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5DVw 히스토리텔러.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 ko Wed, 22 Jan 2025 22:12:21 GMT Kakao Brunch 히스토리텔러.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 //img1.daumcdn.net/thumb/C100x10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IKhYT1DadkK2uyimAG8DhP9bGkI.jpg /@@5DVw 100 100 '서부 전역'-대서양으로의 질주, 파리 함락 - [3] 프랑스의 참패와 영국의 항전 /@@5DVw/244 ■선회와 돌파 독일군 제1기갑사단에 소속된 제2전차연대는 대대를 2개 방면으로 투입했다. 한 대대는 불송으로, 다른 대대는 셰메리로 향했다. 전자가 콘나주와 불송을 연하는 선으로 들어왔을 때, 프랑스의 제213보병연대 및 제7전차대대와 마주쳤다. 당초 독일군에겐 전차가 부재해 매우 힘든 싸움이 예상됐다. 프랑스군이 공격을 본격화하려던 찰나에 극적으로 전차<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ov1sQKjpK09m977jGVstwqm7J-Y.jpg" width="500" /> Wed, 22 Jan 2025 11:24:24 GMT 최경식 /@@5DVw/244 '서부 전역'-독일과 프랑스의 전략, 아르덴 돌파 - [2] 프랑스의 참패와 영국의 항전 /@@5DVw/243 ■독일과 프랑스의 전략 히틀러와 독일군 지휘부는 전투 없는 전쟁 중에 프랑스 침공 작전을 고심했으나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했다. 히틀러의 닦달로 독일군 지휘부에서 작전 계획이 도출되긴 했지만 영 시답잖았다. 이른바 '황색 작전'이었는데, 이는 독일군이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구축된 연합군 방어선에 정면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여기를 돌파한 뒤 프랑스 파리로&nbsp;진<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J5ewqdOOFC7aNquahxRtnMcRjac.jpg" width="402" /> Fri, 10 Jan 2025 10:46:57 GMT 최경식 /@@5DVw/243 '서부 전역'-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 - [1] 프랑스의 참패와 영국의 항전 /@@5DVw/242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운 아돌프 히틀러가 친위 쿠데타인 '장검의 밤'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후, 나치 독일은 급격히 전쟁의 길로 나아갔다. 국제연맹을 탈퇴한 데 이어 군사력을 제한하고 있던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 재무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징병제가 시행되면서 독일 육군의 규모가 대대적으로 증강됐다. 군수공장도 활발히 가동됨에 따라 수많은 무기들이 생산<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gSuIRhF8dBrLv4UYRxzysVegVx8.jpg" width="500" /> Thu, 02 Jan 2025 11:16:08 GMT 최경식 /@@5DVw/242 '독소 전쟁'-바그라티온 작전, 독일의 몰락 - [5]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 /@@5DVw/240 ■바그라티온 작전 소련군 지휘부는 1944년 여름에 강력하고 집중된 공세를 감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몇 차례에 걸쳐 행해질 것이었는데, 중부 전선의 민스크에 있는 독일군을 분쇄하는 게 핵심이었다. 이곳에서 성공하면 소련군(서부전선군)은 동프로이센과 발트해 연안 방면으로도 나아갈 생각이었다. 또한 코네프가 이끄는 소련군(제1우크라이나전선군)이 폴란드의 르<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A4dGvk36Ns2enDJ7QmAXxb1bLuI.jpg" width="500" /> Fri, 27 Dec 2024 10:33:17 GMT 최경식 /@@5DVw/240 '독소 전쟁'-사상 최대의 기갑전, 소련군의 대반격 - [4]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 /@@5DVw/239 ■사상 최대의 기갑전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1943년 봄이 찾아오자,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아픔을 딛고 재기를 모색했다.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만간 만슈타인의 주도로 '성채'라는 암호명으로 된 군사 작전이 입안됐다. 이는 독일군 쪽으로 돌출돼 있는 쿠르스크 시 주변 지역의 소련군을 궤멸시키려는 것이었<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ZP2pBmXS-g7wYOoI0ss_VpQiAa4.jpg" width="500" /> Sat, 21 Dec 2024 11:05:02 GMT 최경식 /@@5DVw/239 '독소 전쟁'-지옥과 천당, 스탈린그라드 전투 - [3]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 /@@5DVw/238 ■지옥과 천당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의 참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서술한 대로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철저한 방어 태세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바리케이드와 대전차호, 기관총, 소총, 지뢰 등을 대거 설치했다. 순양함으로부터 함포도 가져왔다. 소개령이 떨어졌음에도 도시를 사수하겠다며 남은 사람들도 많았다. 레닌그라드 사수 임무를 맡은 주코프는 시민들<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ob0HZ6rt27CmhWITWq1lIIERUB4.jpg" width="500" /> Wed, 18 Dec 2024 10:10:25 GMT 최경식 /@@5DVw/238 '독소 전쟁'-바르바로사 작전, 소련군의 붕괴 - [2]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 /@@5DVw/237 ■바르바로사 작전, 소련군의 붕괴 소련을 겨냥한 독일군의 공격은 초전부터 매우 신속하고 파괴적이었다. 독일군 항공기들이 빠르게 날아가 위장도 하지 않은 채 활주로에 줄지어 있는 소련군 항공기들을 대거 파괴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66개 기지에 있는 약 1200대의 항공기가 파괴됐다. 주요 표적지인 민스크, 키예프, 세바스토폴에도 무지막지한 폭격이 가해졌다<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kkiM-u5BpjvY1AWwAnGibkl1pPo.jpg" width="500" /> Sun, 08 Dec 2024 10:05:28 GMT 최경식 /@@5DVw/237 '독소 전쟁'-독일과 소련, 다가오는 파국 - [1]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 /@@5DVw/236 ■거짓 협력 나치 독일과 소련은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사이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과 민족성을 매우 혐오했다. 또한 자라나는 소련의 군사력을 위협적으로 여겼으며, 언젠가 소련과의 전쟁이&nbsp;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탈린도 히틀러와 나치즘이 지향하는 바가 소련의 그것과 완전히 상충된다고 판단했다.&nbsp;기실 독일과 소련 둘 다 전<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IwZaxNNKI-mwzX8gYGYoACCpOfI.jpg" width="500" /> Tue, 03 Dec 2024 10:35:36 GMT 최경식 /@@5DVw/236 '한국 전쟁'-고지 쟁탈전, 정전 협정 체결 - [5] 냉전 시대 최악의 열전 /@@5DVw/234 ■정전 협상과 고지 쟁탈전 미국을 비롯한 유엔 측만 정전 협상에 뜻을 둔 게 아니었다. 공산 진영도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정전을 추진했다. 1951년 6월 13일, 소련과 중국 북한 대표가 모스크바에 모여 '조건부 정전'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23일에는 유엔 주재 소련대사 말리크가 공식적으로 정전을 제안했다. 유엔군 측의 리지웨이가 전면에 나서 공산권과 <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kL7IyjKItcCuBdNABzrrgppqmmE.jpg" width="500" /> Thu, 28 Nov 2024 10:04:35 GMT 최경식 /@@5DVw/234 '한국 전쟁'-중공군 개입, 완전히 새로운 전쟁 - [4] 냉전 시대 최악의 열전 /@@5DVw/233 ■중공군 개입 중국은 일찌감치 한반도에 군대를 파병할 태세를 갖췄다. 다만 최종적인 파병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오고 갔다. 저우언라이와 린뱌오는 파병에 반대했다.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유엔군이 국경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펑더화이와 주더는 파병에 찬성했다. 한반도의 무수한 산악 지형을 활용해 적<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gaYFdqpU9Nmvk_f1xdfmhWaapoU.jpg" width="500" /> Sat, 23 Nov 2024 10:36:52 GMT 최경식 /@@5DVw/233 '한국 전쟁'-인천상륙작전, 거침없는 북진 - [3] 냉전 시대 최악의 열전 /@@5DVw/232 ■인천상륙작전 맥아더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6월 29일에 한강 방어선을 시찰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중요한 구상을 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었다. 남진하는 북한군을 적절한 지점에서 방어하면서, 불시에 적군의 측면을 공격해 전황을 일거에 뒤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태평양 전쟁에서 각종 상륙 작전을 지휘해 본 경험이 있었던 만큼 맥아더는 상당한 자<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9Y7m_o_MiatFyFUNrTOpqEe9er4.jpg" width="500" /> Fri, 15 Nov 2024 07:48:10 GMT 최경식 /@@5DVw/232 '한국 전쟁'-북한군의 전격 남침, 필사의 지연전 - [2] 냉전 시대 최악의 열전 /@@5DVw/231 ■북한군의 전격 남침 북한군의 남침은 서해안의 옹진반도에서 동해안의 강릉까지, 38도선 전역에 걸쳐 전개됐다. 한국군은 5시 30분 전군에 전투준비태세를 발령했다. 북한군의 주공격은 '동두천, 포천-의정부' 방면에서 이뤄졌다. 이곳은 서울에 이르는 단거리 접근로였다. 조공격은 서부 지역인 '옹진'과 '개성, 문산' 방면에서 이뤄졌다. 우선 옹진에서 2개 연<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LO_uRsrD3nAmRuPMXeEDtA3IJW0.jpg" width="500" /> Fri, 08 Nov 2024 10:27:10 GMT 최경식 /@@5DVw/231 '한국 전쟁'-분단 체제 성립, 공산권의 적화 야욕 - [1] 냉전 시대 최악의 열전 /@@5DVw/230 ■분단 체제 성립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대일전을 선포한 소련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만주에 있는 일본 관동군을 순식간에 제압한데 이어 한반도 이북 지역까지 쳐들어갔다. 일본이 항복한 뒤인 1945년 8월 24일 소련군 선발대가 평양을 점령했고, 얼마 안 가 북한 전 지역이 소련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소련군은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들에게 자유와<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K6K_mYt5zlmTU3oYUa0Ly85RkZg.jpg" width="500" /> Thu, 31 Oct 2024 10:45:28 GMT 최경식 /@@5DVw/230 '태평양 전쟁'-일본 본토 폭격, 원자폭탄 투하 - [5]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5DVw/228 ■이오지마, 오키나와 전역 일본은 1945년 초에 '결승비상조치요강'을 결정한 바 있다. 이른바 '본토 결전'과 '국체 보호유지' 구상이었다. 국토방위를 위해 국민조직을 재편성하고 총무장을 단행할 것, 국가가 중요생산 및 교통수송을 관리할 것, 국가의 통제가 말단까지 미치도록 만전을 기할 것 등이 담겼다. 국가정책과 작전의 일체화, 일본 만주 중국의 일체화<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g0E97vf-G9JCzDQatBsdF6_rWCM.jpg" width="500" /> Fri, 25 Oct 2024 10:51:12 GMT 최경식 /@@5DVw/228 '태평양 전쟁'-미국의 압도적 공세, 필리핀 탈환전 - [4]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5DVw/227 ■미군의 대반격 일본군은 과달카날 전투를 전후해 뉴기니 동남부에서도 패퇴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1943년 1월 초 뉴기니 부나 부근에 상륙해 일본군을 물리쳤다. 일본군은 서북방의 라에-살라마우아 지역으로 후퇴했다. 아울러 맥아더가 지휘하는 미국, 호주 연합군 가운데 호주군이 다른 방면에서 일본 남태평양 파견군을 압박했다. 과달카날 전투에서 승리한 미군은 라<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rh-fhP84tRi_22WeO-kwTgjkukE.jpg" width="500" /> Sat, 19 Oct 2024 10:28:28 GMT 최경식 /@@5DVw/227 '태평양 전쟁'-미드웨이 해전, 대반격의 서막 - [3]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5DVw/226 ■미드웨이 해전 일본군은 남방 한계선을 더욱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파푸아뉴기니의 전략적 요충지인 '포트 모르즈비'를 공격 목표로 삼았다. 미국과 호주의 연결을 차단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일본군은 우선 라바울을 기지로 삼고 육해군 협동 공격부대를 편성했다. 뒤이어 동부 뉴기니 북쪽 해안의 라에-사라모아를 점령했다. 5월 4일이 됐을 때, 일본군은 모르<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66_w3c9IK9IcILhqtRYmEcJt8ZM.jpg" width="500" /> Fri, 11 Oct 2024 10:05:17 GMT 최경식 /@@5DVw/226 '태평양 전쟁'-진주만 공습, 승승장구하는 일본군 - [2]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5DVw/225 ■진주만 공습 기실 진주만 공습 이전, 일본군은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위한 대비를 어느 정도 해놨다. 스파이들을 통해 미 해군 방어시설과 비행기, 함정의 종류 및 동향 등을 파악했다. 진주만과 오아후 섬의 지형지물도 숙지했으며, 실제 축척대로 만든 모형 군함을 활용해 공습 시 진입 방법 등을 이미지 트레이닝했다. 진주만의 지형과 흡사한 일본 규슈의 사쿠라섬<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44akIvfBrodRxmymDCOY-msJKQY.jpg" width="500" /> Wed, 02 Oct 2024 13:18:10 GMT 최경식 /@@5DVw/225 '태평양 전쟁'-일본의 침략 야욕, 막아서는 미국 - [1] 일본 제국주의의 몰락 /@@5DVw/224 ■일본의 침략 야욕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군수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자연히 중공업도 크게 성장했다. 러일 전쟁 당시, 자체 생산 능력이 떨어지던 일본은 함선과 주요 무기들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했다. 그러다 보니 전쟁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여기서 교훈을 얻은<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g3jaOCRDwWI7u65xKIIl0bAYI00.jpg" width="500" /> Thu, 26 Sep 2024 10:33:00 GMT 최경식 /@@5DVw/224 '러일 전쟁'-쓰시마 해전, 포츠머스 강화 조약 - [5] 대제국 격침된 전쟁사 최대 이변 /@@5DVw/222 ■쓰시마 해전 봉천 대회전 이후 양국의 군대는 방어에 집중했다. 일본군은 더 이상 공격에 나서지 않았고 주둔지 강화에 힘썼다. 러시아군도 대체로 방어에 중점을 뒀다. 일각에서 공격 전환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지만, 이는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한 뒤에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추후에 러시아군은 수차례 토론을 통해 일본군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우익을 동원<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E1UVEa6PIcePaXdKo_zZgY_07rI.jpg" width="500" /> Fri, 20 Sep 2024 10:28:25 GMT 최경식 /@@5DVw/222 '러일 전쟁'-봉천 대회전, 일본군의 우회 기동 - [4] 대제국 격침된 전쟁사 최대 이변 /@@5DVw/221 ■봉천&nbsp;대회전 러시아군은 연이은 패전에 더해 국내에서 발생한 불길한 소식으로 또 한 번 흔들렸다. 1905년 1월 9일, 러시아 노동자들이 황제가 머무르는 겨울 궁전 앞에서 총격을 받고 대거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 사건'이었다. 국내 소식에 관심이 많았던 러시아군 병사들은 크게 낙담했고 전쟁에 임하는 의지가&nbsp;더욱 약화됐다. 자<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5DVw%2Fimage%2FZIU6I4xwek-1Eupda3ETez2SzSU.jpg" width="500" /> Sat, 14 Sep 2024 10:45:57 GMT 최경식 /@@5DVw/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