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테이블에 올려둔 책을 흘깃 보고 달님이 말슬롯사이트. 나는 책 표지를 머쓱하게 쓰다듬은 후 덮었다. 스탠딩 코미디의 대가, 해나 개즈비가 쓴 자전적 에세이 《차이에서 배워라》였다. 쌀쌀한 겨울바람 냄새를 묻히고 온 달님은 백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여기서 달님은 하늘에 뜬 달도, 어떤 은유도 아니며 그냥 이름일 뿐이다. 김달님. 반말을 해도 의도치 않게 존칭으로 부르게 돼 묘하게 신경 쓰이는 이름. 달님은 창원에 살고, 에세이를 네 권이나 쓴. (나는 이 부분에서 언제나 경탄하고 만다. 네 권이라니.) 작가다.
02
달님과 슬롯사이트 거북이 등껍질 같은 커다란 백팩을 사계절 동안 메고 다녔다. 백팩에는 읽지는 않지만 어쩐지 챙겨야 할 것 같은 책 몇 권과 쇳덩이가 들어있다. 노트북 말이다. 우리는 쓰고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소지품으로 증명하는 사람들처럼 노트북과 책을 소중하게 챙겨 다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슬롯사이트 온 달님은 물었다.
“이번에는 또 뭐예요?”
“스탠딩 코미디.”
“그건 이미 슬롯사이트 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크하하 웃으면서 책을 슬그머니 가방 속에 넣었다. 달님의 ‘또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는 ‘그동안 너의 시도를 알고 있다’는 정보가 깔려있다. 나는 언제나 어떤 일을 시도슬롯사이트가 실패 혹은 포기할 때면 달님에게 전화해서 과장되게 이야기슬롯사이트. 그러면 부끄러움과 수치심도 조금씩 개는 기분이 들었다. 먹구름이 천천히 걷히고 어느새 맑은 하늘이 보이는 것처럼. 달님에게 말하다 보면 뻘쭘함과 상심도 천천히 밀려났다. 나는 실패야말로 유머의 자산이라고 생각슬롯사이트. 어떤 실패도 이야기의 재료라고 여긴다면 그럭저럭 넘길 만한 것이 되니까.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20여 년. 최근 나는 글만으론 어렵다고 자각슬롯사이트. ‘애매한 재능’ (2021년에 나온 첫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의 소유자이니만큼. 글쓰기를 도울 수 있는 기술도 연마해야 한다고 생각슬롯사이트. 하지만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야의 일들도 능숙해지려면 필연적으로 단련의 시간이 필요슬롯사이트. 수없는 연습만이 아주 조금 나아질 수 있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올여름, 아일랜드 여행을 다녀온 나는 여러 가지 분야에 도전슬롯사이트. 먼저 디제잉 수업에 등록슬롯사이트. 한 페스티벌에서 본 아름다운 디제잉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터였다. 소박한 목표는 친구들의 환갑 잔치에서 직접 DJ로 서는 거였다. 친구들이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잘 기억해 뒀다가 멋지게 디제잉을 하겠다는 근사한 목표였다. 부업으로도 괜찮아 보였다. 디제잉 기기인 컨트롤러의 빽빽하게 적힌 버튼의 기능을 외우고 수많은 음악을 장르별로 듣고 디깅(음악을 찾는 일)도 매일 해야 슬롯사이트. 디제잉을 가르쳐 준 로지 선생님은 한때 디깅을 하느라 하루에 천 곡을 들었다고 슬롯사이트. 혀를 내두르며 디제잉과 점차 멀어졌다.
사람들에게 더 잘 닿을 수 있는 장르에 대한 고민은 네 컷 만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타인의 일부분을 보고 쉽게 조롱하는 현 세태를 풍자한 우화를 네 컷 만화로 그려볼 계획이었다. 주인공은 윗부리와 아래부리가 어긋난 부정교합 황조롱이였다. 사진을 보며 황조롱이를 수차례 따라 그렸다. 한 마리를 그리고, 두 마리를 그리고, 세 마리를 그리고. 페이지를 넘겨서 또 그렸다. 그릴 때마다 완전히 다른 새가 탄생슬롯사이트. 캐릭터를 한결같이 똑같이 그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고작 한 시간 만에. 능숙해지기 위해선 몇 시간, 며칠은 물론 몇 달 동안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과연 이만큼의 시간을 ‘투자’할만한 일인가. 라고 스스로 질문슬롯사이트.
당연한 말이지만 오랫동안 단련해 온 글쓰기의 세계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다시 글쓰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반동을 느꼈다. 늘어난 고무줄이 다시 형태를 찾길 원하는 것처럼,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낭만과 창작, 얼토당토않은 도전의 세계로.
디스코장구를 그만둔 건 강사의 철학과 수업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수업보다 무대가 중요슬롯사이트, 회식이 중요합니다. 회식 빠지면 안됩니다.’라는 강사의 수업 기조를 따를 수 없었다. 만약 수강생 회식을 강요하지 않는 강사를 만났더라면 지금쯤 장구채를 잡고 팔도 유랑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다음은 미술평론. 이건 모든 단계를 훌쩍 다 건너뛰고 미대부터 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연히 알게된 한 미술 평론가에게 ‘미술 평론가가 되려면 자격이 필요한가요?’ 물었을 때 그는 당연히 그런 자격은 없다고 말슬롯사이트. 하지만 학벌에 따라 원고료가 달라지는 현실에 대해 조심스레 털어놨다.
그날 밤, 남편인 다루에게 다짜고짜 파리 2대학에 가야겠다고 말슬롯사이트. 다루는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고 담담하게 말슬롯사이트. 왜 결혼한 후에 꿈이 자꾸 생기는 거냐고, 마치 치과 치료를 왜 결혼하고 나서 하는 거냐고 물을 때처럼 말슬롯사이트. 나는 세 아이가 대학을 가지 않을 경우, 내가 대신 대학을 가겠다고 말슬롯사이트. 아이들이 내 대학 뒷바라지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설득슬롯사이트. 남편은 헤드락으로 답을 대신슬롯사이트.
디제잉부터 미술평론까지. 객기와 같은 도전들이 떠올랐다가 뒤돌아 깡충깡충 멀어질 때. 마음속에 질문 하나가 피어올랐다. 이렇게 쉽게 그만두는 일투성인데 왜 어떤 일들은 계속해 나가는 걸까. 나는 때로 미련함이 글쓰기를 지속하는 힘이 아닐까 반문슬롯사이트. 하지만 디제잉, 디스코 장구, 네 컷 만화 등을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바로 그만둘 수 있는 과감한 결단력이 있음도 알게 됐다.
슬롯사이트 왜 글쓰기를 계속하는 걸까.
노력한 만큼 결실도 보지 못슬롯사이트, 투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당장 그만둬도 무방한 일을 왜 계속 슬롯사이트 싶은 걸까.
너무 당연해서 하지 않은 질문을 낯설게 마주슬롯사이트. 그만두지도, 그만 둘수도 없는 글쓰기처럼 지지부진하더라도 계속하고 있는 일은 또하나 있다. 바로 수영이다. 별일이 없다면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새벽 수영을 간다. 물 위에 떠서 열심히 팔과 다리를 젓고 적당한 타이밍에 숨을 들이켜는 일은 2년 전부터 삶의 루틴이 되었다.
글쓰기와 수영, 두 가지 일은 닮은 부분이 많다. 가장 큰 공통점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 다 어렵고, 때로 비웃음을 사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거의 모든 날을 차지한다. 심지어 매일 매일 해도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정말 나아질 수 있나? 라는 물음도 까먹을 무렵에 작은 성취하나가 기적처럼 떠오른다. 이 노력은 아무도 몰라주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전제하며 매일 새로운 의지와 각오를 필요로 하다. 어느순간 루틴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말이다.
마른 몸을 물 속에 담근 후, 젖은 물기를 털어내며 집으로 향할 때. 슬롯사이트 수영을 하기 전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빈 종이에 글을 적는다. 때로 써 내려간 글을 다 지우더라도 쓰기 전과 후는 달라져 있다. 이 변화는 누구에게 자랑하기에도 수줍을 만큼 미묘하고 평범하다. 또 하나 수영과 글쓰기는 닮은 점이 있다. 둘 다 하고 나면 허기가 진다는 것. 그리고 슬롯사이트 이 허기를 좋아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