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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지만 화가입니다

바카라김태민,<사랑,달력커버에 크레파스, 16x27cm.

나는 바카라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색약도 그림을 그린다. 제약이나 제한은 없다. 내가 보고 느낀 대로 표현한다. 때로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그린다. 적록색맹은 그림을 그리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창기부터 그림의 색감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렬한 원색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색약이라는 사실을 말하면 다들 많이 놀라워했다.


전시를 하면서 만났던 큐레이터나 예술감독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색약이 보는 세상도 똑같은 세상이다. 색약검사표에서 숫자나 글씨가 한두 개쯤 안 보이는 것뿐이다. 조금 다르게 보일 때도 있지만 눈에 비치는 세상은 똑같다. 다 똑같은 사람이다. 바카라약을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색맹이나 색약 같은 익숙한 단어도 있고 색각이상자라는 공식적인 용어도 있다. 질병관리청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약 6%가 바카라약이라고 한다. 100만 명쯤 된다.


적은 숫자는 아니다. 대부분의 색약은 남성이다. 유전자의 영향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색약이 될 확률이 더 높다. 아직까지 현실에서 같은 바카라약을 만난 적은 없다. 100만 명이나 되는 데 만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다. 아마도 드러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일부러 숨기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대부분은 아동기에 색각이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색약검사를 통해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도 그랬다. 친구들은 다 보인다고 말하는데 나는 예외였다. 크고 작은 점이 그려진 검사지 속 숫자는 늘 반쪽짜리였다. 그때를 떠올리면 오답을 말해야 할 때의 막막함이 생각난다. 성인이 되면서 전보다 신경 쓰지 않게 됐지만 친한 사이가 아니면 색약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바카라약을 가진 이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 같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세상 속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이 먼저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사람들은 다 같은 눈으로 똑같은 세상을 본다. 바카라이 보는 세상도 같은 세상이다.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차이가 시야를 결정한다. 사람의 태도와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마음으로 본다는 표현은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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