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후회'가 아닐까. 아이가 이렇게 빨리 클 줄 알았다면 좀 더 자주 안아줄 걸,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다정히 이야기해 줄 걸, 엄마 엄마 부르고 찾을 때 옆에 더 있어줄걸.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사랑한다고 더 자주 말했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모시고 여행 많이 다녔어야 했어...... 유독 가족에게는 기회가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많다.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설 바카라가 암이라는 병마를 만나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면서 후회의 파도에 매일같이 휩쓸렸다. 내가 사회생활한답시고 연로하신 부모님께 아기를 맡기지 않았다면, 사설 바카라가 자꾸 살이 빠지는 걸 보고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런다'라고 타박하는 대신 이상신호를 감지하고 검진을 받게 해 드렸다면, 그랬다면 사설 바카라는 병에 걸리지 않으셨을까. 최소한 병이 깊어지기 전 아주 초기 단계에서 발견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까. 무심했던 나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의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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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무너졌다. 하루종일 손자를 안고 동네를 활보해도 힘든 줄 모르던 사설 바카라의 단단하던 팔이 순식간에 가느다랗고 앙상한 마른 가지처럼 변해버린 걸 보았을 때, 사설 바카라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져서 결국 삭발을 한 날, 사설 바카라의 휴대폰 앨범에서 영정사진 포즈로 찍은 여러 장의 셀카를 발견했던 날. 그럴 때면 그저 풀썩 주저앉아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엉엉 울고만 싶었다.
하지만고통스러운 시간을 온몸으로 겪는 와중에도 우리 중 가장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사설 바카라를 보며 다들 마음을 다잡았다.수차례의 항암치료와 수십 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는 내내 사설 바카라는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의료진 한 명 한 명에게 "저를 이렇게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90도로 절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입원해 있는 동안은 매일같이 복도를 거닐며 유산소운동을 하거나 옥상정원에서 근육 운동을 하고 주변 환자들에게 골프 자세를 가르쳐주는 등 병원을 헬스장으로 만들며 핵인싸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사설 바카라는, 치료 기간 내내손주를 돌보는 일을 멈추지않았다. 입원기간이나 항암 직후 몸이 많이 쇠했을 때를 제외하고는예전과다름없이 우리 집을 찾아 손자와 함께 하루를 보냈다. 전처럼 아이를 계속 안아 주지는 못했지만, 많은 시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사설 바카라는 손자를 돌보는 일 자체를 절대 놓지는 않았다. 내가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를 보겠다 했을 때도 사설 바카라는 "정 힘들면 얘기할 테니 그때 휴직을 해라"라고 할 뿐, 그 '정 힘들면'의 시간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저 기나긴 치료를 언제 다 받나, 아니 치료 과정이 다 마무리될 때까지 사설 바카라가 이 세상에서 잘 버텨주실까 걱정했던 날들이 어느새 흘러가고, 사설 바카라는 최초에 들은 여명 3개월을 훌쩍 넘기고 예정된 모든 치료를 성공적으로 다 받았다. 그리고 매번 마음을 졸였던 정기검진 주기가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으로 늘어나며 우리의 긴장감도 희미해지고 어느덧 암 판정을 받은 지 8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집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며손자를 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치료 중인 사설 바카라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었던 손자 돌보기가 사설 바카라를 지켜준 소중한 루틴 같기도 하다. 세상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손자가 주는 에너지를 받으며 사설 바카라는 살아야 하고 건강해야 할 이유를 매일같이 되새기지 않았을까. 어떤 복과 기적이 사설 바카라를 살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에게 힘들었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항상 함께여서 참 다행이었지싶다.
사설 바카라 가족은 무적의 5인조!
그토록 큰 병에 걸리고서도, "내가 복이 많아서 이렇게 좋은 병실을 혼자 쓴다."며 1인실 생활에 그저 감사해하던 사설 바카라. 비록 딸인 나는 세상 비관적이고 걱정 많은 투덜이지만, 내 아이만큼은 할아버지의 긍정 에너지를 물려받았기를 바라며,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설 바카라! 오늘도 우리 집에 건강히 와 주셔서 고마워요. 우리 아들을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많이 사랑해요 나의 사설 바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