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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머신 프로그램 처음에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여겼고, 두 사람이 계속 진지하게 그 말을 하자 그들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이라니까요!”

박준식이 소리를 질렀다.

“석정 사랑 일당이 전국 곳곳에서 여러 범죄를 저질러서 경찰이 예전부터 놈들을 주시하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드디어 잡힌 거죠.”

“정말 아슬아슬했다고 합니다. 놈들이 좀 있으면 활동을 접고 소화 본토로 돌아가려고 했대요. 그 직전에 용산 경찰이 잡은 거죠.”

이태민이 옆에서 설명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난, 난......”

그는 입을 달싹거렸다.

“난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슬롯 머신 프로그램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나는 거라고......”

슬롯 머신 프로그램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장님? 괜찮으신가요?”

이태민이 걱정스럽게 묻자 박준식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아무래도 너무 좋아서 제정신이 아니군요?”

“다들 잠깐만 밖으로 나가 주실래요?”

“네?”

“잠깐 생각을 좀 하고 싶어서요. 부탁입니다.”

박준식과 이태민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문을 닫고 문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믿을 수 없는 행운이 다시 찾아왔지만, 그는 이 기회를 잡는 게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이제 포기하는 쪽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와서 자신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는 두려움에 떨며 생각했다.

‘또 여의주를 잃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내가 결국 주문을 완성하지 못하면?’

도대체 난 지금 왜 이러는 걸까? 다시 책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이 생겼는데 왜 이러는 거지?

‘왜냐하면...... 난 이제 희망이 두렵거든.’

그게 문제였다. 그는 거듭된 좌절 끝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석정 사랑에게 여의주를 빼앗기고 김구름이 의식을 잃은 후로 그의 마음은 책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다. 책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떨어져나가기 직전인 살덩어리를 다시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태민과 박준식은 여의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그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그는 자신에게 다시 시작할 힘이 남아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빚 때문에 다리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빚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서 삶에 대한 애착이 솟아나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그렇게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빠르게 반추했다.

마법사의 꿈을 품기 시작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죽음과 자퇴, 주문을 쓰던 수많은 나날들, 그리고 불사신 서점에 들어온 이후......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까지 책을 한 권도 쓰지 못했구나. 최고의 책을 쓰는 게 평생의 꿈이었지만,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했구나.’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네 꿈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이대로 포기한다면 말이야.

그는 다시 이센스의 노래 가사를 떠올렸다.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 게 있어. 그것만 찾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

이 가짜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쩌면 나 자신도 대부분 거짓과 어설픔으로 이루어진 몸뚱이에서, 나는 진실한 뭔가를 내 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반드시.

슬롯 머신 프로그램 주먹을 쥐었다.

포기하지 말자.

살아있는 한, 포기하지 말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이태민과 박준식은 응접실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나타나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좀 어떠세요?”

이태민이 물었다.

“여러분, 갑시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말했다.

“네? 어디로요?”

“붕새의 여의주를 찾으러 가야죠.”

슬롯 머신 프로그램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책을 만들어 봐요.”


그들은 간단한 짐을 꾸려 용산으로 향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두 직원과 세 명의 경호원과 함께 용산행 기차를 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기차 안에서 수첩을 꺼내 주문을 썼다. 주문을 구상하는 것은 붕새의 여의주를 빼앗긴 후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주문을 쓰면서 다시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기차 안에서 박준식은 간식을 한아름 사서 경호원들과 나눠 먹었다. 그 옆에 앉은 이태민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뭐가요?”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물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용산에 소화가 지은 거대한 포로수용소가 있잖아요. 아시아 전쟁에서 끌고 온 포로들을 가두는 곳 말이에요. 뉴스를 보니까 소화에서 지금 수만 명의 노예들을 그곳으로 옮기고 있대요.”

“전쟁 포로가 아니라 노예들을 포로수용소로 옮긴다고?”

박준식이 물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일까?”

“노예들을 이용해서 수용소를 공사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노예들에게 무슨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포로들과 함께 수용소 안에 집어넣고 있대요. 사실 석정사랑이 잡힌 이유도, 전국 곳곳에서 숱한 범죄를 저지르던 석정 사랑이 포로수용소에 노예를 납품하는 일에 돈 냄새를 맡고 용산에 와서 일을 벌이려다가 탐정들의 눈에 띄어서 용산 경찰이 잡은 것이거든요. 제국은 왜 노예들을 옮기는 걸까요? 아무래도 이상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이상하군.”

박준식이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근데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는 일단 책을 만드는 거나 신경 쓰자고. 용산 경찰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간다고 말은 했지?”

“당연히 했지.”

“요즘 제국의 전쟁 소식은 어때요? 새로 뜬 뉴스가 있나요? 제가 그동안 뉴스를 안 봐서요.”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물었다.

“소화를 제외한 다른 추축국 동맹국들이 전부 항복한 거 아세요?”

이태민의 말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 깜짝 놀랐다.

“정말요?”

“어? 모르셨어요?”

옆에 있던 박준식이 끼어들었다.

“그건 최근 일이잖아. 사장님은 몇 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모를 수도 있지.”

“아, 모르셨구나. 소화를 제외하고 추축국들이 모두 항복했어요. 이제 연합군에 저항하고 있는 건 소화뿐이에요.”

“와, 그랬구나......”

슬롯 머신 프로그램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럼 잘하면 우리나라도 수십 년간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길 바라야죠. 제국이 빨리 무너져야 강점기가 끝날 테니까요.”

“혹시 제국이 노예들을 모아서 용산의 포로수용소로 보내는 것도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박준식이 과자를 씹으며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제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태민의 말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 주문을 쓰던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열차가 용산역에 도착했다. 경찰서는 용산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포로수용소 역시 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던 터라 이곳의 분위기는 다소 황량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일행은 경찰서에 들러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경찰은 그들을 물품 보관소로 데려갔다.

“여기 있는 것들이 석정 사랑 일당에게서 압류한 것들입니다. 혹시 이 중에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그것은 한 눈에 들어왔다.

“네! 이거예요.”

박준식이 달려가서 투명한 구를 들어 올렸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과 이태민도 그 물건을 살펴봤다.

확실했다. 붕새의 여의주였다.

“이게 맞습니까?”

슬롯 머신 프로그램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경찰에게 맞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뒤 여의주를 넘겨받았다. 경찰은 그 물건을 그저 값비싼 장식품으로만 알고 있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일행은 여의주를 들고 경찰서를 나왔다. 박준식은 만세를 하며 외쳤다.

“만세! 다시 여의주를 되찾았다!”

“축하드립니다.”

경호원들이 옆에서 박수를 쳤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여의주를 품에 꼭 껴안았다.

“이제 다시는 잃지 않겠어.”

슬롯 머신 프로그램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다시 서점으로 돌아가시죠.”

“에이, 뭘 그렇게 서두르세요. 우리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이 근처에서 뭐 좀 먹고 가요.”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말에 박준식이 말했다.

“기차 안에서 과자를 그렇게 먹었으면서 배가 고프냐?”

이태민이 핀잔을 줬다.

“과자랑 밥은 다르다고. 넌 배 안 고프냐?”

“물론 고프지.”

그러자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말했다.

“그럼 점심부터 먹고 가시죠. 안 그래도 지금 점심때가 한참 지났긴 했으니까요.”

그들은 근처에 있던 식당에 들어갔다. 박준식이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매운탕 집에 들어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자리에 앉아서도 여의주를 넣은 가방을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안고 있지 않으셔도 돼요.”

이태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도 아는데 그냥 불안해서요.”

“하하! 사장님,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흑마법서를 씁니까?”

박준식이 먼저 나온 밑반찬을 집어 먹으며 웃었다.

가게 안에 걸려 있는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연합군은 추축국 동맹을 모두 무너뜨리고 이제 유일하게 항전 중인 소화 제국에게 즉각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황제는 오늘 아침 공개적으로 항복을 거절했다. 황제는 제국은 끝까지 싸울 것이며 아시아의 통일이 머지않았으니 모든 제국인들이 한 마음으로 싸울 것이라 역설했다.

“미친 새끼.”

이태민이 중얼거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래봐야 자기들만 더 힘들어지지.”

박준식도 거들었다.

“황제도 알 거야.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걸. 제국은 옛날부터 가망이 없었어. 전쟁도 너무 오래 했잖아.”

“근데 저렇게 자신만만한 게 이상하지 않아?”

이태민의 말에 박준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네 말대로 미친놈인 거지. 제국 전체가 미쳤어. 전쟁 때문에 모든 걸 쥐어짜내서 답이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잖아.”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왕이었다.

“저 잠시 통화 좀.”

슬롯 머신 프로그램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윤아, 무슨 일이야?”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슬롯 머신 프로그램 웃음을 터뜨렸다.

“중요한 일이었네.”

“여의주는 찾았어?”

“찾았어.”

여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정말 다행이다.”

“그러게. 나도 꿈인지 생시인지 싶어.”

“그럼 이제 다시 책을 만들 거지?”

“응, 다시 시작하려고.”

슬롯 머신 프로그램 힘주어 대답했다.

“지금까지 한동안 너무 우울하게 살았는데, 이걸 되찾으니까 다시 희망이 생기네. 물론 희망이 생겨서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다시 시작할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네가 기운을 회복해서 너무 다행이다.”

여왕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묻어났다.

“네 덕분이야. 네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준 게 큰 힘이 됐어.”

“하하, 내가 뭘.”

“이제 주문도 거의 다 써가고 있거든. 아마도 조만간......”

그 때 갑자기 어떤 사람과 부딪히는 바람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그는 땅에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들었지만 이미 통화는 끊긴 뒤였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사람은 사과도 없이 계속 미친 듯이 달려가며 멀어지고 있었다.

“뭐야......”

혜성이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또 다른 사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뒤를 돌아봤다.

맞은편 길가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지나쳐 계속해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밖에 무슨 일이에요?”

이태민이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람들이 막 뛰어가는데......”

그 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식당 안에 앉아 있던 직원들과 경호원들도 밖으로 나왔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로부터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똑같은 회색 옷을 걸치고 있었다. 달리던 사람 중 한 명이 지나가던 차에 치였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그 모습에 헉 하고 놀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도로와 인도를 가로질러 계속해서 정신없이 달려갔다.

“이게 무슨 일이죠?”

이태민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물었다.

“그러게요. 마치 다들 뭔가로부터 도망치는 듯한......”

그때 건물 사이의 도로에서 커다란 군용 트럭들이 튀어나왔다. 여러 대의 트럭은 순식간에 대로 가운데를 막아섰다. 차가 멈추자마자 트럭에서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뛰어 내렸다. 제국군이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몽둥이로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최루탄을 발사했다. 최루탄 여러 개가 도로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공자님, 저희도 피해야겠습니다.”

경호원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잡아끌었다. 다른 두 경호원과 두 직원도 뛰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박준식이 소리쳤지만 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의 대부분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지만 일반 시민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 때 도로 앞에서 또 다른 군용 트럭이 나타났다. 트럭에서 내린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앞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은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다.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 소리가 터졌다.

“이쪽으로!”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손을 잡은 경호원이 방향을 꺾어 다른 길로 뛰어 들어갔다.

“더 빨리 달려요!”

경호원이 외쳤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나한테......”

“빨리 와요!”

경호원이 박준식의 말을 끊고 외쳤다. 몸집이 작은 박준식은 가방을 멘 채 헐떡거리며 간신히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지?”

“일단 역 안으로 들어갑시다!”

경호원이 그들의 손을 잡고 역으로 이끌었다. 그 때 군인 한 명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군인은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게 냅다 몽둥이를 내리쳤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미처 피하지도 못하는데 경호원이 재빨리 군인의 팔을 막았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군인의 팔을 꺾은 뒤 몸통을 들어 던져 버렸다.

“공자님, 어서.”

경호원은 다시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팔을 잡고 달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군용 트럭 한 대가 달려와 지나가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트럭에서 내린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차 문을 열더니 운전자를 진압봉으로 때리면서 밖으로 끌어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일행은 용산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역 안은 이미 군인들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회색 옷을 입은 사람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제국군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어요! 우린 간신히 탈출했고요!”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제국군이 가스실에서 사람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고요!”

사람들은 언제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들이닥칠지 몰라 겁에 질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지쳐서 벽에 기대고 있거나 주저앉은 사람들도 보였다.

“사장님! 사장님!”

그 때 박준식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저에게 차원문 생성 장치가 있어요!”

“네? 지금 그게 있다고요?”

“그동안 이런저런 사건을 하도 많이 겪었잖아요. 그래서 혹시 몰라서 올 때 그걸 가져왔어요. 이걸로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을 서점 안으로 피신시켜요.”

“힘들지 않을까?”

옆에서 이태민이 말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려면 차원문을 한참 켜둬야 하는데 그럼 서점의 마력이 다 떨어질 거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지.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봐야 할 거 아니야!”

박준식의 말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대답했다.

“좋아요, 일단 빨리 차원문을 생성합시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들어오기 전에 일단 역 안에 있는 사람들부터 구해야 해요.”

박준식은 가방에서 차원문 생성장치를 꺼냈다. 그들은 차원문의 크기를 최대한 크게 설정한 다음 사람들로 북적이는 역 안에서 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허공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반원이 생겨났다.

갑자기 생겨난 차원문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실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슬롯 머신 프로그램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저희는 불사신 서점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이 차원문을 이용해서 서점 안으로 여러분을 순간이동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안전을 위해서 이 문 너머로 대피해 주세요!”

사람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혜성을 쳐다만 볼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다시 외쳤다.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 지금 오고 있어요! 서점 안은 안전하니 모두 이곳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슬롯 머신 프로그램과 직원들은 목청껏 외쳤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망설였지만 하나 둘씩 차원문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부장님이랑 차장님은 먼저 서점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통솔해주세요. 경호원 분들이랑 저는 사람들을 계속 들여보낼게요.”

“알겠습니다.”

이태민과 박준식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 경호원들에게 역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혜성 역시 역의 2층과 3층을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외쳤다.

“여러분, 1층에 불사신 서점으로 들어가는 차원문이 있습니다! 모두 이리로 대피하세요!”

그 중 상당수는 혜성을 선뜻 따라오지 않았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그런 그들에게 매달렸다.

“제발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게 잡히기 전에 오셔야 돼요!”

경호원들도 바쁘게 오가며 사람들을 이끌고 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과 경호원들은 양 떼를 몰듯 차원문 안으로 사람들을 부지런히 몰아넣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목이 터져라 외치며 뛰어다니다가 구석에 아이들 몇 명이 모여 있는 걸 발견했다. 꼬마 셋이 겁에 질린 채 기둥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얘들아, 너희들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 중 한 명이 말했다.

“몰라요.”

“모른다고? 부모님이랑 여기서 헤어진 거야?”

그러자 꼬마 한 명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른 두 명은 고개를 저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단 날 따라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자.”

슬롯 머신 프로그램 아이들을 데리고 차원문 쪽으로 향했다.

차원문 앞은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경호원 한 명이 차원문 옆에 서서 사람들에게 밀치지 말고 들어가라고 외쳤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앞에 있던 도깨비 여자 한 명을 붙잡았다.

“죄송한데 이 아이들 좀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주시겠어요?”

여자는 알겠다고 말하며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다시 몸을 돌리다가 역 바깥에 군용 트럭이 들어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소리쳤다.

“제국군이 오고 있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그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사람들은 서로 마구 밀치며 차원문을 향해 달려갔다.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이 역을 향해 뛰어왔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자신도 차원문 쪽으로 가려다가 정문 앞에 어린 인간 소녀 한 명이 넘어진 채 울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차원문 근처에 있던 경호원을 불러서 메고 있던 가방을 던졌다. 붕새의 여의주가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이걸 갖고 부장님에게 가세요! 지금 당장!”

“공자님은요?”

“저도 곧 들어갈게요!”

그렇게 말한 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아이가 있는 정문 쪽으로 달려갔다. 정문은 차원문의 정반대 방향이었다.

아이는 넘어져서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재빨리 아이를 일으켰다.

“착하지, 빨리 가자.”

슬롯 머신 프로그램 아이를 안고 차원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 때였다.

차원문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차원문은 작은 크기를 잠깐 동안 생성시키는데도 엄청난 마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커다란 크기의 차원문을 계속 열어두자 서점에 내장된 차원문 생성용 마력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역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거의 다 차원문 너머로 들어간 상태였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힘이 약한 그는 아이를 안고 뛰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의 등 뒤에서 군홧발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국군은 역 안으로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차원문 너머에 있던 경호원 한 명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 쪽으로 오려고 했지만 안으로 몰려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밀려났다. 어느새 커다란 차원문은 점점 줄어들어서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공자님!”

차원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어서 빨리!”

“가고 있......”

슬롯 머신 프로그램 헐떡거리며 내뱉었다.

군홧발 소리가 점점 커졌다.

“거기 서!”

뒤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야, 한 명도 놓치지 마!”

차원문은 이제 맨홀 뚜껑만한 크기의 구멍이 되어 허공에 떠 있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차원문을 향해 다이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 그러다가 나도 중간에 걸려서 이무기처럼 허리가 싹둑 잘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뒤에서 바짝 따라붙은 발소리를 느꼈다.

‘거의 다 왔어.’

그 순간 뒤에서 군인이 그의 머리에 곤봉을 내려쳤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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