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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라 불러도 될지 슬롯 꽁 머니겠지만

#16. 온 가족 폐렴 폭풍 속 8모 완주슬롯 꽁 머니

6월 모의시험을 마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슬롯 꽁 머니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었다.


친정어머니께서 본가에 머무시는 방학 기간, 남편이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아이 돌보미 선생님에게 슬롯 꽁 머니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6모의 마지막 선택법까지 치르고 나서 허겁지겁 집으로 향하는 중 진동이 울렸다. 돌봄 선생님이었다.


"오고 계세요? 슬롯 꽁 머니가 똥을 싼 것 같은데."

"아네,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제가 얼른 가서 기저귀 갈게요."


돌봄 선생님의 퇴근이 이미 5분 정도 늦어지고 있었으므로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부탁까지는 차마 슬롯 꽁 머니 어려웠다. 그저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내드리고, 묵묵히 똥을 치웠다.


슬롯 꽁 머니가 태어나고 나서 느낀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별도의 휴식시간 없는 삶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과 동일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전국 모의시험 가운데 그것도 첫 번째 시험인 6모를 치르고 나면 대부분의 수험생이 기진맥진해서 수액을 맞으러 가거나 하루 이틀은 푹 쉰다.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면 쉬러 간 집에는 24시간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그마한 생명체가 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쉬려고 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슬롯 꽁 머니를 돌봐야 한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슬롯 꽁 머니가 하나가 아닌 둘, 얌전한 공주님이 아닌 세상 제일 활발한 왕자님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운동도 마찬가지다. 무사히 관문을 통과하고 다시 사회에 나온 뒤로 운동 안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싱글의 삶에서 누렸던 개인 트레이닝, 일대일 필라테스, 헬스장 등록은 꿈도 꿀 수 없다. 퇴근하고 그런 프로그램에 등록해 운동을 한다면 그 시간 다른 누군가는 꼼짝없이 슬롯 꽁 머니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로3 학기 중을 제외하고, 적어도 그 누군가가 친정어머니가 되지는 않게끔 하는 게 워킹맘이 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확고한 원칙이다. 힘들어도 즐거워도 슬롯 꽁 머니의 부모인 남편과 내가 오롯이 감내해야 할 몫이어서다.


쌍둥이를 육아하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 운동 안 하냐고 물어보는 이들은, 기자로 한창 일할 때 만나는 사람이 없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 결혼 안 하냐고 물어보던 이들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내가 영영 결혼을 안 할까 봐 혹은 운동을 안 할까 봐 걱정해주는 마음의 발로이겠지만,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고, 그때의 결혼도, 지금의 운동도, 슬롯 꽁 머니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느 때처럼 아침 8시 스터디에 늦지 않게 출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참이었다. 슬롯 꽁 머니 한 명이 콜록콜록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마치 개 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남편에게 잘 살피라고 당부하고는 로3의 일상으로 향했다. 정확히 8월 모의시험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보니 다른 슬롯 꽁 머니의 기침소리도 동일하게 개 짖는 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러고는 슬롯 꽁 머니 둘 다 밤새 기침과 고열로 끙끙 앓았다. 해열제 효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39도, 40도를 오가는 이마를 어떻게 식혀야 할지 전전긍긍하면서 남편과 같이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스터디를 이끄는 동생에게 슬롯 꽁 머니이 아파서 못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스터디를 시작한 이래 처음 한 결석 통보였다. 그 뒤로 3일을 꼬박 가까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슬롯 꽁 머니을 간호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어김없이 열이 오르고, 슬롯 꽁 머니은 듣기 괴로울 정도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기침을 반복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폐렴 같은데, 입원하시겠어요?"


당장 8모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3일을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슬롯 꽁 머니을 덥석 입원시킬 수는 없었다. 그제야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요청했다. 한달음에 복귀한 어머니께서 따뜻한 물수건으로 슬롯 꽁 머니의 온몸을 닦아주시는 동안 남편은 연신 식은 물을 갈아주었다. 마침내 슬롯 꽁 머니의 열이 내리고 어머니는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오시기로 하셨다. 다시금 아침 스터디에 나갈 수 있게 된 나는 그로부터 사흘간 전력을 다해 시험을 준비했다.


8모 당일, 10시에 시작하는 공법 선택형 슬롯 꽁 머니 앞두고 평소보다 일찍 7시 반쯤 열람실에 도착했다. 전날 보던 기출문제집을 펼치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자꾸 고개가 고꾸라졌다.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 신체 에너지가 급격히 하강하며 시야가 하얘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불현듯 책을 보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말도 안 되게 힘들어졌다.


'아, 내 차례가 왔나 보다.'


아픈 슬롯 꽁 머니을 돌보는 동안 이미 면역력이 곤두박질을 치고 있던로3의 컨디션이 성할리 없었다. 이전까지 나는 일단 8모부터 끝내고 아프자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열심히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시험을 일주일 남기고 슬롯 꽁 머니이 폐렴에 걸려 공부를 전혀 못했지만 그 뒤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전날도 아니고, 8모가 시작되는 바로 그 아침이라니.한가닥 잡고 있던 희망이 해도 너무하다 싶은 최악의 타이밍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기어가다시피 해서 휴게실에 누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데리러 와달라고. 집에 들어가 소파에 힘 없이 걸터앉는데 슬롯 꽁 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슬롯 꽁 머니이 다시 아픈 조짐을 보여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남편 또한 심상치 않은 기침을 연발하면서말했다.


그 길로 남편과 같이 동네 소아청소년과에 슬롯 꽁 머니을 데리고 갔다. 아기와 엄마가 같이 아플 때 의사에게 부탁하면 따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나도 봐달라고 진료를 접수할 시간도, 증세를 호소할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다.슬롯 꽁 머니의 처방약을 타러 병원 옆 약국에 들렀을 때,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뜨거운 물에 타 먹는 분말형 감기약을 재빨리 집어 같이 계산했다.


곧장 차를 타고 학교에 내려 시험장에 들어섰다. 1교시 공법 선택형이 막 시작한 참이었다. 열람실에서 평소에 쓰는 컵에 뜨거운 물을 담아 내 응시번호가 적힌 책상에 두고 앉았다.정신없이 가느라 신분증도 깜박하고, 5분 정도 늦었던 것 같지만 실제 변시가 아니다 보니 응시는 가능슬롯 꽁 머니. 약국에서 사 온 감기약을 컵에 털어 넣고 벌컥벌컥 마셨다.


감기약의 강력한 진통 효과가 서서히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몸은 나른한데 정신은 또렷한 기분. 그 상태에서 오후, 저녁까지 차례차례 사례형, 기록형 슬롯 꽁 머니 치르는데 신기하게도 6모 때처럼 급작스럽게 등 통증이 강타한다든가, 답안을 쓸 때 시간 배분 문제로 더 이상 쩔쩔매지 않았다. 무난하게 각 문항에 떠오른 답을 서술하면서 통백 없이 답안을 채운 것이다.


그렇게 다음날 형사법, 셋째 날과 넷째 날 민사법까지 완주했다. 마지막 날 국제거래법 답안지를 내고 시험장을 나서면서, 나는 6모 때와는 달라진 느낌에 얼떨떨하면서도 왠지 슬롯 꽁 머니게 이런 확신이 들었다.


'이게 변시였다면 난 합격이다.'


몇 주 뒤 학과 사무실에서 8모 성적표를 수령슬롯 꽁 머니. 복도를 걸으며 접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치는데, 슬쩍 확인하고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슬롯 꽁 머니. 중간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던 성적이 수직 상승해 40등 가까이 오른 것이다. 6모 때와는 달리, 이제 내 앞에 있는 이들이 누구누구인지 가볍게 세어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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