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계약서를 전송한 날, 담당자에게서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제목을 바꾸라는 것이다. ‘처세 9단의, 철학’이란 파라오 슬롯 내 마음에는 쏙 들었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다. 자기 계발 에세이인 만큼 더 직관적인 제목을 요구했다.
파라오 슬롯을 부정당한 순간, 왜 어때서!!!
그 고집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위트 있는 파라오 슬롯으로 ‘처세 9단의 잡생각’을, 트렌디한 느낌을 살려 ‘처세 9단의 알잘똑잘센’을 ‘1차 파라오 슬롯’이라 이름 붙이고 담당자와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연락처를 요구하며 메일을 발송했다(처세 9단을 응원하며 같이 머리를 싸매주신 우리 계단 운동 동지들은 정말 천사의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빠꾸다.
출판사에서 지적한 부분을 해소하지 않고 처세 9단을 고집한 불편한 마음을 고이고이 접어 깊숙이 넣어놨으나, 걸렸다. 아차!
(내가 친애하는, 앞으로도 매거진에 계속 나올 나의 회사 동기인 그 친구는 굉장히 센스가 만점이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나와 같이 시작한 엘리트다. 그녀에게 중매 서실 분 환영한다. 이제 갓 서른쯤 되는 그녀는 꽃꽂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바이올린을 켜며 퇴직 후에는 요가원을 차리는 것이 꿈인 다재다능한 아주 감성이 충만한 일등신붓감이다. 그녀를 J라 칭하겠다.)
J는 팩트 폭격기다. “언니, 처세 9단 아니야! 철학도 아니야! 그건 아니지.”
내 최종 파라오 슬롯에는 처세 9단도 없고 철학도 없다. 나는 유연하다.(하하 눈물 좀 닦고 가실게요.)
그렇게 처세9단의 철학이란 고집을 내려놓고 원고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할 때 수없이 읽고 고쳤던 글이었지만 다시 읽으니 새롭게 보인다.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생각한다. ‘다듬고 다듬다가 글이 소멸해 버리는 게 아닐까?’ 하하하
이번 투고를 위해 30개의 글을 준비했다. 브런치에서 하나의 주제로 묶일 수 있는 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은 주제들로 네다섯 꼭지씩 나누어 목차를 정리했고 투고 기획문 작성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파라오 슬롯을 설정하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내 글을 읽고 누구에게 필요한 이야기일지를 고민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최근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라는 말에 J는 아니 에르노의 집착을 추천해 줬다.(J는 독서와 글쓰기도 열심히 한다. 중매 서실 분 다시 한번 격하게 환영한다.). 이 책을 읽고 J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파라오 슬롯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느낀 느낌은 달랐다. 미혼인 J는 작가의 감성에 공감해서 오롯이 작가의 시선과 감정의 과정에 감명받았다. 반면, 기혼자인 나는 연애해 본 지 오래돼서일까, 작가의 감성보다는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에 감명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았다. 각자의 공감 지점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가 처한 삶의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경험은 내 글의 독자층을 설정하는 데 깊은 통찰을 주었다. 독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파라오 슬롯과 표지 디자인, 심지어 글의 톤과 방향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투고를 준비하며 독자층을 정리하고 분석한 뒤 이에 맞는 파라오 슬롯과 스타일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임을 깨달았다.
1. 파라오 슬롯 분석은 필수
글을 쓰기 전, 반드시 파라오 슬롯가 누구인지 고민해야 한다.
하나, 당신의 글은 어떤 파라오 슬롯에게 필요한가?
둘, 파라오 슬롯가 이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명확히 하면 글의 방향성뿐만 아니라 파라오 슬롯, 표지 스타일도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2. 투고 기획문 작성에 집중하라
출판사 담당자들은 투고 기획문을 통해 책의 핵심을 파악한다. 기획문에는 다음을 포함하라.
하나, 책의 주제와 차별점
둘, 예상 파라오 슬롯
셋, 기존 출간된 책과의 차이
넷, 책이 파라오 슬롯에게 줄 수 있는 가치
3. 목차 구성에 신경 쓰라
목차는 단순히 글의 순서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파라오 슬롯에게 책의 구조와 흐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 목차를 보고 책의 전개가 흥미롭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둘, 작은 주제로 나누고 각 장의 파라오 슬롯 독자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구성하라.
셋, 파라오 슬롯과 표지의 중요성
파라오 슬롯은 독자의 시선을 끄는 첫인상이다.
짧고 기억하기 쉬운 파라오 슬롯을 고민하라.
표지는 책의 분위기를 담아내야 한다. 파라오 슬롯에 맞는 색감과 디자인을 선택하라.
5.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말 것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과 파라오 슬롯에 대해 피드백을 구하라. 특히 목표 독자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매우 중요하다. 단, 모든 피드백을 반영하려 하지 말고 핵심적인 부분만 취사선택하라.
출간은 글을 쓰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글을 완성한 뒤에도 독자와 연결되기 위한 고민은 계속된다.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즐겁다. 나 역시 파라오 슬롯, 원고, 독자층 설정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책이 완성될 것이다. 설령 퇴고퇴고퇴고퇴고 지옥에 빠져서 글이 소멸해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와도 그 과정에서 나 자신 또한 단단해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 글을 쉴 틈 없이 나에게 영감 폭격을 해댄 J가 라이킷 하길 바라며. 부제를 빠꾸러의 철학이라고 했다고 언니는 참 철학 좋아해라고 하겠지. 헿)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각자의 철학이 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철학은 학문적인 영역이나 특정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나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매일의 선택을 이끄는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철학을 발견하고 다듬는 일입니다. 글쓰기는 그 과정을 돕는 훌륭한 도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이 출간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작은 용기와 영감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파라오 슬롯을 고치는 고민에서 때로는 독자층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철학이 더 명확해질 것입니다. 책을 쓰는 여정은 단지 결과물을 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언젠가 여러분의 철학이 담긴 책이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며 아주 사소한 저의 글이 마음속 한 방울 울림이 되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