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펑펑 울었습니다. 오늘 낮에 대학로에서 미팅이 있어 같이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커피숍 '킵업커피'에 잠깐 들렀는데 커피숍 가는 길에 가게 옆에 있는 극장 봄에 걸린 연극 포스터를 본 겁니다. 극단 신세계가 막을 올린 〈2024망각댄스_4.16편〉이 붙어 있더군요. 저는 "당신 이거 보면 또 허벌나게 울 텐데?"라고 놀렸습니다. 아내는 제가 월요일 마감인 칼럼 원고를 쓰러 스터디카페에 가 있는 동안 이 카지노 토토 볼 생각이라고 하더군요(킵업커피에서 윤석열 욕을 하다 얘기를 나누게 된 예전 동네 이웃 박혜성·김영진 커플도 반가웠습니다).
카지노 토토이 끝났을 때 제가 카톡을 하고 극장 앞으로 갔더니 눈이 퉁퉁 분 아내가 극장 앞에 서서 웃고 있더군요. 세월호 얘기라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 카지노 토토은 보통 공연과 달랐다고 합니다. 관객이 배우들과 함께 극본을 낭독하는 형식이었다죠. 일종의 참여극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대본이 서사가 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팩트의 나열이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일 년 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순서대로 건조하게 나열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읽고 들으면서 분노가 치밀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어울러 세월호 사건에도 악의 화신인 윤석열의 그림자가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되어 더 화가 났다고 합니다.
성북동의 단골 술집인 '잔칫날'로 자리를 옮긴 아내는 한라산을 마시며(저는 칼럼을 써야 해서 한 잔만 마시고 공깃밥에 순두부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팩트 나열만으로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며 극단 신세계의 김수정 연출이야말로 진정한 천재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말을 하면서 흥분했는지 그 자리에서 스마트뱅킹으로 극단 신세계 계좌에 20만 원을 송금하더군뇨. 비록 돈은 없지만 이런 응원은 하며 살고 싶어 셰익첵의 이름으로 보냈다고 하길래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제가 지금보다 더 돈을 벌 궁리를 해보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죠. 저는 다시 스터디카페로 올라가 원고를 쓰고 아내만 술을 마시다 혼자 먼저 집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술이 취했고 지금 집으로 가고 싶으니 얼른 잔칫날로 와서 자기를 데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고 카지노 토토 걸 포기하고 아내를 구하러 잔칫날로 갔습니다. 가서 보니 아내는 멀쩡했고 안주가 남았길래 한라산을 한 병 더 시켜 저 혼자 마셨습니다. 김명신 사장님이 식은 순두부를 데워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카지노 토토은 내일까지 단 사흘만 공연하는데 저는 내일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수업 때문에 못 봅니다. 억울하고 아깝지만 할 수 없죠. 나중에 김수정 연출께 부탁해서 대본을 얻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아울러 시간 되시는 분은 내일 막공을 보러 가시길 권합니다. 저는 못 봤지만, 내일도 못 보지만 다른 분들이라도 천재의 작품을 목격하셨으면 해서요. 아내는 지금 술에 취해 잡니다(많이 약해졌다, 우리 아내). 그래서 카지노 토토도 못 본 제가 리뷰를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