 머니 사랑을 포근한 이불 삼아 저 다시 잠들랍니다.

굿나잇 이정희 여사님

어머님도 편안히 주무세요.


2024. 09.19

AM 3:34 슬롯 꽁 머니 며느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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