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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까지 사랑해야 에볼루션 바카라지

나를 위한 변명

에볼루션 바카라의 전화

에볼루션 바카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잠시 이름을 말없이 바라보다 벨소리가 몇 번 더 울린 후에야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볼루션 바카라의 전화에 좋은 소식이 있을 리 없다.우리의 전화는 늘 이런 식이다.전화기 너머에서 에볼루션 바카라의 한탄 소리가 들린다.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알고 있다. 에볼루션 바카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젊은 시절 에볼루션 바카라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 당시의 에볼루션 바카라에겐 자신의 몸을걱정할만한여력같은없었다.에볼루션 바카라는 남편 없이 홀로 자식들을키워야했기에자식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담을 수가없었다.에볼루션 바카라에게 몸이 아파 쉬는 건 사치였다. 그것은 속 편한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 같은 거였다. 병도 염치가 있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병이 찾아오지 않는다며에볼루션 바카라는자신의 건강을 자만했다.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에볼루션 바카라의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 그 결과로 지금의 몸이 되어버린 것이.


결혼을 하고선 오랫동안 에볼루션 바카라를 모른 척했다. 결혼과 더불어 시작된 시집살이가 무슨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로 에볼루션 바카라를 방관한 것이다. 에볼루션 바카라의 힘듦은 내 힘듦과 비교할 수 없다고, 에볼루션 바카라가 시집살이의 고통을 알기나 하냐며 나의 힘듦을 생색냈다. 거기다 시집간 딸을 위해 해준 것이 뭐가 있냐며 할퀴기까지 했다. 그런 말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일을 해야 했던 에볼루션 바카라에겐잔인한 말이었다. 미안하고 속상했지만 나의 힘듦이 그 어떤 고통보다 우선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에볼루션 바카라와통화하면서 이번엔나와 함께병원엘 다녀보자고 했다. 그동안은 동생이 에볼루션 바카라를 모시고 병원엘 다녔는데 별 효과가 없자 다른 병원으로옮겨보기로 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진료확인서를 접수한 후 찾아간 3차 병원은 예약제라 오랜 기다림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에볼루션 바카라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닳아버린 연골을 재생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에볼루션 바카라는 수술을 받고 펄펄 날고 싶었지만 수술의 규모와 나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에볼루션 바카라는 그저 의사 선생님이 권해주신 주사 시술을 받으며 아픔을 조금씩 견디는 수밖에없었다.


병원에다니는 일은 에볼루션 바카라와 내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엔어린 시절 봤던 에볼루션 바카라의 모습이 있었다. 비록 주름지고 처진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에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던 젊은 날의 에볼루션 바카라가 있었다. 자주 만나고 자주 얘기를 하니 예전의 에볼루션 바카라가 되살아났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한 집안의 며느리만이 아니라 에볼루션 바카라의 다정한 딸이었다는 사실을. 서로 킬킬대며 웃던 때가 있었던친근한모녀지간이었다는 사실을.


하지만지금의 에볼루션 바카라는어린시절우리를지켜줬던에볼루션 바카라가 아니다. 누군가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하는 그런사람이된 것이다.


변명

전화를 받을 때마다 화를 냈던 건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며 변명이었다.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미안하니 피하고 싶었다. 만나서 상처를 주고받는 것보다, 보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배려도 뭣도 아니고 부모자식 간에 더 큰 벽을 쌓는 일이었다.


혼자서 밥을 먹고 쓸쓸해했을 에볼루션 바카라를 위해 반찬을 주문했다. 국이며 찜, 나물 등 두루두루 주문했다. 반찬이 배달되던 날 에볼루션 바카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힘이 있고 밝았다.


"딸, 고마워. 네가 모처럼 딸 노릇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아, 이 에볼루션 바카라 뭐야. 모처럼 딸 노릇?' 갑자기 기운이 확 빠졌다. 역시 울 에볼루션 바카라다.


"에볼루션 바카라도 참. 내가 지금껏 에볼루션 바카라를 위해 해 준 게 얼만데 이제야 딸 노릇을 한 것 같다는 말을 해. 엄만 참 말을 이쁘게 해."


"그걸 또 그렇게 들었어. 아니. 난 너무 고마워서 하는 말이었지."


엄마 삶에 개입을 하게 되면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마음은 편하다. 못난 자식이 비로소 자식 노릇을 했다는 위로 같은 것이다. 상처는 덮고 가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들여다보고 살펴야 하는 것이었다. 다 나아서 더 이상 가릴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들여다보며 아파해야 하는 것이었다. 편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게 모른 척하는 것은 에볼루션 바카라 아니다. 아프더라도 마주하며 관심을 갖는 게 에볼루션 바카라다. 비록 나에게 아픈 시간이 더 늘어날지 몰라도 이제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웃으려 한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이라도 주고 싶다. 그것이 나이 들어 힘이 없는 엄마라면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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