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장이 성큼성큼 걷기 바카라했다. 지난 여름을 회고하며 수영용품 사업의 성수기가 지나고 있음을 아쉬워한 게 얼마 전 같은데 어느덧 봄, 여름 시즌이 코앞이다. 몇 달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 중인 신제품과 협업 결과물들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사업하는 아내를 보면, 비록 제품에 성수기와 비수기는 있어도 작은 회사의 대표와 팀원들에겐 딱히 비수기가 없어 보인다. 수요가 없으면 없는 대로, 일이 덜 바쁜 대로 다음 제품을 기획하고, 기존 제품을 개선하고, 협업 파트너들과 재미난 일을 도모하고, 다시 성수기를 함께 달릴 분들을 구하다 보니 벌써 3월 중순. 이번 시즌, 레디투킥의 다양한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현재 2025 S/S 모델도 3/19 정오까지 모집 중!)
바카라는 유치원까지 느릿느릿 걸어가는 중이다. 오전 9시 등원은 아내가, 오후 5시 하원은 내가 한다. 입학 3주차. 처음 며칠만 해도 재밌다고 했는데 어린이집보다는 규칙과 규율이 생긴 환경에 버거워하고 있다. 낮잠을 잘 수 없어 체력적으로 힘들고 6~7세 언니, 오빠들과 같은 반으로 묶여 있어 막내로서 긴장도 될 거다. 거의 매일 아침 “유치원 가기 싫어”라고 말한다. 부모로서 자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짠하다. 동시에 언제까지 짠할 것인가란 생각도 든다. 앞으로의 삶은 더 쉽지 않을 텐데. 오늘 아침 바카라에게 “네가 더 커서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지금부터 싫어하는 걸 해내야 한다”고 그럴싸하게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양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맞다, 대화의 시작은 솔루션 제시가 아니라 공감이랬지. 바카라가 고생이 많다. 잘 버텨보자. 인생을 유치원 중퇴에서 끝낼 순 없잖니.
나도 멀리까지 걷는 중이다. 오랜 호흡으로 같이 일할 만한 기회가 생겨 강서구와 성동구로 외근을 가고 미팅에 참석한다. 회사를 그만둔 지 1년. 이제야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전환하고 있음이 실감 난다. 돌이켜보면 지난 모든 회사 경험들 덕분이다. 지난해 틈틈이 쓴 책도 출간됐거나,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공저로 참여한<에디터의 기록법이 며칠 전 ‘자기만의 방’ 시리즈로 나왔고, 코난북스 대표가 <아무튼, 테니스가 드디어 인쇄에 들어갔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바카라에 연재 중인 글은, 최근 잠시 본업 모드로 일을 바카라하는 바람에 밀리고 있다. (브런치작가멤버십 구독자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부지런히 쓰겠습니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문득 바카라이 나에게 매우 운이 좋고 객관적으로도 감사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정세랑 소설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서 이렇게 다른 변수가 없을 때가 운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큰 걱정 없고, 주변에서 저의 시간과 에너지를 특별히 필요로 하지 않는 바카라이 꽤 좋은 시기인 것 같아 최대한 많이 써놓으려고요. 나중에는 집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기가 올지 모르니까요."
<잡스 소설가에 실린 정세랑 소설가의 인터뷰는 가끔씩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는 편이다. 당시 포지셔닝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뷰 원고를 정리할 때 있던 내용인데, 단행본을 확인해 보니 페이지 정리하면서 마지막에 빠진 분량 같다.
인생과 일상에 변수가 없을 순 없다. 당장 오늘의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얼마나 연약할지 알 수 없다. 작업실 너머로 보이는 헌법재판소 앞은 지금도 아침부터 확성기로 ‘파면하라’와 ‘탄핵반대’를 외치는 소수의 집단이 폴리스라인 품에서 대치 중이다. 언젠가 어찌할 수 없는 때를 위해, 오늘도 바카라 가족은 각자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