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기억
슬롯 머신차츰늙어간다. 어느순간부터자랄만큼다자라, 더크지않는다. 충분한양의치아가잇몸에서자라고, 젖살이빠지고, 골격이잡혀단단해졌다. 삶의습관이굳어자세로드러나고, 머리숱이줄고, 어깨의균형이맞지않는다. 몸이많이야위었다. 운동하고난뒤, 체내의수분이빠진몸처럼피부결이푸석하다. 언제부턴가조금씩진행되어온탓에그과정을알수없게된것처럼, 우리는우리도모르는사이하루도빠짐없이늙어간다. 시간이관여하는일은대체로슬프고, 몸도예외는아니다. 가끔영영젊어질수없다는말은, 마치매일매일슬픈것을보게될것이라는뜻처럼들린다.
그렇게 젊음이 바삐 지나가느라 비행운처럼 남긴 몸의 흔적을 더듬는다. 늙음은 꼭 시간이 몸에 입힌 찰과상 같다. 지금 여기의 1인칭으로 사는 우리로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월의 자국을 3인칭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견한다. 지난해, 슬롯 머신 너무 불안했고, 그래서 여분의 삶을 사는 사람처럼 잠을 자지 못했고, 몸 구석구석엔 붉은 반점이 열꽃처럼 피고는 했다. 입도 자주 헐었다. 그 통증 탓에, 슬롯 머신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즈음, 사진에서 내가 늘 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이유였다. 누군가는 그 사진을 보곤 웃었지만, 당시 내 애인은 웃지 않았다.
내가 한 시절을 몸으로 앓으며 지나왔을 때, 문득 그때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몸을 봐왔겠구나 싶어진다. 어쩌면, 슬롯 머신은 나보다 내 몸을 더 오랜 시간 봐 왔을지도 모를 일. 돌이켜 보면, 내 손에 핀 작은 점과 균형이 맞지 않는 어깨를, 살갗에 배긴 굳은살과 내 몸의 터무니없는 연약함을 먼저 알아차린 건 늘 슬롯 머신이었다. 평생을, 단 하나의 시점으로 사는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고, 그래서 이따금 내 맨몸이 녹음된 목소리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몸에 관한 서로의 추억이 많을수록 애틋한 관계일 거라고 믿는다. 제 몸의 사연을 주저 없이 고백할 수 있는 사이라면 더더욱. 몸에 새겨진 흔적은 대체로 깊게 앓았거나 아팠던 자국일 테고, 그 사정을 털어놓는 건 곧 삶의 한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슬롯 머신 등에, 오른발 뒤꿈치에 난 상처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웃으며 미간을 좁히는 버릇이 있고, 나는 당신이 울기 전 짓는 표정의 낌새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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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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