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찾았다. 上
8화.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찾았다. 上
- 각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입니다. 뭐랄까. 멀티 유니버스 같은 거죠. -
- 이번 작품은 저의 이전 중편소설과 견련성을 갖습니다(/brunchbook/dongnoya) -
1.
"잡았다. 이 쓰레기 같은 자식."
나는 상부의 제안으로 이번 겨울 내내 '이 슬롯사이트 볼트'라는 작자를 추적했다. 더럽게 추웠고, 더럽게 힘들었다. 다만 상부에서 나에게 이 슬롯사이트 볼트만 멈추게 만든다면 두 계급 진급과 엄청난 포상금이라는 파격적 제안을 제시했다. 안 그래도 일상은 지긋지긋했고, 미래는 막막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나아질 거란 막연한 기대에 상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끝이 눈앞에 있다. 지금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이 문 너머에 있다.
날씨는 몸이 아플 정도의 추위였지만 몸에 열기가 돌았다. 나를 고생시킨 이 슬롯사이트 볼트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아니면 목표가 눈앞에 있다는 고양감 때문일까. 상관없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만 잡으면 된다. 나는 추적 끝에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A대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열람실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A대학교 모든 곳을 뒤졌다. 그리고 지금 A대학교 중앙도서관 별관 제2 열람실에 도착했다.
겨우 이딴 곳에 숨어 있었다니. 이름마저도 어이없지 않은가. 중앙도서관에 그치지 않고, 별관에 그치지 않고, 제1 열람실에 그치지 않은, ‘중앙도서관 별관 제2 열람실’이라니.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게 딱 봐도 알맹이는 없는 공간이겠지. 문에 손을 대본다. 촉감이 기이하다. 얼마나 오래된 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의 재질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재질이다. 뭐 어떤가. 어차피 내 인생도 넝마나 마찬가지인데.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잡는 것만 집중하자.
문소리에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도망갈까 조심스레 문을 연다. 하지만 '끼이이익! 턱! 후웅!' 문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문에서 이런 소리가 나온다는 게 더 놀랍다. 넝마에 가까워진 내 인생도 들추면 이런 소리가 나려나. 문소리를 감추는 걸 포기한다. 문을 열고 들어간 중앙도서관 별관 제2 열람실은 누가 봐도 버려진 공간이었다. 열람실 책상들은 질서도 없이 퍼져 있었고 모든 곳은 먼지가 가득 쌓여있다. 게다가 책상들은 다채롭게 외피가 벗겨져 있다. 이 책상에서 엎드려 자면 온몸에 상처가 날 것만 같다. 이곳의 불결함과 불편함, 난잡함에 짜증이 난다. 심호흡을 해본다. 열람실 저 끝 구석의 한 물체가 있다. 책상도, 의자도 아닌. 한 노인이다. 그리고. 아마 이 슬롯사이트 볼트라는 사람일 거다. 그동안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찾겠다고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 당신이 이 슬롯사이트 볼트지?"
"네. 맞습니다. 제가 이 슬롯사이트 볼트입니다. 신바람 트로트 가수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아니지요."
"드디어 찾았다. 내가 널 잡겠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
"당신은 강동노 주임님이시죠? 드디어 오셨네요.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찾아다닌 걸 비밀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알 수도 없었을 텐데. 연원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앞뒤 사정을 추론할 여유도, 필요도 없다.
"나를 알아? 어디서 뭐 좀 주워들었나 보네. 너가 날 알든 말든 난 상관없어."
"알다마다요. 제가 강 주임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반갑습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오랜 친구를 만났다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혼란스럽다. 정신 차리자. 이 모든 게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함정일 수도 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장단에 놀아나지 말자.
"기다리기는 개뿔. 됐고. 내가 너 찾는다고 고생한 거 생각만 하면 당장에라도 너를 두들겨 패고 싶은데. 나도 높은 분들 심부름으로 여기 온 거라 참는 거야. 결론만 말할게. 앞으로 그 짓거리 하지마.“
”그 짓거리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몰라서 물어? 너가 하고 다니는 그 짓거리들 말이야.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하지마. 지금 너 벼르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그러니까 그만둬. 지금부터 그 짓거리만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더 천천히 열람실 구석으로 향했고, 창가에 올려져 있는 커피포트의 전원을 올렸다.
"강 주임님. 일단 숨 좀 돌려요. 녹차 괜찮죠? 밖에 날씨도 추운데 저 찾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그냥 싸구려 티백이지만 한번 마셔봐요. 싸구려여도 이만한 녹차가 없어요. 향도 제법 좋지요. 요새 사람들은 커피나 차도 이런 싸구려 티백으로는 안 먹는다던데, 강동노 주임님도 그런 분이실까요?"
"장난 그만해. 슬롯사이트 볼트 대체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아는 거야?"
"저는 당신을, 알아요. 알 수밖에 없고. 또 알아야만 하지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신난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과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알 수 없는 반응에 짜증이 난다.
"무슨 미친 소리야. 뭐 됐어. 너가 내 이름을 알든 말든 상관없어. 그냥 내 말대로 해. 안 그러면 여러모로 너가 곤란해질 거야."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내 말을 듣기나 한 건지, 창밖을 보며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했다. 뜬금없는 사실이지만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아주 유연했다. 허리를 뒤로 젖히는데 좀만 더 젖히면 몸이 아예 뒤로 접힐 것 같았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알 수 없는 건강함과 유쾌함이 기괴했고, 또 역했다. 스트레칭을 마친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녹차 티백이 든 종이컵에 끓은 물을 부었다. 그리고 종이컵을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강 주임님 표정을 보아하니 녹차는 안 드실 모양이군요. 알겠어요. 그럼 같이 대화나 합시다. 강 주임님이 저한테 바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걸까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차분한 태도로 나에게 대화를 제안했다. 일이 풀리는 것 같아서인지 긴장이 풀린다. 이제부터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어르고 달래면 된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그 짓거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으면 다 해결될 일이다. 눈을 질끈 감아본다.
"간단해. 이 슬롯사이트 볼트 너가 사람들 들쑤시고 다니는 거. 그 짓거리만 그만하면 돼. 뭘 더 할 필요도 없어. 그냥 안 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나도 더는 너를 쫓지 않을 거고. 너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위험할 일도 없게 만들어줄게. 그리고 윗분들이 너가 그만두기만 한다면 너한테 위로금도 주라고 하시더라고. 금액도 아마 섭섭지 않을 거야. 너에게는 모든 게 이익이지. 아쉽다 아쉬워. 나한테도 이런 제안이 안 오나 몰라. 그저 안 하기만 하면 돈을 준다니 말이야. 어때? 느낌이 확 오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돈도 안 되는 그 짓거리를 대체 왜 해왔던 걸까. 명예가 목적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미친 걸까? 아니다. 고민하지 말자. 생각이 깊어지면 심란함만 생긴다. 난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보상만 받으면 된다.
"들쑤신다? 들쑤시고 다니는 게 저의 직업인데. 그걸 그만두라니. 곤란하군요."
"돈도 한 푼 안 되는 일인데. 그게 무슨 직업이야. 그딴 건 직업이 아니지.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둬.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잖아."
"저의 직업을 그렇게 폄훼하시니 서운하네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표정은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시무룩해졌다.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급작스럽고, 또 진정성 넘치는 감정 변화에 공포심마저 든다. 하지만 나는 내 일을 해야 한다. 대화의 주도권을 내가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신병자한테 휘말려 내 감정만 소진될 뿐이다.
"이 영감님 말이 안 통하네. 나도 더는 못 참아. 한 번만 더 이죽거려봐. 가만 안 둘 테니까. 어차피 여기 CCTV도 없고, 당신이 도망쳐서 도와달라고 해도 당신 몰골 보고 당신 도와줄 사람 없어. 그러니까 사람 속 뒤집지 말고 그만하자."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널브러져 있는 나무 의자 하나를 일으켜 세워 앉았다. 그리고 자기가 마릴린 먼로라도 되는 듯이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널뛰기 해대는 이 슬롯사이트 볼트라는 존재에 문득 생경함을 느낀다. 그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저는, 이 일을 해야만 했어요. 누가 되었든 했어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지요.”
“대화가 아예 안 통하네. 시끄럽고. 그냥 그 짓거리 그만하겠다고 약속만 해.”
“그렇다면. 강 주임님이 저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실 수 있다면, 강 주임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동안 제가 해 왔던 일들을 즉시 그만두겠습니다. 약속하지요.”
이죽거리는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주둥이를 막고 싶었지만 내가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제안을 거부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내가 대답만 하면 된다니, 내가 손해볼 여지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 뭐든 물어봐. 어떤 질문이라도 다 답해줄게. 그까짓 게 뭐 어렵다고.”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한껏 웅크린 채 나를 응시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피로해 보였다. 다만 그가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눈은 콘크리트 벽이라도 단박에 부수어 버릴 만큼 무거웠다.
“강동노 주임님은 오늘이 지나면 행복해질 것이라 확신하시나요? 슬롯사이트 볼트. 그것들을 손에 쥔다면 행복해질 거라 단언하시나요?”
2.
대답만 하면 된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대답을 검증할 것도 아니다. 입술을 벌려본다. 겨울의 건조함 때문인지 입술에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입술 사이로 냉기가 들어온다. 혀도 말랐는지 혀의 끝부터 혓바닥까지 냉기가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목에 힘을 주어 위장에 있는 것 같은 소리를 끌어 올린다.
"그... 그... 으... 어..."
끌어 올린 음성 대답을 담지 못했다. 왜일까. 다시 한번 긁어모은 목소리에도 답을 담을 수 없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꼬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삶이 얼마 안 남은 비련의 주인공처럼 아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강 주임님. 그러지 말고. 저쪽 벽을 한번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건너편 벽을 가리켰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지목한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수많은 종이들이 붙어있었다.
"벽면의 붙어있는 종이들 속 늠름한 저 청년들이 지난날의 이 슬롯사이트 볼트. 즉 접니다."
벽에는 신문 기사, 표창장, 미국 명문대학교에서 받은 슬롯사이트 볼트학위. 그리고 기부 증서들로 가득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 해대는 노인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짜잔! 저를 조사하셔서 아시겠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성북동 대저택에서 나고 자라,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 했습니다. 예전에는 KS 마크라고 하던 그 황금 라인 말이지요. 그 KS 마크가 저의 이마에 쾅쾅!“
저놈은 참 편하게도 살아왔겠구나. 나는 월세라도 절약 해볼까 싶어서 2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데. 화가 나고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공황증세일까. 진작에 정신과라도 갔어야 했을까. 아니다. 이게 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다. 진급해서 월급이 오르면 회사 근처에 전셋집이라도 얻어야겠다. 슬롯사이트 볼트 일을 더하자. 그럼 또 승진하고, 월급도 더 오를 테고, 효도든 결혼이든 다 되겠지. 시간 여유가 된다면 밥벌이 때문에 그만 둔 대학원도 다시 다니자. 그렇게 다시 내 궤도에 올라가자. 그럼 더 행복해질 거다.
"강 주임님? 지금 제 말 듣고 계시나요? 제 질문에 답도 안 해주시고. 제 이야기도 안 들으시네요. 이거 참 서운하네요."
"시끄러워. 저런 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네 삶은 엉망진창인데."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았다.
"암요. 그게 뭐 중요한가요. 다시 듣기 시작하셨으니, 설명을 이어가지요. 제일 오른쪽에 있는 게 저의 슬롯사이트 볼트학위입니다. 다들 저를 이 슬롯사이트 볼트라고 부르는데, 진짜 슬롯사이트 볼트학위가 있을 거라는 상상은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하지만! 놀랍게도 전 미국에서 슬롯사이트 볼트학위를 받고 온 사람입니다. 뭐 운이 좋았지요. 슬롯사이트 볼트를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로만 끝낸 강 주임님과는 다르게도요."
"나를... 어떻게 아는 거야?"
"참 아쉬워요. 강동노 주임님은 학문을 사랑했던 분인데 그 끝을 이루지 못하셨잖아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강 주임님은 어떤 의미에선 진짜 졸업을 하신 거니까요. 맞지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라는 형체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내 앞에 있었지만, 어쩌면 나의 뒤에 있다는 망상까지 피어오른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내 지인 중 한 명일까? 어느새 이 슬롯사이트 볼트라는 형체는 열람실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
"강 주임님은 또 제 말을 잘 안 들으시네요. 말씀 드렸잖아요. 전 강 주임님을 알아요. 그것도 아주 잘 알아요. 그러니까 강 주임님이 저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할 거란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온화한 얼굴이 되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따스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얼굴이 굳었다.
"왼쪽에서 여섯 번째 신문스크랩을 봐주시겠어요? 제가 설립한 연구소 기사지요. 제가 그 연구소에서 돈을 참 많이 벌었어요. 그 시절에는 정부가 국위선양만 좀 하면 돈을 확실히 밀어줬지요. 저를 위해 법까지 바꿔준 적도 있어요. 슬롯사이트 볼트 한국 굴지의 회장님들도 제가 개발한 기술과 장비를 독점하고 싶어서 저한테 거액을 주셨지요. 저의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회장님들이 참 좋아하셨어요.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는 방식이었지요. 사실상 이윤을 곱절로 만들어주는 기술이었지요."
시야까지 흐릿해진다. 눈을 깜빡여 보고, 손으로 하염없이 비벼보았지만 역시나 잘 보이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정신 차리자. 변하는 건 없다. 나는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추적해서 잡았다. 이제 이 슬롯사이트 볼트를 어르고 달래서 그가 해온 멍청한 짓들을 못하게만 만들면 된다. 지금 이 말 같지도 않은 순간만 지나면 난 약속된 행복이 나를 기다린다. 난 지긋지긋하고, 또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벗어나 손에 쥘 거다. 그것만 손에 쥔다면 난 분명 행복해진다.
결론적으로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처음 던질 질문에만 답하면 된다. 오늘이 지나면 난 행복해질 거라 답하기만 하면 된다. 대가를 손에 쥘 수만 있다면 난 행복해지는 게 당연한 순리다. 다만 여전히 목구멍에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손으로라도 꺼내고 싶다. 내가 너무 지친 탓이겠지. 일단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말을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 도발을 해서 내가 회복할 시간을 더 만들어야 한다.
"과거 이야기는 그만해. 과거는 이제 없어. 지금 이 슬롯사이트 볼트 너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정신병 걸려서 동네나 배회하고 다니는 왕년의 부자라니. 한심하고 불쌍하다."
"한심하고 불행하다니요? 강 주임님이 갈피를 못 잡으시네요. 저의 영광은 제가 아주 맑은 정신으로 직접 버린 겁니다."
"거짓말 하지마. 넌 그냥 실패하고 과거의 영광만 매번 곱씹는 거잖아. 지금 너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왜 과거 이야기만 하겠어? 그냥 솔직히 말해. 넌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영광이 슬롯사이트 볼트운 거야."
"땡! 틀렸어요. 물론 강 주임님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전 과거의 영광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과거의 영광을 버린 게 자랑스러운 거예요."
"이제는 남을 속이는 걸 넘어서 자신도 속이는구나? 대체 왜 저 영광들을 다 버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바로 그것! 버린 이유는 간단해요. 모든 게, 모든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뭐?"
"다 의미 없어요. 잘 배운 엘리트이자 부자들이 하는 뻔한 푸념이 아니에요. 몰락한 노인의 부질 없는 과거 회상도 아니고요. 저는 진리에 닿았어요. 돈도 명예도,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족도 결국 다 의미가 없어요. 다 벗어나야 해요."
"무슨 미친 소리야. 너 지금 도망가려고 머리 쓰는 거지? 더는 안 속아. 윗분들은 널 건드리지는 말라고 했는데. 계속 이러면 내가 못 참아. 지금 여기서 너 하나쯤 두들겨 패도 나한테는 문제 될 게 없어. 정신병 걸린 노인이 섬망증세를 일으켰다고 하면 다들 내 편을 들 테니까."
"하핫. 도망이라니! 정신병이라니! 하하. 하핫. 하하하핫 으하핫! 저를 그만 웃겨주세요. 하아... 너무 웃었더니 숨도 잘 안 쉬어지네요."
"미치겠네. 이 슬롯사이트 볼트 너 내 말을 아예 안 듣는구나. 이제 내 말을..!"
"다시 돌아와서! 돈과 명예는 멋진 거지요. 현실이 그렇죠. 저도 일견 동의해요. 멋진 차, 그럴싸한 호칭, 찬사, 나를 어려워하며 떠받드는 사람들, 단란한 가정, 어딜 가든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 돈과 명예가 창조하는 많은 영광!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안 할게요. 근데 강 주임님. 그거 알아요?"
"물어보지 말고 그냥 말해. 진짜 물어보는 것도 아니면서 듣는 사람 바보 만들려고 질문하는 자식들이 제일 싫으니까."
"이 부분은 제가 사과하지요. 제가 좀 오만했네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나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나에게 미안한 눈치였다. 이 무슨 미친 짓인가.
"강 주임님. 사람은 말입니다. 맹신 속에서 살아갑니다."
"맹신?”
"그래요. 맹신! 그럭저럭 남들보다 살짝 더 윤택하게 살면 행복할 거라는 맹신이지요. 누가 딱히 그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다들 그렇게 맹신을 하면 삽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좋은 학교를 꿈꾸지요. 그러다가 편한 군대, 높은 학점, 훌륭한 일자리, 외모와 인품 모두 빼어난 배우자, 남들보다 높은 월급, 그렇게 만들어지는 여유 넘치는 은행 잔고, 외제 차. 슬롯사이트 볼트 일종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집. 슬롯사이트 볼트 다시 한번 자녀의 좋은 학교와 일자리에 좋은 며느리와 사위! 슬롯사이트 볼트 마지막에는 동화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 경로 말입니다. 다들 이 길만이 옳다고 맹신해요!"
"왜 또 뻔한 소리를 깔아. 그냥 본론만 말해."
"원래의 강 주임님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을 좀 험하게 하시네요.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신 것도 아니까요. 바로 본론으로 가지요. 흥미로운 건, 맹신에서 깨어나는 시점이 죽기 직전이라는 점이에요."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세상이 다 역겹다는 듯이 온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헛구역질을 하던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죽은 지렁이처럼 몸을 늘어뜨리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들 그저 그 맹신 때문에 쥐고 있으려고만 해요. 멍청한 것들... 다 헛되고 헛된 건데 말이에요."
혀를 끌끌 차며 천장을 보던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갑자기 황홀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 슬롯사이트 볼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맹신 같은 소리 하지마. 그게 뭐가 나빠. 다들 그러고 사는데. 슬롯사이트 볼트 너처럼 여유 있는 놈들이나 무소유니 뭐니 지껄이는 거잖아. 다들 살기 위해서라도 쥐고 있어야 해. 너 같은 놈들이 그걸 알기나 해?"
"강 주임님. 말씀드렸죠? 전 당신을 알아요. 당신은 놀랍게도 죽기 직전이 아닌데도 맹신에서 깨어나기 직전인 사람이에요. 마취에서 깨어나기 직전의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저의 흔적들을 강 주임님에게만 남겨두었단 말입니다.“
"또 헛소리 시작하네. 날 위해서 흔적을 남겨? 대체 뭐하러?”
"강동노 주임 당신이 나를 이어받을 수 있도록."
이 슬롯사이트 볼트는 소년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힘없이 앉아 있는 이 슬롯사이트 볼트가 거대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