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비스! 그녀를 깨워줘!
로봇청소기와 함께한 2일
아이가 평일에 잠시 시댁에 있기로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신랑이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해지더니 말했다.
파라오 슬롯;로봇청소기가 있어야 겠어.파라오 슬롯;
파라오 슬롯;갑자기 왜. 집에 무선 청소기도 있고 다이슨 청소기도 있는데.파라오 슬롯;
파라오 슬롯;청소기 돌려놓고 외출하면 침대 밑 먼지까지 다 처리해 준다잖아.파라오 슬롯;
음, 이거, 아이의 스케줄과는 처음부터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 뭘 사달라고 한 적 없고 검소하고 착한 신랑이라, 마음에 드는 걸로 사라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아침, 링크를 두개나 보내왔다.
그는 이미 들떠있다. 말릴 수 없다. 사고 싶은 걸로 사라고 예산 승인까지 해줬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신랑의 처갓집이었다. 베푸는 걸 좋아하는 친정엄마가 우리 얘기를 듣더니 친정에서 놀고 있는 꽤 비싼 로봇청소기를 빌려준 것이다(심지어 마음에 들면 가지라고까지). 캡틴 아메리카 방패 모양 청소기는 이제 안녕인 것인가.
파라오 슬롯;신랑아, 이걸로 한번 체험해 보고, 좋으면 마블 로봇청소기 사자, 응?파라오 슬롯;
파라오 슬롯;응, 뭐, 써봤는데 로봇청소기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써보지 뭐.파라오 슬롯;
살살 달래서 예의 로봇청소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 싶은 거 못 사서 좀 서운한가? 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신랑은 로봇 청소기 리모콘으로 오른쪽 왼쪽 뒤로 앞으로 조종을 해보더니, 충전기로 복귀하게 하는 것까지 실험을 해보고서 씩 웃었다.
파라오 슬롯;이거, 무선자동차 생긴 어린아이 같은데?파라오 슬롯;
파라오 슬롯;가만 있어봐. 쟈비스. 집을 청소해줘.파라오 슬롯;(버튼 꾸욱/부웅)파라오 슬롯;쟈비스, 집(충전기)으로 돌아와.파라오 슬롯;(버튼 꾸욱/부웅)
파라오 슬롯;좋아?파라오 슬롯;파라오 슬롯;응응, 너무 좋아!파라오 슬롯;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이 없이 자려니 왠지 어색하고 기분도 묘해서 그랬던 것 같다. 신랑이 몇번 깨우더니 포기하고,파라오 슬롯;30분 있다가 꼭 일어나야 해.파라오 슬롯;를 외치고 출근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계속 잠의 끝을 부여잡고 단잠을 자고 있는데 방안에서 갑자기 부웅, 슉, 쿵 하는 낯선 소리가 들렸다.파라오 슬롯;뭐야, 깜짝이야!파라오 슬롯;정신이 들어보니, 로봇청소기 쟈비스- 님이셨다. 신랑이 쟈비스에게파라오 슬롯;나 출근하고 방 청소좀 해줘. 그리고 헤롱헤롱 하는 와이프도 좀 깨워주고.파라오 슬롯;하고 시키고 갔단다. 고마워요. 쟈비스, 덕분에 지각을 면했네요.
(아래 일러스트는 신랑이 솜씨) 그는 그저께부터 코난 <제로의 집행인을 보겠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배경사진 출처는 여기: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767716&memberNo=19850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