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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파라오 슬롯…

영화 <조커 : 폴리 아 되

영화 <조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해요.


'뉴스 전문 채널 1080 GCR이 종일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안녕하세요.10월15일목요일10시30분스탠브룩스입니다.

미화원 파업 18일째를 맞아 매일 1만 톤의 쓰레기가 쌓여 고급 주택가마저 빈민가처럼 변하자 오로크 보건 국장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비상 상태를 선포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장티푸스가 창궐할 겁니다. 그 정도로 심각해요. 지역을 막론하고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쥐가 들끓어요. 가게 입구가 막혀요. 망하게 생겼어요. 냄새도 그렇고 쳐다보기에도 역겨워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못 견디겠어요. 이 나라에서 50년을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파라오 슬롯이 어떻게 되려는지 얼마가 걸리든 모두 모여서 대화로 풀어야 해요. 방위군을 투입해 청소하는 것도 방법이죠. 한편, 건축업계와 건물주들이 난방유 인상에 우려를 표한 가운데 세입자들이 직격탄을…'


당신은 이 내레이션에서 어떤 단어, 어떤 문장이 젤 먼저 눈에 들어왔나요?

저는 '미화원 파업'이었어요. 그리고 손 써볼 새 없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어떤 장면, 장면들.


지난여름이었을 거예요. 학교 앞에서 두목을 만나 옛 추억을 더듬으며 골목을 돌고 돌고 또 돌다가 새로 생긴 유부초밥 집에 들어가 키오스크 앞에서 더 나이 들면 주문을 할 줄 몰라 밥도 못 먹는 거 아니냐고 키득거리며 주문을 하고 생각보다 커다란 유부초밥에 놀라 또, 키득거리며 유부초밥을 나눠 먹고는 맞은편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는데, 두목이 그래요. 난 우리 나이에 파라오 슬롯은 돌봄이라고 생각해. 순간, 입안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돌봄'이란 단어를 되새겼어요. 돌봄, 돌보다. 누군가를 또 다른 누군가가 보살피고 수발하다…. 평소 제가 아는 돌봄을 두목이 말한 돌봄에 슬며시, 겹쳐 대었어요.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자꾸 미끄러지는.


미화원의 손길이 사라진 파라오 슬롯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끔찍한 파라오 슬롯이 되고 말아요.쓰레기가 넘쳐나고 쥐가 들끓고 가게 입구가 막히고 냄새에 쳐다보기에도 역한. 한마디로, 망한 거죠.


저는 폴폴 작가님, 동선 작가님과 함께하고 있는 팟캐스트 <오직 파라오 슬롯하는 영화만이 살아남는다에서 영화 <조커 : 폴리 아 되를 이야기하면서 '돌봄'의 부재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돌봄'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는, 그런 위기의식을 공유하고싶어서. 아서 플랙이 살고 있는 그 끔찍한 파라오 슬롯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파라오 슬롯이랑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거든요.영화 <조커 : 폴리 아 되를 보는데 우리 시대의 파라오 슬롯도 어쩌면 '돌봄'이지 않을까… 지난 여름날이 깨어나면서 두목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연아, 우리 나이에 파라오 슬롯은 돌봄이야. 어, 두목.


무(無)의 상태로 파라오 슬롯 던져진 한 존재가 처음 세상과 만났을 어떤 감각을 상상했어요. 깃털이라든가, 솜털이든가, 피부라든가, 쇠붙이라든가, 돌이라든가, 바람이라든가, 나무라든가, 빛이라든가,라든가, 가시라든가, 꽃잎이라든가,종이라든가, 촛불이라든가, 눈송이라든그런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살아가면서 했을 무수한 선택과 갈림길마다의 폭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그 끝에 '돌봄'이 있었어요. 돌봄의 부재와속에서 길러진 어떤 존재가 행한 '마땅한' 돌봄(강제에 의한 것이든, 자의에 의한 것이든). 그리고 타인의 어떤 행위에 기댄 감정 분출을 봤어요. 기쁨이나 파라오 슬롯 혹은 분노나 증오 같은. 그러한 감정 몰이에 희생양이 된 어떤 몸짓도. 절규와도 같은.


영화를 보면서 사회적 규범과 질서 안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아서보단 아서를 바라보는파라오 슬롯들의 찬 눈길방치하고 짓밟고도 아무렇지 않은 무례파라오 슬롯 화가 났는데, 어느 순간 고마움이 파도처럼 밀려왔어요. 왜일까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어요.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sweet love

세상에 지금 필요한 것은 파라오 슬롯, 달콤한 파라오 슬롯이에요

It's the only thing that theres just too little of

너무 조금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죠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sweet love

세상에 지금 필요한 것은 파라오 슬롯, 달콤한 파라오 슬롯이에요

No not just for some but for everyone

몇몇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해서'

(영화 <조커 : 폴리 아 되 OST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중에서)


맞아요. 파라오 슬롯이었어요. 파라오 슬롯의 되밀림.몇몇이아닌모든이를 위한.

감독은 타인의 고통에둔해질 대로 둔해진, 이 망한 파라오 슬롯을 향해 노크하고 있었어요.노래와 춤으로. 조커가 아닌 파라오 슬롯의 거친 파도로부터 떠밀려온 가여운아서를 바라봐 주고 쓰다듬어 주고 살펴봐 주고 파라오 슬롯해 달라고. 놀리고, 비웃고,때리고, 밀치고, 가두고, 버리고, 죽이지 말고돌봐달라고,쉼 없이,노래하고 춤추면서역겨운 이 망한 파라오 슬롯 숨을 불어넣고 있었어요.


아서는 연인 리에게 전화를 걸어 말해요.


"나야, 아서."


그러나서가 아닌 '조커'를 파라오 슬롯했던 리는 끝내 아서를 떠나요. 저는 고백이자 선언과도 같은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면서 울었어요. 그리고 며칠 전,어떤문장을 읽다 또, 울었는데어쩌면 두 울음은같은 이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영화로도 제작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가 살인까지 해 가며 향수 제조에 광적인 집착을 했던 이유도 파라오 슬롯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다. 스물다섯 명의 생명을 빼앗아 만든 향수를 자신의 몸에 부은 살인자 그루누이가 사형장에 나타나자 뿌린 향수에 취한 수백 명의 군중은 그를 천사라 추앙하며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향수 한 방울이면 이 세상 전부를 지배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힘을 제조한 것이다. 그 향기에 취해 자신을 향해 경배하는 군중을 바라보던 그루누이는 제일 먼저 죽인 여자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에게조차 버림받고 단 한 번도 사랑받아 본 적 없는 그가 원한 건 결국 사랑이었다. 자신이 뿌린 향수 때문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본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다. 입맛 까다로운 입술로 쏜 화살이 날아올 때 튼튼한 방패가 되어 준 건 할아버지 게리의 달콤한 거짓말이었고, 세상이 시비를 걸어올 때 주눅 들지 않게 해 준 건 물부터 마시라는 걱정이 담긴 우리 엄마의 사랑이었다.'(박지향, <서쪽으로 난 창 '향수, 남편, 거짓말 - 피어 있는 동안엔 꽃으로, 지고 난 뒤엔 향기로' 꼭지 중에서)


당신에겐 오롯이 당신을 있는 그대로 파라오 슬롯하는 이가 있나요? 있다면, 당신은 그런 이름을 몇이나 쥐고 있나요?저는,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젠지워진 것도. 파라오 슬롯이면,파라오 슬롯만 있어도충분하지 않을까요,그런이름은. 아서에게도, 저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날, 폴폴 작가님 목소리가 오래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영화 어디에 파라오 슬롯이 있죠?


그 질문에 이제 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 그러니까, 제가 이 영화에서 본 파라오 슬롯은토드 필립스 감독 마음에 있다고. 아서나 리, 또는 그 두 파라오 슬롯 사이에 오간 어떤 기류가 아닌 곪을 대로 곪아 망한 세상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심폐소생술 같은 두드림에 있었다고.


똑똑!

거기, 누구 없나요?


'내가 만일 플라타너스라면 그 그늘에 들어가 쉴 테요

내가 만일 책이라면 잠 없는 밤, 지침 없이 읽을 테요

내가 만일 연필이라면

손가락 사이에서 나른히 있지만은 않을 테요

내가 만일 문이라면

선인에겐 열어 주고 악인에겐 닫아걸 테요

내가 만일 창이라면, 커튼이 달려 있지 않은 드넓은 창이라면

온 도시 전체를 내 방으로 불러들일 테요

내가 만일 하나의 단어라면

아름다움을 공정함을 진실함을 요청할 테요

내가 만일 말이라면

나는 내 파라오 슬롯을 나직이 말할 테요.'

(나짐 히크메트)


그림은 팟캐스트 <오직 파라오 슬롯하는 영화만이 살아남는다 조커 편에 실린, 동선 작가님 작품입니다.




실은 녹음하면서 반 고흐 얘길 하려고 했는데, 동선 작가님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못했어요. 다른 건 아니고요, 반 고흐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린 '아몬드 나무'처럼 예술은 '생명'을 담아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지점이 같은 정신병적 증세를 겪으면서도 한 파라오 슬롯은 생명을 담아내는 예술가로, 또 다른 이는 죽음과 폭력으로 갈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 그 여름날, 두목이 카페에서 나와 카페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런 말도 했어요.


자본주의 파라오 슬롯서 돈도 없으면서 꿈을 꾸는 건 죄야.

그럼 난 죄인이겠네.

그럼! 넌 대역죄인이지!

흐흐흐.


돈이면 뭐든 다 되는 파라오 슬롯서 허구한 날 쓰잘데기 없는 꿈이나 꿔대는 몽상가인 저는 졸지에 똥덩어리도 모자라 대역죄인까지 되었어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새해에도 끈기로운 어리석음 장착하고 똥덩어리 죄인으로 살 수밖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기 당신, 당신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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