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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포를 슬롯 꽁 머니로 변신시키며

우리 집 다용도실에는 황태포가 살고 있었다. 남편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사 왔는데 도통 먹게 되지가 않았다. 그나마 한 마리는 내가 맥주 안주로 먹어치워서 남은 게 네 마리.슬롯 꽁 머니였다면 손쉽게 반찬을 해 먹었을 텐데. 손질하고 양념에 재워 황태구이를 만들어 먹을 정성이 내겐 없었다.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살림 특히 요리와 멀어진 지 오래였다.


오늘 아침에 드디어 저것을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주방 바닥에 퍼질러 앉아 가위로 지느러미와 머리, 꼬리를 떼어냈다. 몸통을 한 입 길이로 조각조각 자르고 껍질을 벗겼다. 가시가 있나 손가락으로 훑으면서 세로로 찢었다. 황태포에서 슬롯 꽁 머니로 변신한 놈들을 물에 살짝 적셔 부드럽게 만들었다. 남편이나 나나 치아가 부실해 딱딱한 밑반찬은 좋아하지 않는다.마지막으로 들기름을 듬뿍 넣은 고추장양념을 넣고조물조물무쳤다. 드디어 애물단지가 맛난 반찬으로 탈바꿈했다.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네! 다용도실을 열 때마다 몰려오는 찝찝함과 귀찮음에서 이제야 해방되었다. 막상 하면 별 것도 아닌 것을 왜 그리 미루었는가. 아이를 키울 땐 꽤 성실한 주부였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 새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때 너무 열심히 해서 지친 탓일까? 어느새 나는 심각하게 불량한 주부로 살고 있다.


철철이 직접 장아찌와 매실청을 담그고 식혜를 만드는 여자들을 보면 참 부지런하다 싶다. 바른생활 시절에도 난 그 정도는 아니었다.내 얼굴이 단정한 인상이라 엄청 살림을 잘할 것 같이 생겼다만. 실제의 나는 살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게 분명하다.아이가자랄후천적인모성이본성을살짝 앞질렀나 봄. 지금은 다시 원위치.


예전에 5반상이상은되어야만족했던남편도이젠주는 대로먹는다.살아남을방법을뒤늦게터득한 게야. 바람직한변신이고말고.오늘저녁밥은슬롯 꽁 머니무침과 (어제 먹고 남은) 된장찌개 예정. 난 그걸로 충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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