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2012) - 김선영
-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사는 건가, 파는 건가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사는건가, 파는건가
-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 김선영, 2012.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 대한 관념에서,
당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략2년전아버지가폐암말기선고후딱1년만에돌아가신후부터였던것같다. 사실당시에는잘몰랐다. 작년에아버지의남은형제인백부와숙부가아버지를따라가셨고, 올해어머니가당뇨쇼크로오랜만에쓰러져병원에실려가시고뇌졸중으로오래누워계시던장인이돌아가시는과정이누적되면서나는'슬롯 머신 일러스트'에대한생각을떨쳐내지못하고있었던거다. 그것도모자라우리집마당지킴이였던알래스칸말래뮤트에코마저요단강을건너갔다.
일련의 '죽음'에 대한 관념이 3년 동안 나를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깊은 심연에 빠뜨렸다.
원래는아버지세대의'죽음'과그곳을향해서서히걸어가는어머니세대, 하다못해마당을지키던큰개까지가세하는과정을반추하면서, 마치'죽음'의필연적종착점을향해직진하는중세적슬롯 머신 일러스트관으로부터나는벗어나고자했다.
그러나그후로도몇개월더나는'슬롯 머신 일러스트'에게잡혀있었다.
아니 사실 내가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붙잡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객체적으로는 '죽음'을 늘상 연상하는 83세의 노모가 내 곁에 계셨고, 주체적으로는 미욱한 솜씨라도 매주 글을 끄적여대야 내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 나를 잡았고,
내가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잡았다.
이제 슬슬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조금씩 놓고 싶은 마음에 집어든 책이 김선영 작가의 소설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2012)이었던 거다.
"우리가 맞이하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 늘 처음인 것처럼."
소설의 첫 문장이 아니고 마지막 문장이다.
반복하는 듯 아닌 듯 흘러가고 다가오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 관한 작가의 결론인 것이다.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은 '백제'라는 이름의 소방관 아버지를 일찍이 먼저 떠나보내고 환경시민단체 활동가인 어머니와 둘이 사는 '백온조'라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짧은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백제'의 딸 '온조'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은 1학년부터 2학년 가을까지 약 1년을 두고 있으되 주인공의 삶에서는 결코 짧다고만 볼 수 없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 관한 장기적인 성장과정으로 볼 수 있다.
2020년대 들어 '편의점'이든 '골동품서점'이든 대유행하기 전이었던 2012년에 일찍이 '상점'을 제목으로 다룬 소설인데, 고등학생 백온조의 알바가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의 정체다.
일종의 심부름센터 같은 '상점'을 인터넷 카페에 개설하고 의뢰인들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대신해서 써주는 일을 익명 및 비밀보장의 조건으로 맡아서 처리해주는 거다.
학교에서 발생한 우연한 도난사건에서 장물을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첫 번째 의뢰건부터 시작하여 할아버지, 아버지와의 잃어버린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다시 이어주기 위한 일, 죽은 보육교사의 생전 의뢰를 받아 남은 아이들에게 한 통씩 천상의 편지를 몰래 전달해주는 일, 정식의뢰는 아니지만 절친의 짝사랑을 연결해주는 일 등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사색하고 통찰한다.
'사간을 파는 상점' 주인장 백온조의 익명은 '크로노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절대적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관장하는 거인족 타이탄이면서 제우스 형제자매들의 아버지다. 한편으로 '크로노스' 백온조가 느끼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은 '카이로스'에 가깝기도 하다. 앞머리는 길지만 뒷머리는 대머리인, 앞에서 올 때는 잡아야 하고 또 잡기도 쉽지만, 한 번 지나가 버리면 대머리라 잡을 수 없는 '기회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다. '카이로스'이기도 하고 영어 'occasion(기회)'의 어원인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이기도 하다. 또 다른 버전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제 때에 잡지 못하면 어떻게든 그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다른 '기회' 또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 또 올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지나가 버린 그 '슬롯 머신 일러스트'과는 다르다.
그래서[슬롯 머신 일러스트을파는상점]이보는모든'슬롯 머신 일러스트'은늘'처음'이다.
객관적으로는 '나선형'으로 진보하는 근대적 슬롯 머신 일러스트관을 믿는 내가, 주관적으로 최근 3년 동안 '죽음'의 필연을 형해 '직선형'으로 흐르는 중세적 슬롯 머신 일러스트관에 빠진 것처럼,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에서 주인공 '크로노스'가 일련의 성장을 통해 '카이로스'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관을 정립하는 과정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성장소설이기에 다소 유보적이기도 하다.
"온조는 지금 맞이할 이 '순간'을 먼 미래의 어느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 맡겨두려 한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라는 것이 지금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은 '지금'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또 다른 어딘가로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그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놓치 않는다면."
-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파는 상점], <미래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 맡겨두고 싶은 일, 김선영, 2012.
중년인 나도 이제,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 관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둬야겠다.
타인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돈을 받았으니 파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본인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지불하면서 도리어 타인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사는 것인지 모를 슬롯 머신 일러스트 상점 주인 백온조처럼,
'크로노스'의 관장 아래 무시로 흘러가는 '카이로스'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 나를 잡고 있는지, 아니면 도리어 내가 잡으려 하는지를.
내 생각엔,
'크로노스'의 '나선형 슬롯 머신 일러스트'은 나를 잡고 있지만,
'카이로스'의 '직선형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잡으려 하는 건 오히려 나인 것 같다.
그러니 굳이 이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려 한다.
'크로노스'의명령에따라지금지나가버린이'카이로스'의'슬롯 머신 일러스트'은아쉽게도뒤통수가대머리라잡을수가없겠지만, 또다시찾아올다른빛깔의또다른'카이로스' 또는기회의여신'오카시오'의그'슬롯 머신 일러스트'은그앞머리를잡아둬야겠다는.
내가 맞이하는 모든 '슬롯 머신 일러스트'은 항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기꺼이 지불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귀하게 사야겠다.
나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팔아,
소중한 이들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사는 상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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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파는상점],김선영, <자음과모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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