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사람이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슬롯 이의 머릿속 계산기와 대차대조표
대학 4학년 방학, 임용 시험슬롯를 할 때의 일이다.새벽 7시부터 밤 11시까지 책과 씨름하던 시기였다. 거주 지역의 도서관이 내 공부 장소였다. (거주 지역이라고 하지만 버스로 15~20분은 이동해야 슬롯 곳이었다) 도서관 문을 닫을 때쯤 열람실 바깥으로 발을 내딛으면, 차갑고 달콤한 밤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고단한 하루 공부를 끝냈단 뿌듯함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할 쯤부터 뿌듯함은 온데간데없이사라지고,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몇 백 미터 걸어가면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었으니까. 한결같이 그 지점에서 고민의 늪에 빠지곤 했다.집까지 걸어갈까, 마을버스를 타고 갈까.마을버스비가 250원인가 300원쯤 하던 때였다.
스물셋, 당시 내게 인생 최대의 관심사는 임용 시험이었다. 최대한 빨리 합격을 거머쥐는 게 삶의 우선 과제였다. 그러나관심사와 별도로 머릿속엔 늘 슬롯 대차대조표를 이고 살았다.용돈 없이 겨울을 나며 슬롯던 때였다. 전년도 아르바이트로 번 수입 몇십만 원, 통장에 있는 그 금액이 내 수중의 돈 전부였다. 당시 집의 경제적 상황이 별로라 집에는 손 벌리기 머쓱한 시기였다.엄마가 많이 힘들어. 생활비가 부족한 수준이라니까. 너 얼른 시험 붙어야겠어.언니가 정보 제공인지 조언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건넸다.
다행히 학기 중엔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으나, 방학 때가 문제였다. 특히 도서관에서 공부하려면 낮에는 점심을 바깥에서 해결해야 해서 고민거리였다. 대다수는 무조건 도서관의 자판기 라면이나 집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3500원짜리 백반 메뉴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걸 택한다는 건 며칠 동안의 금전적 여유를 포기슬롯 거였다.학기 중엔 학교 도서관에서 슬롯다 언니에게 엉엉 울며 문자를 보낸 적도 있다. '과자 먹고 싶은데 돈 10만 원만 보내줄 수 없냐'는 질문이 담긴 문자였다. 슬롯며 이런저런 군것질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데, 과자 사 먹을돈이 충분치 않았다.
당시엔 내 상황을 특별히 초라하거나 비참하게 느끼진 않았다. 지금처럼 물가나 생활비가 높을 때가 아니었다. 슬롯가 최대 인생 과제였으니, 복잡한 감정을 곱씹을 시간도 없었다.
다만 머릿속 슬롯 저울을 바지런히 움직이긴 해야 했다. 빈틈없는 시뮬레이션도 필수였다.자, 만약 친구 한 번 만나 커피 마시고 밥 먹는다고 생각해 봐. 3일은 생활비를 이것저것 아껴 써야 슬롯 거야. 근데 만 원짜리 티셔츠 하나사는 건괜찮지 않을까? 아냐. 그러면 며칠 동안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해야해.식의 생각이 슬롯에 둥둥 떠다녔다.잔고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11월 임용고시까지 버티는 게 당시 내 목표였다.
친구와의 만남이야 줄이면 되고 쇼핑이야 안 하면 됐지만, 마을버스 타기는 일상의 문제였다. 마을버스의 기회비용은 당시 350원쯤 하던 딸기 우유였다. 버스를 타는 편의를 누린다면, 다음 날 좋아하는 딸기우유를 사 먹지 못할 터였다. 딸기우유를 택한다면, 밤 11시에 어두운 길을 30분 이상 혼자 걸어야 했다. 슬롯 저울을 한참 움직여보다 그날그날 다른 결정을 내리곤 했다. 어떤 날은 마을버스를 선택했고 어떤 날은 내일의 딸기우유를 잠정적으로 택한 채 30분 정도의 거리를 걸었다.
물론 마을버스나 딸기우유와 달리 아예 슬롯 대상에 두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내 적성에 맞는 진로나 인생의 플랜 B같은 것이 그랬다. 당시의 나는 국립 사범대 졸업 예정자였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다른 슬롯를 시작하거나 다른 진로를 택하려면 시간이나 비용이 필요했다.슬롯 계산기나 저울 위에 올려두기엔,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큰 것들이었다.
젊은 시절 만들어진 슬롯 대차대조표는 꽤나 튼튼하고 질겼다. 도무지 흐물흐물해지거나 찢어지지 않았다.덕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도, 20대 후반까지도 슬롯 이 종이를 24시간 머리에 이고 다녔다. 나중엔 집안 사정이 꽤 나아졌는데도 불구하고.
명확한 이점도 있었다. 습관처럼 슬롯에 펄럭이는 이 종이 덕분인지, 좋은 운 덕분인지 임용 시험을 한 번에 붙었고 (운 덕분이 크긴 하다), 스물네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특별히 비장하거나 치열하게 산 건 아니나, 그럭저럭 성실하게는 살았다.불필요한 지출은 하지 않았고, 가계부도 꽤 오랫동안 열심히 썼다. 숫자에 약한 인간이지만 슬롯 실력도 꽤나 늘었고.
그리고지금의 나는 운 좋게도 편의점에서딸기 우유뿐 아니라, 2500원에서 3000원쯤 슬롯 스타벅스 라떼 병커피나 바리스타롤스 컵커피도 서슴없이 집어들 수 있는 부자가 됐다.- 당연하게도 농담이다. 부자라기보다 '옛 시절에 비하면 경제적 여유가 많이 생겼다'라고 말하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이겠지. - 아무튼 슬롯에 24시간 펄럭이던 대차대조표를 이제 잠깐만 소환할 수 있는 인간이 됐다.
그럼에도 20대의 내가 생각나, 마음이 저릿할 때가 한 번씩 온다. 수개월 전 강지나 작가의 책,『슬롯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읽을 때 그랬다.빈곤에서 성장한 여덟 명의 학생들을 10여 년을 돌아본 이 인터뷰집에서, 슬롯 청년의 고백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생각은 항상 뭔가에 쫓겼어요. 넉넉히 쓴다는 느낌은 없고, 뭔가 쓸 데 되게 엄청난 고민을 해요. 교통비를 쓰더라도 되게 심각하게 계산적이었어요. 나는 한 달간 이 돈으로 살아야 돼. 그럼 나는 이렇게 써야 하고, 거기서 만 원이라도 생각을 안 하고 쓰면 어떻게 되지? (...) 친구들 만날 때도, 오늘 돈을 이만큼밖에 못 쓰는데, 그럼 얘를 만나면 안 되겠다, 그러면서 슬롯들을 점점 안 만나게 되는 거예요. 돈이 계속 나가니까. 그래서 심각할 때는 친구를 한 명도 안 만났어요.
『슬롯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속 한 청년의 인터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