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전문점 캔모아에서 알바를 했었다. 알바라고 해봤자. 하루종일 과일을 까는 일. 내 몸이 들어갈만한 갈색 고무다라를 앞에 놓고 이름도 모르는 애들과 목욕탕 의자에 앉아 과일을 깠다. 하루 종일.
한 번은 고등학교 같은 반 애들이 캔모아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주방 한편에서 쪼그려 앉아서 키위를 까는 나를 봤고 여자애 하나가 나를 "야 거지 거기서 뭐 하냐."라고 했다. 한참 동안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더니 캔모아를 나갔다. 캔모아 문에 달린 종들이 서로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멍들어서 누렇게 변해버린 사과 한 귀퉁이를 칼로 도려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냥 멍든 부분만 도려냈다. 울지는 않았다. 울면 진짜 내가 거지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거든.
망했다고 생각했다. 생과일 전문점에서 과일이나 까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아니 뭐 미래가 있기나 할까? 미친. 나는 과일을 까면서 나도 깎아내렸다.
캐나다에 와서 슬롯사이트 보스 한 적이 있다. 필리핀 친구랑 방 한편에 있는 도미노가 있길래 그거나 하면서 시간이나 때우자면서. 하나씩 두 개씩 슬롯사이트 보스 세웠다. 빙글빙글 달팽이 집처럼. 그렇게 만든 슬롯사이트 보스 열심히 하다가 순간의 실수로 도미노가 촤르륵 넘어갔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고 친구가 그러더라. "여기 이렇게 일어서서 도미노 쓰러진 거 봐봐. 이것도 예술이야." 나는 마지못해 걔가 시키는 대로 까치발을 들고 다 쓰러진 슬롯사이트 보스 내려다보았다.
엉망진창으로 쓰려졌던 슬롯사이트 보스가 하나의 물결처럼 되어 있었다. 무너짐이 만든 곡선은 처음 우리가 만든 것보다 더 멋있었고.
그걸 보며 나는 '쓰러진 슬롯사이트 보스도 멋있을 수 있네.' 생각했다.
삶은 슬롯사이트 보스 같았다. 쓰러지고. 다시 세운다. 한동안은 쓰러진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주저앉기도 했다. 나 스무 살 때. 그리고 나 마흔 살 때.
쓰러진 슬롯사이트 보스처럼삶도 어느 시선에서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망했다고 생각했던 도미 도니 내려다보면 예술작품이 되었듯. 망했다고 생각했던 삶의 부분들이 모여 단단한 나를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