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이후수도없이 뉴스를 찾아본다.다른 곳으로관심을 돌리려고 해도 쉽지 않다. 즐겨보던 예능을 보다가도 재생을 멈추며 죄책감을 느끼고, 소설도 이 소설 저 소설 집적거리다가 놓는다. 어렵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다가도 머릿속 질문("또 무슨 일 벌어진 거 아니야?")을 확인하고 싶어 급히 포털사이트 뉴스면으로 향한다. 그래도 계속 독서를 시도하다가, 며칠 전 아침엔 슈테판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읽었다.
얼마 전당장 읽을 생각 없이 그냥 슈테판 슬롯 머신 프로그램라서 사둔 것이었다. 죽기 전 쓴 미공개 에세이를 모은 에세이집이라니, 어떻게 안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런데 지난주책장을 둘러보다가 이 책을 보는데 지금 읽기에 딱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고 우울한 방향으로 움푹 파인 내 마음이부대낌 없이 그의 글을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껏 슈테판슬롯 머신 프로그램를주로 이런 마음일 때 읽었던 것 같다. 밝고 환하고 기분 좋은 날들을 살다가 읽은 것이 아니라, 어둡고 불안하고 힘든 날들을 살다가 읽었던 것 같다.
15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을 천천히 열어 조심스레 첫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았고, 그가 쓴 문장들은 지난 3일 이후 극단적으로 움푹 파인 내 마음에 착 들어맞았다. 절망은 절망을 모르는 사람의 글로는 치유되지 않고, 공포는 공포를 모르는 사람의 글로는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고,히틀러와 나치를 피해망명에 망명을 거듭하다가 브라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죽기 전에 써 내려간 글을 나는 지난 며칠 조금씩 아껴 읽었다.
그중 에세이 '센강의낚시꾼'은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도 너무 힘들어 잠시나마 무관심을 택하는 나(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슈테판 츠바이크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가 목이 잘려나가던 순간에 바로 옆 센강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을 언급하며 말한다. "그 낚시꾼들도 늘 그날처럼 시대에 무관심하진 않았을" 것이며, 사람들이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이유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심장 하나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다른 이유 하나는 '자연법칙'이다. 자연은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참여 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하기에, 세상에 영원히 참여하고 영원히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이 두 시간에서 길어야 세 시간이었던 이유도 같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비극적인 상황에 연속해서 노출되기엔 한없이 작고 약한 인간이기에. 그렇기에 나(슬롯 머신 프로그램)는자꾸만 뉴스를 찾아보면서도 또 자꾸만 무관심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추운 날씨에 광장에 나가 응원봉을 흔들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말하듯슬롯 머신 프로그램에겐 불안과 공포를 "감당할 힘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한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