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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환자 얼굴 한번 보라고 했다. 뇌 슬롯인지라 머리를 밀었다면서놀라지 말라는 당부도 아끼지 않았다. 아주버님을 보던 남편의 동공이 커지면서 형이 어떻게 여기에 왔냐면서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 인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전혀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수술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싶었다. 머리 아픈 것 아프지 않게 하는 수술이니 힘내라면서 꼭 부여잡은 손을 놓으니 즉시 슬롯 문이 닫혔다.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여섯 슬롯 사십 분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로지 의료진 손에 남편의 명운이 달린 것이다.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수술 예정 슬롯은 네댓 슬롯 그동안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목이 탈 때마다 수분을 보충해 주는 일 외에 어떤 것도 없었다. 임신 7개월 째인 딸한테 연락을 안 했다. 충격받으면 임산부나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대기실에서 아들이랑 잠시 고민을 했다. 주치의가 수술실 들어가면서 '최악도 생각'해야 한다는 한마디에 짓눌려 딸한테 전화를 했다.



아들이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그러나 평소보다 낮은 소리로 놀라지 말라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 아빠 슬롯 들어갔다는 비보를 전했다. 아빠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딸은 퉁퉁 부은 눈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딸과 사위는 어리둥절해하며 날벼락같은, 거짓말 같은 현실을 애써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딸은 어제 낮에 집에 와서 아빠랑 점심을 같이 먹었다. 더더욱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주치의가 뇌출혈 중에서 중차대한 대동맥이 파열된지라 예후가 매우 안 좋다고 했다. 수술 도중에 이벤트(예서 이벤트란 수술 중 다른 부분에서 동맥이 또 터질 수 있다는 것) 생길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한다고 했다. 슬롯에 들어간 순간부터 온갖 생각들이 교차했다. 혹시 수술을 중단할 수 있는 변고가 생기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스치면서 지난날의 삶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롤러코스트를 탔던 감정들



최근에 슬롯 보기 좋게 변화했었다. 호르몬의 변화가 생긴 시점이었고 여러 가지로 안정감이 생기기도 해서였을 것이다. 일이 많아져서 가뭄에 콩 나듯이 주 1회 정도 집에 오다 보니 애틋함이 커졌던 것 같다. 신혼 때보다 더 달콤했던 나날이었다. 그중 으뜸이 쓰러지기 전날 밤이었다.



최후의 만찬이었던 것일까! 그날 밤 남편은 예정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 퇴근해 집에 오니 남편이 주방에서송이버섯을 손질하고 있었다. 송이를 굽고 사돈이 보내주신 갈비도 몇 점 구워서 만찬을 즐겼다. 영* 씨랑 절친에게 인증사진도 날리면서 꽤 오랜 슬롯 동안 남편과 정담을 주고 받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다 보니 같이 노래도 부르고 나는 춤도 추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던 중 침대에 누워서 조영남의 ‘모란 동백’을 불렀다. 시아버님 여의고 나서 마음으로 다가왔던 노래라서 애도곡으로 자주 부르곤 했다. 그날도 듀엣으로 그 노래를 부르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대기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가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간 지 여섯 슬롯이 훌쩍 지나고 있음을 알려 줬다. 예정 슬롯에서 두어 슬롯가량 더 지나슬롯 시 십 분에 시침과 분침이 놓여 있었다.수술 슬롯이 길어지다 보니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문득 어젯밤이 남편과 나, 최후의 만찬이 아니었나 싶었다. 최후의 만찬이었다면 그 이상을 능가할 수는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밤이었다. 여한이 없을 것 같은 지난 밤을 떠올리면서 급작스레, 남편이 내게 준 마지막 슬롯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련의 주인공이 돼 이미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조문객들에게 슬롯 어젯밤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 것 같다고,전조증상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황당하지는 않을 거라 하니,상대방도 덩달아 눈물바다를 이루는 상상을 하다가,문득현실로돌아온다.



남편이 일을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득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시계를 본다. 슬롯이 점점 늘어날 수록 불안감은 극도에 달해 서로 얼굴만 볼 뿐이었다. 간간이 임산부인 딸한테 되도록 안심할 수 있는 말로 다독이면서 견뎌내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긴급 상황인 것을 알리지 않은 것 보니 수술이 잘 되어 가는 것 같다면서. 제발 제발 목숨만 부지할 수 있기를 우리 가족 모두가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을 때 수술실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침대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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