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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진 사랑

영화 〈5 to 7〉으로 보는 미완된 사랑의 완성도에 관하여


즐겨 듣는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채널 주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영상의 감각이 좋은. 그 플레이리스트는 늘 한 편의 영화에서 여러 몽타주를 따와서 이어 붙인 영상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엔 대사를 읊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오다가 이내 다른 영상으로 이어지고, 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첫 곡이 플레이된다. 그동안 영상은 내내 움직이고 있고- 그러다 시청자 대개가 몰랐지만 마음속으로 바라 왔음을 깨닫는 어떤 순간 영상이 음악과 맞물리며 멎고, 음악은 맞물리는 그 순간 이후 내내 재생되고 또 다음 곡으로 순서를 이어간다.


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는 친절히도 채널 주인이 어떤 영화에서 따온 영상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있었는데, 그동안은 많은 영상을 보며 뛰어난 감각에 감탄하면서도 이 정보를 정보로만 인식한 뒤 넘겨버렸다. 다만 어제는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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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한 에드워드 호퍼의 두 그림, 〈긴 다리(The Long Leg)〉와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


영상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남자와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얼굴로 시작한다.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미술에 남자보다 식견이 있어 보인다. 둘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긴 다리(The Long Leg)〉를 보고 있다. 남자는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 그림을 보고 ‘죽음’과 ‘위협’을 논하는 바카라사이트 추천를 이해하지 못한다. 뒤이어 둘은 〈밤샘하는 사람들(Nighthawks)〉 앞으로 이동한다.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그 그림을 보면서도 그림 속 맞은편 가게는 문을 닫았고, 세입자들은 모두 쫓겨났고 건물은 폐허가 됐다며 호퍼라는 작가가 미국의 전형적인 작가라면 미국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일침한다. 당황한 남자는 미국은 살아 있음을 항변하지면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쉽게 수긍하지 않으며, 미국이 살아있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요구한 사랑의 증명은- 남자가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돌연 입을 맞추며 시작된다.


사랑하는 눈빛이 넘실거리는 스크린 속 두 사람의 행복한 한때와 적절한 음악이 뒤섞인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또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영화에 대한 흥미가 치솟았다. ‘사랑의 증명’을 키스로 해낸 앳된 얼굴의 남자도, 염세적인 얼굴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관해 열변을 토하다가도 사랑의 증명을 요구하는 자신에게 키스한 남자만의 사랑의 증명에 잠시 얼이 빠진 듯 눈빛을 주체하지 못하던 바카라사이트 추천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OTT 플랫폼에서 부가세 포함 1,540원이면 7일 대여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결제하고 커피 한 잔을 준비해 온 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플레이리스트와는 달리 영화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벤치로 시작한다. 정확히는 센트럴파크 벤치에 새겨진 문구들로. 벤치의 문구는 반 백년해로를 자랑하기도,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기도, 어떤 이의 키스 스팟을 알려주기도, 또 어느 커플이 만들었을 사랑의 약속을 보여주기도 한다. 센트럴 파크 벤치들의 문구는 뉴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글로 화자가 선정한 문구들이며, 여기서 화자는 아까 그 플레이리스트에서 키스로 사랑을 증명하던 남자다.


그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작가 지망생이다. 투고한 출판사 등으로부터 받은 거절의 편지들을 마치 훈장처럼 벽에 전시해 둔.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으며, 새로운 만남이나 연애에도 관심이 없다. 걷다 말고 평생 딱 한 번 길을 건너게 한 ‘그녀’를 보기 전까지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매혹적인 외모와 차림새의 여성은 그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담배 냄새에서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모국을 프랑스나 스페인으로 추정한 남자는 두 나라의 언어 중 할 줄 아는 언어인 프랑스어를 택해 바카라사이트 추천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통성명을 시도하고,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이름은 아리엘로 밝혀진다. 이름을 듣고는 디즈니의 영화인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를 연상하는 남자를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귀엽게 바라본다.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남자에게 다음에 또 만날 의향이 있는지를 묻고, 둘은 둘의 첫 만남에서처럼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인 금요일 점심시간에 처음 만난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두 사람은 그렇게 비 오는 금요일 점심에 두 번째로 만나고, 다음 금요일이 오기 전이라도 평일 오후 5-7시에는 항상 만날 수 있다는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말에 남자는 월요일 오후 5시를,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만남의 장소를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제안하고 둘 다 그 약속에 합의한다. 그렇게 세 번째로 만난 두 사람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앞에서 아까 그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했던 ‘사랑의 증명’을 경험하게 된다.


‘평일 오후 5-7시에는 늘 한가하다’.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이 말은 본인이 기혼임을 알리기 위한 말이었으나 아직 어리고 순진한 남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 중에야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여전히 기혼임을 알게 된 남자는 충격을 받는다. 불륜을 하는 것은 본인의 도덕선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둘이 처음 만난 그 요일 그 시간대 그 장소에 있겠으니 마음이 바뀌거든 그때 나타나라고 말한다. 혹여 둘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남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알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어떤 사랑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도무지 망가지지 않기도 하는 법. 마음속으로 본인의 도덕선과 치열하게 싸우던 남자는 결국 세 번째 금요일에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처음 만난 그 시간대 그 장소에서 만난다. 연인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연인으로서의 서로를 받아들인 둘은 살갑게 사랑한다.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면서. 그러던 중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남편(이하 ‘발레리’)이 길을 걷던 남자를 불러 세우고,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 남자에게 고마움을 표하더니 어느 주말 식사 자리에 남자를 초대한다. 썩 내켜 하지 않는 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자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그 발레리의 자녀와, 발레리의 연인이자 편집자로 일하는 제인을 만난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기혼자와 연인이 된 서로의 처지에 회의를 느끼는 남자에게 제인은 인생은 모든 순간의 모음이며, 그렇기에 좋은 순간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한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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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과의 대화를 통해 바카라사이트 추천와의 만남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한 남자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바카라사이트 추천를 소개시켜 준다.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아이가 둘이나 있는 기혼자임을 안 남자의 부모님은 기겁하지만 이내 남자의 엄마는 그 둘의 관계를 인정하며 남자와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관계를 반대하는 남자의 아빠를 설득한다. 세상에는 싸울 수 없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자연이고 하나는 사랑이라고.


남자는 남자의 인생에 바카라사이트 추천와의 행복한 시간들을 덧입혀 가고, 그사이 남자에게는 뉴요커지(紙)에서 신인 작가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온다. 시상식에 남편인 발레리를 대동한 바카라사이트 추천를 보고 남자의 마음은 수상하게 뒤엉키고,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남자는 계약금으로 받은 6천 달러를 모두 털어 디올의 반지를 구매하기에 이른다.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청혼하기 위한 반지를.


그 이후는- 내내 내 가슴을 뭉개는 슬픈 장면의 연속이었다. 남자는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청혼하고,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청혼을 거절하다가 너무도 깊어진 사랑의 감정에 못 이겨 청혼을 수락할 것처럼 남자에게 다음 날 사랑의 도피를 제안한다. 5시가 아닌 4시에. 남자는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함께 떠날 여행을 위한 짐가방을 들고 다음날 4시에 약속 장소이자 둘이 사랑을 속삭이던 호텔 방인 2117호에 도착하지만 2117호는 하우스키핑 서비스로 분주할 뿐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그제야 떨리는 손으로 호텔로 들어설 때 도어맨이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전해주라고 한 물건이라며 전해준 봉투를 집어 든다. 그 안에는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남자에게 쓴 편지와, 남자가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청혼할 때 전했던 디올 반지가 들어 있다.


보이스오버로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편지가 영상 위로 낭독되는 내내 나는 울어야 했다.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언어가 사랑 범벅이었으니까. 철저한 사랑으로 점철된 언어로 고하는 만남의 끝이란 필연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으니까.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발레리에게 느끼는 애착이나 존경도 사랑일 수 있었고, 그게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아는 사랑의 전부였지만 사랑을 믿은 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남자를 처음 보게 되던 날에야 사랑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과, 남자와 함께 있을 때만큼 살아 있음을 느낀 적이 없다는 사실도. 다만 발레리와 결혼할 때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기겠다’*고 서약했고, 발레리 역시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 왔으므로, 그 약속을 저버리고 남자의 청혼을 수락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때 오프닝 때 나왔던 센트럴 파크 벤치의 문구들 중 가장 화면에 오래 잡혔던 바로 그 문구가 화면에 등장한다.



이어지는 편지 속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고백처럼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남자가 더 오래 만났더라면 못 견디게 싫은 남자의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고백한다. ‘완벽한 사랑은 없다고들 하는데, 그건 당신을 몰라서 하는 말 같다’고. 이보다 더한 사랑 고백은 없을 것 같았다.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음성으로 낭독되는 편지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바카라사이트 추천가 보낸 편지의 백미. ‘완벽한 사랑은 없다고들 하는데, 그건 당신을 몰라서 하는 말 같거든요.’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헤어진 남자는 좀처럼 행복해지지 못한다. 못 이기는 슬픔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그 책**이 출간되어 남자가 즐겨 찾던 서점에 전시될 때도 기쁨에 취하지 못한다. 다행히 흐르는 시간과 함께 남자는 고통을 서서히 극복해 내고, 추억과 사랑했던 그 바카라사이트 추천를 믿기로 한다. 둘의 인연은 끝난 게 아니라 서로의 가슴 속에 간직된 채 머물러 있는 거라고.


시간이 흐른 뒤의 남자는 어느덧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은 것처럼 보인다. 조각난 사랑의 상흔을 극복하긴 했어도 여전히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환영을 이따금 보기는 하지만. 아내와 유아차 안의 아이와 함께 구겐하임 미술관 앞으로 향하던 남자는 첫 만남의 운명적인 순간처럼 미술관을 나오는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발레리, 또 그들의 아이들을 마주치게 된다. 두 가족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남자와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둘만의 눈빛을 주고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사이에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장갑이 가리고 있던 손가락에는 남자가 청혼할 때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주었던 반지가 끼워져 있다. 남자는 그 반지를 알아보고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눈을 바라본다. ‘우리의 사랑은 아직 여기에 남아 있어요’, 눈을 마주 보지 않는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입매에서는 그런 말이 발화되지 않은 채 발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엔딩 씬에 등장하는 문제의 반지. 반지를 돌려주며 청혼을 거절했던 바카라사이트 추천에게 다시 전달되어 남겨진 남자의 사랑의 증표.


남자의 예감처럼,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서 헤어진 두 사람은 앞으로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손가락에 남자가 전달했던 사랑의 증표가 남겨져 있듯이, 남자는 오로지 바카라사이트 추천만을 첫 독자로 상정한 채 글을 쓰는 작가일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루어진 사랑. 고백하지 않고 고백되는 마음. 겹쳐질 수 없지만 늘 동행하는 두 갈래의 선(). 타고난 로맨티시스트인지 뭔지 나는 고를 수 있다면 언제나 이루어지는 사랑과 겹쳐지는 선으로 그리는 사랑을 택하겠지만, 완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감정의 영속성과 견고함 또한 믿는다. 영화의 엔딩에서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본 후 바카라사이트 추천와 남자가 마지막으로 나누는 눈빛을 보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루어진 사랑보다도 더 지워지고 무너지지 못하도록 견고하리라는 것을.



*영화 속에서 바카라사이트 추천는 프랑스계로 등장하고, 이 부분은 프랑스어로 말한다. 원어로는 “Ton coeur me sera toujours plus cher que mien.” 한국어로는 ‘당신의 마음을 언제나 나의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출판된 책의 제목은 《인어(The Mermaid)》. 바카라사이트 추천의 이름이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를 연상시키는 아리엘(Arielle)임을 떠올리면 가슴이 무너지는 장면 중 하나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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