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슬롯 머신인지 여쭤보면 '니네 슬롯 머신'라고 하셨고 그건 아무래도 외슬롯 머신가 아닌 친슬롯 머신를 뜻하는 말 같았다. 처음엔 장난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자꾸 슬롯 머신 저기서 뭐 하시는지 가서 보라고 하시고 아까 여기 계시던 슬롯 머신는 어디 가셨냐고 하시고.. 파킨슨병은 종국에 치매 증세를 동반한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친슬롯 머신의 기억은 당시 너무 어렸던 내겐 몇몇 스틸 컷처럼 남아있다.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되신 슬롯 머신는막내아들인아버지가 같이 모시고 살았다. 유년기를 보낸 당시의 집은 서울 화곡동에 방이 3개인 그 동네에 흔하디 흔한 단층집이었는데, 방 3개 중구석방은출입문을 별도로 내어 세를 주었고안방에는 부모님이 건넌방엔슬롯 머신와 내가같이 지냈다. 노부모를 자식이 모시고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긴 했지만 며느리인 어머니는넓지도 않은집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동거를 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일제의징용을 피해 만주로 피신하셨던 나의 외할아버지는생사도 알 수 없이해방 이후에도집에 돌아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탓에 어머니는어려서부터홀어머니 밑에서외삼촌과 함께친척들에게의지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자라셨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4년제대학을졸업한 신여성이셨고 유달리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도 센 편이었다. 반면 친슬롯 머신는 근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한글과 산수를 스스로 깨우치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살림을 하면서도 혼자 여관을 운영하실 정도로 똑똑한 분이셨다고 했다. 그렇지만 슬롯 머신이 많이 여린 분이셨다고 아버지는 회상하시곤 했다.
그 고집을 물려받은 나 역시어머니에게도자주고집을 부리다가구두 주걱 같은 걸로 매를 맞곤 했는데,어머니가참다가 결국회초리를 찾으러움직이려는 순간 나는쪼로로 슬롯 머신 방으로도망가숨어들었고어머니는 아랑 곳 않고 슬롯 머신 방을 쳐들어 와서는 보이는 대로나의 몸에매질을 했다. 그럴 때마다깜짝 놀란슬롯 머신는온몸으로 혹은 이불로 나를 감싸 막아주셨다.
그런 식으로매질을 하다보면 슬롯 머신의몸에회초리가 닿았을 수도있었을 것 같은데 독한 며느리는손주에 대한 슬롯 머신의평소무분별하고 과도한 사랑이 오히려 손주에게 독이 된다며 늘 슬롯 머신와 각을 세웠었고,분명그역시 우리 집의 고부갈등 중에 적지 않은비중을차지하였을 것이다. 그 후로40여 년이 흘러 내가 아이를 낳고같이 사는 동안어머니도당신의 며느리에게 비슷한 소릴 듣고 계신 걸볼 때면 나는 참 슬롯 머신이 미묘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셨고 착한 품성도 있으신 분이시라슬롯 머신에게늘 차가웠던 것은 아니었다.슬롯 머신의환갑에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생활비를 쪼개당시엔 구하기 쉽지 않았던 겨울코트를 맞춤으로 선물하시기도 했다.옷이 집에 도착한 날 쑥스러워하시는 슬롯 머신를앞에세워두고어머니가직접옷을 입혀 드리면서뿌듯해하시던 장면이아직도생생한어린 시절기억으로남아 있다.
그러나기쁨은 잠시였을 터이고,슬롯 머신이 여린 할머니와 할 말 다 하는 신세대 며느리 둘 사이에는늘차가운 기류가흘렀을 것이다.나는 슬롯 머신와 어머니 사이를 오가며 누구의 편도 일방적으로 들지 않고 적당히 지냈던 기억이있는데 그건초등학교 입학하기전까지의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