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퇴원 이후로휠체어생활을 하고 있다. 두 다리의 감각은90% 이상(어쩌면 100%?)을잃었다. 퇴원하기 전 파라오 슬롯 의사에게 물었다. 우리 동생이 다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은있냐고.없단다. 차라리 묻지를 말지. 파라오 슬롯는 며칠 동안 멘붕이와서틈만 나면울었다. 자기가 뭘 잘못한 건 없는지. 자기가 놓친 건 없는지자책과 후회를 반복하며. 있을 리가 없다.남편이 말했다.척추 전이로 인한3차등수술 후에의사가이미 예고했던 시나리오라고.지금으로서는휠체어에 적응하는 삶이최선이라고.
휠체어로 생활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리 통증 때문에. 2-3시간 앉은 후에는 어김없이다리에통증이 왔다.휠체어에 앉았다가누우면 두다리를맷돌에꽁꽁 묶어놓기라도 한것처럼 무겁고 저리고 아렸다.휠체어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모양이었다(휠체어는병원 측에서퇴원하기도 전에 발 빠르게우리 집으로보내줬는데 전동 휠체어가 아니라서 누군가 밀어주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내가 빨리 팔힘을 길러서 직접 밀든가).그래서가능하면 매일휠체어를 타고로젠 가르텐으로 산책을 가려고 노력하는중이다. 파라오 슬롯 떠난 후 내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든친구M과함께. 요즘친구M은주 5일을 와주고 있다(참고로 친구에게는 월급을 준다. 심지어돈을안 받고도 해주겠다는 친구를 설득해야만 했다. 이 무슨 해피한 경우인지!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게 알겠다).
언파라오 슬롯 출발하는 날짜가가까워올수록 남편과 나는초조했다.파라오 슬롯의 빈자리를 채워줄 사람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어디서어떻게한국 사람을 구한단 말인가. 인도 등 아시아계 사람만 구해도 천만다행인 것을. 남편은 내가 한국말로 수다라도 떨 수 있으려면 한국 사람이 낫겠다고 했지만 파라오 슬롯와 나는 1%의 가능성도 바라지 않았다. 교대로 와서도와주겠다는 친구들의제안도있었는데실제로실현가능하다고 보지는않았다. 그게 쉬운가. 다들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고돌볼아이들이있는데. 나는 매일 와 줄 사람이 필요하고.무엇보다도그토록어려운 일을 염치도 없이 친구들에게 부탁할 수는없는 노릇이었다. 내 연락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M이 먼저 연락을 했다.그리고지금까지파라오 슬롯 떠난 빈자리를 사랑과 성실로 채워주고 있다.
파라오 슬롯 떠난 지 꼭 열흘째다. 처음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파라오 슬롯 떠났네,라는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났다. 파라오 슬롯 떠나던 날은 또 어떻고. 누가 보면 이산가족이 임시 상봉했다가 다시 헤어지기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휠체어에 앉은 나와 허리를 구부린 파라오 슬롯 서로를부둥켜 앉고 한참을 엉엉 목놓아 울었으니까. 나중에 보니 그날 차로 뮌헨공항까지 우리 파라오 슬롯를 데려다주겠노라고 한참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현경네도 눈이 빨갰다. 뮌헨의 우리 집 1층 바깥에서였다.초록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기분 좋게 바람에 살랑이던 일요일 오전이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혹여 그날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그 풍경을기억할지도 모르겠다.운다고정신없던검은 머리의 두 이방인자매를.
M과 점심을 먹으러 다리를 건널 땐 저렇게 화창했는데 돌아올 땐 비가 왔다. 무슨 날씨가 정말 4월다웠다.
그 와중에도 퇴원 후2주마다항암은 계속했는데 파라오 슬롯 떠나기 전에 항암 사고가 일어났다.그날은파라오 슬롯을시작하기도전에의사들이파라오 슬롯을 계속할 건지 말 건지 계속물어봐서벌써 기분을 잡친 날이었다. 마치파라오 슬롯을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것처럼만들렸다.나보고 결정하라고 하면 어쩌라고. 자기들도 의사면 의사로서의 소견이 있을 거 아닌가. 계속하는 게 나을 거라거나 계속할 이유가 없다거나. 무뇌도 아니면서. 정말 짜증이 났다.파라오 슬롯 전 CT 결과는 그럭저럭 좋게 나왔다. 간이나 폐에 전이는없고,척추 전이에도변동은없었다. 다만 수액은 조금 더 고였다고. 나는 계속한다고말했다. 이 상황에 파라오 슬롯을 안 한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파라오 슬롯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갑자기말기 암환자로 치부되어 홀대를 받는 기분마저들어서러웠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바라는 대로 파라오 슬롯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 좋으라고!회복할가능성이 적다고내치는 듯해서독일의사들에게 정이 뚝 떨어지는 순간이었다(다음 파라오 슬롯하러 가서 떨어진 정은 다시 붙더라마는).
아참, 무슨 파라오 슬롯 사고인지 말을 하려다 삼천포로 빠졌다. 파라오 슬롯약을 파라오 슬롯 포트로 맞고 있는데 빨간 파라오 슬롯약을 2/3 정도 맞았나? 갑자기 목 쪽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게 아닌가. 처음엔 영문을 몰라서 손으로 물기를 닦다가 그게 파라오 슬롯약이 새는 거라는 걸 알았다. 깜짝 놀라 간호사를 불렀다. 상황을 안 간호사들도 깜짝 놀라 득달같이 의사를 호출했다. 나참, 파라오 슬롯 하다 파라오 슬롯약이 새는 경우도 다 있네! 정말 별일이 다 있다. 호출된 의사는 새파란 20대 여의사였는데 이럴 때를 대비한 매뉴얼이 있는지 큰소리로 매뉴얼을 읽었다. 간호사가 매뉴얼을 들으며 반복해서 파라오 슬롯약이 닿은 피부에 소독을 했다. 뭐 결론은 소독 정도. 놀라긴 엄청 놀라는 걸로 봐서 자주 생기는 사고는 아닌 듯했다. 자주 생겨서도 안 되지. 그 약이 얼마나 독한 약인데. 그래도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없었다. 참 지독하구나 싶었다.'놀랐죠? 미안해요!'두마디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 어렵나. 다시 짜증..(지금은 피부가 많이 나았다.의사와 간호사들도 기뻐해 주었다. 정말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번에독일호스피츠도알아보았다. 하마터면 홧김에 들어갈 뻔했다. 의사샘들이 파라오 슬롯 계속할래 말래 자꾸 물을 때 저 사람들이 진짜 의사 맞나회의가 들어서말이다.뮌헨에 있는 작은 규모의 호스피츠였는데 남편이 문의하니 나 같은 환자도 받아준다고 했단다.내가 비록오늘내일하는 환자는 아니지만 집에서 케어하기 어려운 경우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사실 쉽지는 않았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이동하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아, 다른 건 말하기도 싫다. 아무튼 그랬다. 한 달이 넘도록 브런치 글도 쓰기 싫었으니까말 다했다. 그렇게 상심이 컸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보다 더.그럼 지금은 모든 걸받아들이고달관했나? 그건 아니고. 오늘 M이랑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생각보다 맛있는거라.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주 내내 춥고 바람 불고 비 오고 눈 오고 우박 내리다가 다시 해가 나는 이상야릇한 사월 날씨를 겪다가 아늑한 실내에서 담백한 피자와 파스타와 덜 달면서 맛있는 티라미수를M과 다정하게나눠먹는데 그 시간이참 소중하고너무 좋은 거라. 안다, 항상 좋은 날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래도 이런 날은 행복하다 말해도 될것 같았다.그래서 다시쓰기로 했다. 오래 기다려주신 분들께는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쓰다가 또 주저앉을일이 생길지라도오늘 먹은티라미수 크기 만한희망만 생긴다 해도 다시 써 보겠노라조용히다짐하면서.
점심 후 M과 나눠먹은 티라미수도 꿀맛.. (담엔 두 개 시켜서 각자 하나씩 먹어보기로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