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부부 동반으로 골프도 즐기며 같이 어울린 친구가 있다. 아내 친구의 남편인데 같이 어울리다 친구가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인상은 영락없는 부잣집 막내아들인데 성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항상 웃는 얼굴상에 재능도 뛰어나 그를 만나본 사람은 대부분 친구가 되었다. 흠잡을 데가 거의 없는 슬롯 책임감마저 강해서 회사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선 어느 해. 그가 다니던 회사가 정리절차에 들어간 후 파산선고를 받았다. 그로 인해 젊은 시절 열정을 쏟아부었던 회사를 떠나야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백수가 된 것이다. 그래도 그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재능 있고 낙천적인 성격의 친구는 오래지 않아 신설 외국인 합작회사에 취업했다. 교통 인프라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회사였는데 그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었다. 출범할 때만 해도 회사는 순탄하게 운영됐다. 회사는 오래지 않아 암초를 만나 자금난에 빠지면서 법정관리를 받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소송에도 말려들었다. 관리 부문을 총괄하던 슬롯 은행으로, 법원으로 그리고 법률회사로 뛰어다녔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휴일 없이 뛰어다녔어도 워낙 복잡하게 꼬여 있어 실마리조차 잡기 어려웠다고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도 퇴사를 권유했지만 슬롯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한 책임감이 회사에 그를 묶어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한 보람이 있어 회사는 소생했다. 대신 슬롯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골프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그가 10분 이상을 걷지 못했고, 공기에 무척 민감해졌다. 폐가 망가진 것이다. 맑은 공기를 찾아 교외로 이사하면서 친구들과의 왕래도 뜸해졌다. 건강을 되찾으려 힘겨운 노력을 했어도 소용이 없었고, 주치의는 장기이식 외에는 치료할 길이 없다는 처방을 내렸다.
다행히도 슬롯 응급환자로 분류되어 적합한 장기기증자를 빨리 찾았다고 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슬롯 나흘이 지나서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나흘 동안 의식 없이 누워있는 동안 가족들은 그가 무사히 깨어나기를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단다. 그 나흘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으로 느껴졌을까?
정신이 든 슬롯 아내에게 ‘나… 연옥에 다녀왔어.’라고 하더란다. 뜻밖의 말에 아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반문하자 자세하게 겪은 것을 설명했다고 한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자 누군가가 가슴에 이름표를 붙여주었어. 그곳을 지나 정처 없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손이 나타나 내 몸 곳곳에 이름표를 붙이는 거야. 아무리 뿌리쳐도 더 많은 손이 나타나 마구 이름표를 붙였어. 너무나 두려워 앞만 보고 뛰자 그 손들도 따라오면서 이름표를 붙이는 거야.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어 두려워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쪽이에요!’라며 당신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뛰어갔더니 갑자기 환한 불빛이 나타났어. 그러면서 몸에 붙었던 이름표가 모두 떨어지면서 정신이 들었지.’ 바로 그 순간 눈이 떠지더란다.
아직도 가족 외에는 아무도 그를 만나볼 수 없다. 감염 가능성이 커서 면회가 금지된 것이다. 성공적으로 수술은 끝났지만 그에게 허락된 삶은 얼마나 남았을까? 그때 그의 몸에 붙인 이름표의 의미는 슬롯이었을까? 혹시 그가 다시 삶을 허락받은 것을 알고 그의 몸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오려고 망자들이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닐까? 그의 말대로라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전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