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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광장과 신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유태인 구역을 둘러보았다면 다시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광장으로 나와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야할 거예요. 틴 성당 옆으로 넓은 길이 있는데 쩰레뜨나(Celetná)라는 이름의 길이죠. 이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프라하의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를 빠져나가게 돼요. 이 길의 끝에는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서 마지막으로 봐야 할 두 개의 건축물이 있죠. 바로 화약문과 시민의 집 건물이에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prašná brá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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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탑이라고 보통 알려져 있는 이 건축물의 정확한 번역은 ‘화약문’이에요. 왕의 대관식 행렬이 프라하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로 들어가는 입구의 역할을 했던 곳이죠. 까렐다리의 교탑과 비슷하게 생긴 이 문은 후기 고딕양식으로 만들어졌어요. 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475년이죠.

처음 이 탑이 만들어지고 나서 화약을 저장하는 곳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이용됐어요. 그래서 ‘화약’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가장 높은 전망대의 높이는 44미터고 탑 전체의 높이는 65미터구요.

원래 이 자리에는 호르스까 문(Horská brána)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건물이 서 있었는데 13세기 중엽에 파손되어 같은 자리에 이 문이 새롭게 만들어졌던 거예요.

이 문은 왕이 대관 행렬이 시작되었던 장소로서의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이 문이 초석이 놓인 것이 1475년인데 그 기초는 현재 지표면의 9미터 아래쪽에 위치해있다는군요. 나중에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를 에워싸고 있었던 해자가 메꿔지면서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입구 역할을 하던 이 문의 중요성도 낮아졌어요. 더욱이 15세기 중후반부터 당시까지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 있었던 왕의 거처가 다시 프라하성으로 옮겨져서 그 존재가치가 더 떨어졌구요. 이 문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가 1592년에야 비로소 완공을 위한 재공사가 시작되었지요. 이때 나선형 계단과 함께 새롭게 만들어진 입구가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그리고 18세기 초반부터 이곳에 화약을 저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화약문이라고 불리게 됐죠.

1757년에 프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이 문의 장식들이 파손됐고 1817년에 이 장식조각들은 다 제거됐어요. 1823년엔 시계가 설치되었었는데 이 시계도 나중에 철거돼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요. 지금의 모습은 1886년에 최종 마무리 개축이 신 고딕양식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건축가 요셉 모께르(Josef Mocker)에 의해 이루어진 당시의 모습이죠.

건물 외벽에 장식되어있는 것은 보헤미아의 주요 왕들이에요. 뽀뎨브라디 가의 이르지 왕, 블라디슬라브 2세, 프르제미슬 오따까르 2세와 까렐 4세의 모습이 각각 조각되어 있죠. 왕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장들은 그들이 통치했던 지역의 문장들이구요. 왕들의 조각상 위에는 날개달린 천사들과 프라하 구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문장을 지키고 있는 사자들이 조각되어 있어요.

그리스도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조각상도 보헤미아의 수호성인들과 함께 조각되어 있죠. 그 밖에도 ‘보라!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여. 정직한 이들에게 나는 어머니고 사기꾼들에게 나는 계모이니라. 사기꾼 너희들은 멀리 달아나고 선한자들은 내게 오라’ 라는 라틴어 글귀가 적힌 띠를 들고 있는 기사의 흉상, 아담과 하와의 모습, 성 베드로와 바울 등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우리가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 체크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정도만 설명하고 넘어갈게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집(Obecní dům)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오베쯔니 둠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집)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프라하와 봄이라는 말 많이 들어봤죠? 프라하가 어디에 붙어있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은 알고 있을 거예요. 이 말이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68년 8월에 일어났던 체코인들의 민주화 투쟁이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로 보도되기 시작하면서부터죠. 프라하에 왔다면 이 사건과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한 번쯤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설명할 프라하의 봄은 1968년의 민주화 운동이 아닌 또 다른 프라하의 봄이에요. 역사적으로도 먼저 있었던 일인데 그걸 설명해드릴게요.

매년 5월 12일부터 6월 4일까지의 약 3주 간 프라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의 선율 속에 휩싸여요. 바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 축제가 열리는 거죠. 길고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초록의 화사함과 따뜻함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프라하에서 봄의 분위기는 음악제라는 모습으로 절정을 이루는 것 같아요. 1946년에 처음 시작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축제는 70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체코인들에게 음악의 기쁨을 선사해 줬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종전과 해방의 기쁨 속에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창단 50주년을 맞이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의 음악제가 준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축제의 시작이었어요. 음악제가 처음 열리던 그 해 동서유럽과 구미 음악인들은 화합을 상징하듯이 각국에서 모여들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체코인들은 그 의미 있는 잔치의 주인으로 세계인들을 맞아들였죠.

음악제가 시작되던 1946년 5월12일은 체코인들이 가장 아끼는 음악가인 '베드르지흐 스메따나'의 서거 62주년이기도 했어요. 5월 11일 포스터(Foester)의 축제의 서곡 (Festive Overture), 오스트르칠 (Ostrčil)의 십자가의 길 (Křížová cesta),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의 교향곡 제 7번(7th Symphony)으로 축제 전야의 콘서트가 꾸며졌고 다음날인 12일엔 스메따나의 교향시 나의조국(Má Vlast)이 체코 지휘자인 ‘라파엘 꾸벨릭(Rafael Kubelik)’ 에 의해 오전 11시 루돌피눔에서 연주되면서 본격적인 축제의 막이 올랐어요. 다음날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축제 개막일, 5월 12일에 스메따나의 ‘나의조국’이 연주되었는데 축제 개막일에 ‘나의 조국’이 연주되는 것은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죠.

6월 4일까지 계속 이어진 축제 기간 중에는 3일 간의 ‘슬라브 음악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서 체코 현대 음악가들의 작품 34편이 연주되기도 했어요. 당시 초청되었던 음악인들의 이름만 살펴봐도 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얼마나 폭넓은 호응과 관심 속에서 이루어진 친선의 장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죠.

리오나드 번스타인(Leonard Burnstein)과 유진 리스트(Eugene List) (미국), 샤를 뮌슈 (Charles Munch),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 칼벳 콰르테(Calvet Quartet) (프랑스), 에이드리언 보울트(Adrian Boult), 모라 림파니 (Moura Lympany) (영국),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Yevgeny Mravinsky), 레프 오보린(Lev Oborin),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소련) 그리고 체코의 음악인들인 야로슬라브 끄롬브홀리쯔 (Jaroslav Krombholic), 라파엘 꾸벨릭(Rafael Kubelik), 얀 빠넨까(Jan Panenka), 프란띠셱 스메따나(František Smetana) 등 각국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의 이름이 이 첫 번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제의 프로그램 속에 나타나 있었어요. 그리고 24일 간의 음악제는 6월 4일 꾸벨릭의 지휘로 연주된 야나첵(Janáček)의 신포니에타(Sinfonietta)를 끝으로 막을 내렸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단 50주년과 2차 대전 종전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이 첫 번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제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그런데 사실 이 음악제는 단순한 1회적인 행사로 기획됐었고 어느 누구도 70년이 넘게 이어지는 축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첫 번째 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 매년 개최하기로 결정돼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제는 이제 세계인의 축제로 사랑받고 있죠.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의 오프닝 콘서트가 열리는 시민의 집은 공화국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화약문 옆에 세워져 있어요. 1905년에 건설되기 시작해서 1911년에 완성된 시민의 집은 프라하의 대표적인 아르누보양식의 건물로 체코의 두 건축가, 안또닌 발샤넥 Antonin Balsanek과 오스발드 뽈리브까 Osvald Polivka의 작품인데 이들이 디자인한 이 건축물은 당시 시민의 집 건립을 위한 건축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한 작품이었어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스메따나 홀


건물의 2층 중앙에는 12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장인 '스메따나 홀'이 있고 그 외에 각종 전시장, 회의실, 카페와 레스토랑, 맥주집과 와인바 그리고 게임 룸까지 있죠. 이러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능의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집이 건설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세기 말에 일어났던 산업의 발달로 인한 시민들의 경제적 환경이 향상되었기 때문이에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시 의회는 시민들의 경제적 성장에 걸맞은 문화시설 확충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고 그 결과 이렇게 각종 공연과 행사, 여가생활이 가능한 시민의 집 건립을 추진했던 거죠. 시민의 집의 건축 디자인은 위에서 말한 두 건축가에 의한 것이었지만 건물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장식들과 벽화, 조각 등을 제작한 것은 당시 체코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이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를 비롯하여 라디슬라브 샬로운(Ladislv Šaloun), 까렐 슈삘라르(Karel Špilar), 까렐 노박(Karel Novak), 안또닌 마라(Antonin Mara), 요젭 마르쟈뜨까(Jozef Mařatka)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화가, 조각가들이 자신들의 빛나는 예술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형상화시킨 결과물이 바로 이 시민의 집인 것이죠. 바로 이 시민의 집의 스메따나 홀에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오프닝 콘서트가 열려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음악제 기간 뿐 아니라 평소에도 이곳에서는 각종 콘서트가 열리는데 체코인들 보다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1시간 남짓의 콘서트는 최상급 공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프라하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적 감흥과 추억을 선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죠.

중세시대에 지금의 시민의 집이 있던 자리에는 왕궁이 있었어요. 이 왕궁은 1380년 경 바쯜라프4세 때 만들어진 것으로 왕의 거처 뿐 아니라 왕실 사무국을 비롯한 대신들의 방과 목욕탕, 사자우리, 정원등이 있는 작은 성채였어요. 15세기 말 야겔론가의 블라디슬라브왕이 거처를 다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성으로 옮기면서 그 후로 왕궁의 기능은 하지 않았지만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성까지 이어졌던 역대 체코왕들의 대관식 행렬이 시작된 '왕의 길' 의 출발점으로 그 상징적 의미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죠.

시민의 집은 체코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이기도 했어요. 1918년 10월28일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난 후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가 처음 역사에 등장했을 때 이곳에서 독립이 선포되었고 1989년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봄 민주화 운동 때 바쯜라프 하벨을 대표로 하는 시민포럼이 처음으로 체코 공산당과 만나 협상을 했던 곳이기도 해요.

프랑스어로 아르누보(Art nouveau), 독일어로는 융겐스틸(Jugendstil), 영어로 시세션(secession)이라고 불리는 이 미술사조를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서는 쎄쩨쎄(secese)라고 불러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나타났던 이 아르누보양식은 전 유럽에 영향을 준 마지막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죠. 아르누보양식은 미술과 건축에서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장신구와 생활용품에 이르는 넓은 분야에서 유행했는데 그 풍부한 장식성과 우아한 색채로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하는 매우 여성적인 미술양식이에요.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화가가 'The Kiss'라는 작품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고 체코의 화가로는 물론 알폰스 무하(Alfons Mucha)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의 작품이 왜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장식적이고 모든 사물이 너무도 예쁘게만 묘사되는지는 아르누보가 탄생된 배경을 통해 이해될 수 있어요.

위에서도 잠시 이야기했듯이 19세기 말에 일어난 산업의 발달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공장의 건설과 기계화로 인해 삭막한 환경을 야기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현상의 반동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서 당시 예술가들은 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게 되었고 인공적이고 딱딱한 사물들이 넘쳐나는 가운데서 마치 그러한 환경을 치유하듯 작품들을 제작하고 보급했으며 그것이 유럽인들의 호응을 얻으며 아르누보 미술이 발달하게 된 거죠.

아르누보 예술가들은 이전엔 생각하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들을 그 재료로 사용했어요. 색유리들을 이용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세라믹 타일의 모자이크, 철제 등을 대담한 방식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여러 가지 건물 장식이나 제품들로 응용됐어요. 꽃과 나무 등 식물들을 모티브로 한 장식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도 아르누보 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유럽의 다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들, 비엔나나 빠리, 베를린같은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도 아르누보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있지만 시민의 집으로 대표되는 체코의 아르누보 건축물들 역시 아르누보 미술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어요. 시민의 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프라하 중앙역 건물이나 바츨라프광장의 호텔 에브로빠(Hotel Evropa) 건물, 비셰흐라드의 성 베드로와 바울 성당 내부 장식 등이 프라하에서 볼 수 있는 아르누보미술이죠.


1층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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