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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꽁 머니 이야기

집착에 대한 어른동화

옛날 옛날에 도토리 산이 있었어요. 그 산 꼭대기에는 큰 도토리나무가 있었어요. 모든 슬롯 꽁 머니들이 다 그 나무를 향해 가는 꿈을 꾸었어요. 그 나무에 가까이 가는 슬롯 꽁 머니들을 모두 부러워했고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렸죠.


그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엄청 멀고 험했어요. 많은 슬롯 꽁 머니들이 많은 희생 끝에야 그곳에 이르러 풍족한 행복을 누렸죠. 그곳에 갈 수 있는 슬롯 꽁 머니는 100년에 10마리 정도였죠. 아래에 있는 슬롯 꽁 머니들은 각자 쉬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슬롯 꽁 머니는 포기하고 주변에 조그만 도토리를 주워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어떤 슬롯 꽁 머니는 달리기를 포기해 버리고 저 산 꼭대기에 보이는 큰 도토리나무에는 도토리가 열리지 않아!라고 외치고 다녔죠.


그러던 어느 날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정상으로 널찍한 고속도로가 완공되었어요. Highway 91으로 명명된 이 고속도로에는 중간중간 휴게소도 많아 힘들게 도토리를 주우면서 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훨씬 빠른 속도로 도토리나무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죠. 슬롯 꽁 머니들은 훨씬 여유롭게 그 큰길을 달려갔어요. 천천히 가도 옛날 길보다는 금방 큰 도토리나무에 다다를 수 있었죠. 대부분의 슬롯 꽁 머니들이 그 길에만 오르면 금방 큰 도토리나무에 다다를 수 있었죠.


많은 슬롯 꽁 머니 중 걱정 슬롯 꽁 머니라는 슈퍼 슬롯 꽁 머니가 있었어요. 슈퍼 슬롯 꽁 머니는 달리기도 빨라서 다른 슬롯 꽁 머니들의 두 배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고, 도토리를 반만 먹어도 달릴 수 있었어요. 모두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부러워했어요. 어느 날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십자가 모양의 큰길을 보고 의아해했어요. 왜 이렇게 쉬운 길로 다니지? 아무나 다 다니는 이런 길로? 이런 길보다는 힘들게 꼭대기까지 도착해야 도토리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야. 난 슈퍼 슬롯 꽁 머니니까 다른 길로 달려갈래.


걱정 슬롯 꽁 머니는 큰길에서 벗어나 숲길을 달려갔어요. 옛날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길이라 더 이상 슬롯 꽁 머니들이 달리지 않아 숲이 우거지고, 길가에 도토리도 찾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걱정 도토리는 엄청나게 길을 잘 헤쳐나갔어요. 조금만 먹고도 멀리멀리 달릴 수 있는 슈퍼 슬롯 꽁 머니라 훨씬 앞서 달려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게으르고 자기보다 달리기도 못했던 슬롯 꽁 머니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걱정 슬롯 꽁 머니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어요. 못난 슬롯 꽁 머니들이 자기보다 앞서 달리고 있어서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난 쟤네보다 더 힘들게, 더 조금 먹으면서 달렸는데 왜? 왜? 게다가 잘난 슬롯 꽁 머니들은 이미 까마득히 멀어져 가고 있었어요. 난 슈퍼 슬롯 꽁 머니인데...... 쟤네보다 잘 달리고 쟤네보다 더 잘 숲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데.. 그렇지만 고속도로가 뚫린 이후로 숲길을 헤쳐나가는 기술은 이미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기술이었어요.


많은 친구들이 고속도로로 같이 가자고 소리쳤어요. 이쪽으로 와~ 여기는 편하고 도토리도 많아. 거기는 도토리도 별로 없고 힘든 길이야. 그렇지만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봤어요. 내 힘으로 개척한 길. 남들이 다 만들어놓은 길 다닐 때 내 힘으로 개척한 길. 이 길을 버리고 고속도로로 들어가 버리면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뭔가. 그런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절대로 절대로 저 고속도로로 들어갈 수는 없어. 난 이 길을 끝까지 갈 거야. 휴게소 없으면 어때? 여기도 도토리는 있다고!


그렇게 얼마간을 더 가다가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배고픔과 계속된 숲을 헤쳐가는 작업으로 지쳐버렸어요. 이제 걸을 힘도 없고, 도토리도 없고. 그런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보고 고속도로에 있던 착한 슬롯 꽁 머니들이 깜짝 놀라 내려와서 도토리도 주고 걷도록 도와주고 같이 고속도로로 가자고 했어요.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슈퍼 슬롯 꽁 머니가 이런 숲길에 지쳐있다는 것에 착한 슬롯 꽁 머니들은 너무나도 놀랐어요.


"난 안 갈 거야. 난 내 길을 잘 가고 있었다고! 너도 이 길을 따라와. 내 길은 힘들지만 아름답고 멋진 오솔길이라고!"


착한 슬롯 꽁 머니들은 걱정 슬롯 꽁 머니에게 힘을 보태기로 했어요. 같이 길을 내고, 도토리를 주워오고,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자기 길을 도와주는 슬롯 꽁 머니들이 있어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그 슬롯 꽁 머니들은 곧 지쳐갔어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속도로만 달리던 슬롯 꽁 머니들이 숲길을 헤쳐가는 건 무리였을까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다 잘할 수 있는 슈퍼 슬롯 꽁 머니인데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보통 슬롯 꽁 머니들이 그 길을 헤쳐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어요. 도토리를 10개씩 먹고 편한 길로만 달리던 슬롯 꽁 머니들은 걱정 슬롯 꽁 머니가 쉬고 있는 동안 5개씩만 먹고 힘들게 길을 만들면서 가는 삶이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다들 걱정 슬롯 꽁 머니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다들 결국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남겨놓고 고속도로로 돌아가버렸죠.

그러던 중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쉬고 있던 곰 슬롯 꽁 머니가 길 옆에서 힘들어 울고 있던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발견했어요. 다람신께서는 걱정 슬롯 꽁 머니가 너무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곰 슬롯 꽁 머니를 보내서 고속도로로 끌고 오라고 했어요. 설마 이 좋은 91번 고속도로로 안 오기야 하겠어? 그러면서 곰 슬롯 꽁 머니는 의기양양하게 걱정 슬롯 꽁 머니에게 내려갔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야, 저기 고속도로가 있어. 같이 가자. 저기는 달리기도 쉽고 네가 달리는 100미터마다 도토리 휴게소도 있어. 여기는 500미터를 달려도 도토리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숲이잖아. 올라가서 같이 가자."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어이가 없었어요. 뭐 이런 곰팅이 같은 슬롯 꽁 머니가 다 있어? 누가 고속도로 있는 거 모르나? 100미터마다 휴게소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휴게소가 잘 갖춰져 있다고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여기도 꽤 괜찮아. 난 도토리를 20개나 모아 놨고, 이제 난 숲길을 헤쳐나가는데 꽤나 익숙하다고! 네가 이 숲을 알기나 해?


곰 슬롯 꽁 머니는 어리둥절해서 쳐다봤어요. 왜 안 가지? 저기가 좋은데.. 이 숲도 좋나? 힘들어 보이는데.. 91번 고속도로는 현재 이 산 최고의 고속도로이고 저 길 아니면 큰 도토리나무로 갈 방법도 없을 텐데. 왜 여기 있지?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멍청한 곰 슬롯 꽁 머니 같으니라고 하면서 보란 듯이 능숙하게 숲길을 헤쳐 갔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의 능숙한 낫질 솜씨에 넋을 잃고 바라봤어요. 우와. 저 솜씨면 고속도로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다 헤쳐나갈 수 있겠다. 게다가 5개만 먹고도 200미터를 달릴 수 있는 슈퍼 슬롯 꽁 머니라니! 고속도로에 데려다 놓으면 나보다도 훨씬 빨리 뛰겠다. 대단해. 멋져.


곰 슬롯 꽁 머니는 또 걱정 슬롯 꽁 머니에게 말했어요.


"우와 멋지다. 우리 고속도로에서 같이 달리면 엄청 잘 달릴 것 같아. 난 10개 먹고 150미터 정도 달리지만, 도토리는 얼마든지 있고 걱정 슬롯 꽁 머니가 조금만 천천히 달리면 우리 같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난 고속도로로 와서 체력도 비축해 놓았거든. 올라가서 같이 가자. 네가 지금 좀 지쳐있지만 도토리 휴게실 가서 가락국수 한 그릇 하고 도토리 묵무침 먹으면 다시 힘이 날 거야."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미련 곰팅이 같은 곰 슬롯 꽁 머니가 또 어이가 없었어요.


"누가 모르냐고! 난 이 길을 25년간 헤쳐왔고 이렇게 멋진 길이 되었잖아! 난 이 길을 갈 거라고!"

"응? 이 길? 작은데?"

"죽을래? 내가 어떻게 만든 길인데, 아름다운 오솔길이잖아!"

"응? 난 몸이 커서 이 작은 오솔길로는 잘 못 걷는데.."

"야 그럼 네가 맞추든가 저리 가! 왜 같이 가겠다고 난리야?"

"응? 웅.... 그게 아니고.. 저기 가서 같이 달리면 너도 더 빨리 가고 나도 너랑 더 재밌게 달리.."

"아 됐다니까!"

"응? 웅... 왜 그러지?;;; 웅...."


영문을 모르던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가 또 능숙하게 숲을 헤쳐나가는 것을 지켜봤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엄청 힘들었지만 멍청한 곰 슬롯 꽁 머니 앞에서 힘든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낫질을 하면서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고한 표정을 유지했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참 이상했어요. 왜 낫질을 하는데 옷매무새를 가다듬지? 왜 낫질을 하는데 안 힘든 표정을 하지? 땀나는데... 그러다가 그것까지 물어보면 낫으로 맞을까봐 그냥 뒤에서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그렇게 쳐다만 볼 거면 저리 가!"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의 모습에 반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럼 나 갈께.. 하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야 어디가! 뭐야 이 멍청한 곰돌이. 진짜 멍청하잖아! 와서 낫 들어!"


하고 걱정 슬롯 꽁 머니가 소리쳤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또 어리둥절해서 낫을 들고 낑낑거리면서 베기 시작했어요. 고속도로 슬롯 꽁 머니라 어설프게 낫질을 해 대는 것을 보고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어요.


"야 이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냐? 이렇게 베라고 이렇게!"


곰 슬롯 꽁 머니는 고속도로에서 잘 달리는 슬롯 꽁 머니로 소문이 났었는데, 걱정 슬롯 꽁 머니한테 혼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어... 음... 아... 나 원래 잘하는데..."

"잘하긴 뭘 잘해? 잘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

"나 고속도로에서는 잘 달려..."

"여긴 숲이라고! 숲! 낫질하는 거 안 보여?!"

"그런데 왜 고속도로 놔두고 자꾸 숲으로 달려?"

"아휴 이 멍청 곰아! 여기가 예쁘고 아담하고 분위기 있는 숲길이라니까!"

"그렇지만 고속도로는 네가 좋아하는 거 다 있는데? 네가 안 만들어도 예쁘고 아담한 쉼터도 있고, 분위기 있는 식당도 있고, 널찍한 길도 있는데?"

"그건 비싸잖아!"

"응? 돈 벌기도 쉬워. 나 고속도로에선 잘 나가는 슬롯 꽁 머니라 돈도 잘 벌어."

"그래도 여긴 공짜라고!"

"힘들잖아.."

"자꾸 말대답할래? 낫질도 못하는 게!"

"응?... 웅... 낫질은 잘 못하기는 해.... 웅..."

"멍청한 곰 슬롯 꽁 머니 같으니라고.."

"웅....."


곰 슬롯 꽁 머니는 낫질을 좀 하는가 싶더니 곧 울상이 되어 주저앉아버렸어요. 난생처음 이렇게 혼나 보는 거라 정신이 없었어요.


"나 칭찬해주면서 하면 안 돼? 나 칭찬해주면 잘하는 곰 슬롯 꽁 머니인데.."

"놀고 있네. 여긴 숲이라니까!"

"숲에서는 그러면 안돼?"

"숲에서 칭찬해주는 사람이 어딨어? 나 혼자 달려가는 거라고!"

"그럼 같이 고속도로 가자, 여기 같이 다니기 너무 좁고 힘들어. 저기 가면 훨씬 더 빨리 큰 도토리나무에 갈 수 있다니까. 나랑 같이 가자, 응?"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너무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왜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길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하는 거지? 눈에 보이는 게 다인가?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이건 바보인가? 내가 이 길을 얼마나 갈고닦았는데, 이 길을 포기하라니. 내 추억과 내 노력이 담긴 길인데. 갑자기 낯선 고속도로로 달리라니. 거긴 재미도 없고 낭만도 없을 거라고.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가 너무너무 좋아서 같이 있었지만 그래도 고속도로가 너무나도 그리웠어요. 저렇게 널찍하고 100미터마다 휴게소도 있는 저 화려한 길을 왜 같이 안 가겠다는 건지.


그래서 곰 슬롯 꽁 머니는 그냥 주저앉아 버렸어요. 그리고 고속도로 얘기만 매일매일 했어요. 얼마나 좋은 곳인지, 얼마나 편한 곳인지.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너무너무 짜증이 나는 그 대화에 화가 나곤 했지만 같이 놀 슬롯 꽁 머니라고는 이 곰팅이 밖에 없어서 그냥 듣곤 했어요.


매일같이 곰 슬롯 꽁 머니가 달래고, 구슬리고, 혼내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보면 좋은 게 있으려나? 있으니까 얘가 이러는 거겠지? 다들 좋다고 하긴 했는데. 아냐 그래도 나의 이 예쁜 길을 포기할 수는 없어. 하루만 손을 놓으면 다시 우거져서 숲으로 돌아가버릴 거야. 내 힘들었던 25년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거라고!


곰 슬롯 꽁 머니는 이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부탁했어요. 한 번만, 한나절만 올라갔다가 오자고.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한나절이면 이 길이 망가지지는 않겠지만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처음 가보는 고속도로가 너무너무 두렵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되어 가기가 너무너무 싫었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이제 며칠 후면 휴가를 마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할 거라고 하면서 나 올라가야 해.. 라고 우울하게 얘기했어요.


"같이 가자. 내가 도토리 많이 줄게."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다시 또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고민하던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그동안 말로만 듣고 한 번도 못 가봤던 91번 고속도로에 한번 가 보기로 했어요. 지금 이 숲길도 너무너무 좋지만, 너무 힘들기도 하고 숲 속 슬롯 꽁 머니들은 다들 힘든 삶을 사느라 따듯한 말 한번 안 해줬었는데, 고속도로 슬롯 꽁 머니들은 꽤나 여유 있어 보이고 좋은 말도 많이 해 줬어요. 이런 슬롯 꽁 머니들이 있는 곳이라면 한 번쯤 가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거친 숲 속을 헤쳐오던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언제나 떠날 준비를 위한 큼직한 배낭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모아 온 도토리들을 한껏 짊어지고, 옷하고 낫 등을 챙겨 들고 고속도로에 갈 채비를 했어요. 물끄러미 지켜보던 곰 슬롯 꽁 머니가 물었어요.


“뭐 도와줄 것 없어? 내가 들어줄까?”

“아냐 다 했어. 여기 두둑한 도토리들 보이지? 내가 다 모은 거라고. 그리고 이 낫은 내 생명과도 같아. 이 낫으로 이 힘든 숲길을 다 헤쳐왔다고!”

“음.. 그런데, 여기서 고속도로까지는 100미터도 안돼. 도토리는 10개만 있으면 될 텐데? 가면 도토리 엄청 많아.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낫은 어디다 쓰게?”

“못 들었어? 이 낫은 내 생명과도 같다니까? 제일 중요한 도구이자 무기라고! 게다가 이 아까운 도토리를 버리라는 거야 뭐야?”

“응? 웅… 도토리 무겁잖아. 필요 없는데.. 그리고 낫도..”

“네가 도토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나 해? 그리도 이 낫도, 네가 이 낫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 줄 알아?”

“아 그런가? 웅… 고속도로에는 도토리가 많아. 웅… 근데 너한테 소중한 거니까…… 웅…... 그런데 필요한 건 아닌데…”

“멍청한 곰 슬롯 꽁 머니 같으니라고! 앞장서!”

“웅…… 그래… 가자 이제..”


곰 슬롯 꽁 머니와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얼마간 숲길을 지나 고속도로로 올라왔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가 들고 있던 큰 배낭은 엄청나게 무거워 보였지만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슈퍼 슬롯 꽁 머니답게 능숙하게 배낭을 메고 길을 따라갔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100미터 밖에 안 된다며 미리 도토리 10개를 뱃속에 넣어놓고 배를 두드리며 앞으로 걸어갔어요.


“자 여기가 고속도로 휴게소야. 저 수레가 내가 끌고 다니는 수레고.”


곰 슬롯 꽁 머니는 자신의 전부가 담긴 수레를 가리키며 으쓱하며 말했어요.


“수레? 수레가 뭔데?”

“응? 고속도로에서는 길이 좋으니까 바퀴가 달린 수레를 끌고 다녀. 배낭은 무겁잖아.”

“그렇지만 수레는 숲 속에 못 들어가잖아?”

“응. 그런데 숲 속에 들어갈 일이 없으니까…”

“야 너네는 어떻게 준비도 안 하고 사냐? 걱정도 안 돼? 갑자기 고속도로가 끊겨있거나 하면 어떻게 해? 큰 도토리나무에 안 갈 거야?”

“아 저 고속도로는 엄청 튼튼해. 다람신님이 직접 설계 시공하셨다고. 절대로 끊겨있거나 눈비가 와도 무너지는 일이 없다고.”

“이런 속 편한 슬롯 꽁 머니들을 봤나. 언제나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숲 속에서 안 살아본 것들이 어떻게 알겠어?”

“웅… 자 그럼 휴게실에 왔으니까 가락국수 하고 도토리 묵무침부터 먹자. 내가 낼게.”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난생처음 보는 맛있는 요리에 마음을 좀 열고 쉬기로 했어요. 그동안 숲에서 힘들었던 하루하루에 비하면 여기 슬롯 꽁 머니들은 참 쉽게 살았구나 싶었어요. 그러니 배가 나오지…


자 여기 내 수레에 네 배낭도 실어. 이제 한숨 잘 준비를 해볼까?


곰 슬롯 꽁 머니는 자기 수레에서 텐트를 꺼냈어요. 슬롯 꽁 머니 한 마리 정도 들어가는 텐트가 순식간에 펼쳐졌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능숙하게 그 앞에 있는 휴게실 가스버너에 스위치를 넣었어요. 숲 속 모닥불에서는 한참이나 기다려야 올라오던 따듯한 온기가 배부르고 나른한 몸을 확 휘감았어요.


“그런데 난 어디서 자? 텐트는 슬롯 꽁 머니 한 마리 용인데?”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물었어요.

“아, 오늘은 내가 밖에서 잘게. 내일은 텐트 사러 가자.”

“응 그럼 이 수레에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응 이건 내 수레고, 오늘만 네 배낭 맡아 준거야. 내일 네 수레도 사야지.”

“나 돈 없어.”

“응? 웅…… 웅……. 아 그런 문제가 있구나……”


이런 미련 곰팅이.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뭐 이런 아무 생각 없는 슬롯 꽁 머니가 다 있나 라는 생각에 한숨이 푹 나왔어요.


“그럼 돈 없이 어떻게 할 건데? 날 숲 속에서 데려왔으면 그 정도 준비는 해 놨어야 할 것 아냐? 나 그럼 내일 숲으로 돌아 갈래.”

“응? 아냐 아냐. 내가 그러면 수레도 사주고 텐트도 사 줄게. 내 것 조금 팔면 될 거야. 나는 곰 슬롯 꽁 머니라 도토리 말고 꿀단지도 있어. 이거 비싼 꿀단지인데 이거 팔면 다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다음엔? 난 어떻게 살아?”

“너도 고속도로 주변 상점에서 일하면 돼”

“응? 일하라는 말은 없었잖아! 난 숲에서 한 번도 일 안 하고 살았다고!”

“아, 고속도로에서는 모든 슬롯 꽁 머니들이 다 일을 해. 그래도 네가 숲에서 하던 일보다는 훨씬 쉬워. 계산 도와주는 건데, 금방 배워서 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슈퍼 슬롯 꽁 머니니까.”

“난 낫질을 제일 잘하는데?”

“여기서는 낫질은 필요 없어.”

“그럼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안 하고 계산이나 하라고? 슈퍼 슬롯 꽁 머니를 뭘로 보는 거야?!”

“응? 계산 도와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나중에 돈도 벌고 도토리도 많이 사고, 수레도 좋은 거 사고, 그리고 계산 실력이 많이 늘면 다른 슬롯 꽁 머니들 가르칠 수도 있고 회계사도 되고 너만의 가게도 가질 수 있어.”

“야! 난 낫질을 제일 잘한다니까! 언제 계산 공부해서 그걸 하고 있어! 난 잘하는 게 있다고!”

“아니 숲에서 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들이야. 더 편하고 맛있는 것도 많아.”

“야! 난 슈퍼 슬롯 꽁 머니라고! 낫질을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슈퍼 슬롯 꽁 머니야! 너 나보다 낫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러면 날 존경하라고!”

“응 존경해.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여기서는 낫질 안 해. 너 계산 공부하면 훨씬 더 편하게 잘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멍청한 곰아. 나를 존경하면 내가 낫질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어야지 왜 나한테 계산을 시켜?!”

“웅… 웅… 그게… 그건 힘들고…. 여기로 가면 큰 도토리나무에도 더 빨리 갈 수 있고…”

“어휴 맨날 그 큰 도토리나무 얘기. 난 낫질을 잘한다고!”

“응... 알겠어… 나도 그런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 웅……. 정말 멋있어…… 역시 슈퍼 슬롯 꽁 머니야.”

“그렇지? 그럼 자자!”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곰 슬롯 꽁 머니가 얼마나 자기를 멋지다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하고 텐트에 들어가서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리고는 내일이면 다시 숲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낫질을 얼마나 잘하는데.’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바보 같은 슬롯 꽁 머니들이 가득한 고속도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곰 슬롯 꽁 머니는 또 능숙하게 텐트를 접고 아침 도토리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수레에 짐을 다 싣고 다시 떠날 준비를 했어요. 수레 맨 꼭대기에는 걱정 슬롯 꽁 머니의 배낭도 얹었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아침이 밝자마자 숲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은 아침 도토리에 하루쯤 더 머물러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분이 좋아진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고속도로를 한번 뛰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의 큰 배낭을 얹은 큰 수레를 낑낑거리고 끌고 가는 곰 슬롯 꽁 머니는 짐짓 안 힘든 척을 하며 걱정 슬롯 꽁 머니에게 내가 다 짐을 들고 갈 테니 먼저 달려가라는 뜻으로 손으로 빨리 가라는 시늉을 했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오랜만에 슈퍼 슬롯 꽁 머니의 질주 본능을 만끽하며 달릴 생각을 하니 신이 났어요. 혼자서 속으로 구령을 세며 준비, 발사!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려갔어요. 평화롭게 도토리 차를 즐기던 주변 슬롯 꽁 머니들은 다들 놀라움에 쳐다봤어요. 아침부터 저런 속도를 낼 수 있다니. 으쓱해진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다리의 근육 하나하나가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으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음질쳤어요. 어느덧 낯선 동네에 도착했을 때 문득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뒤에는 곰 슬롯 꽁 머니의 수레도 보이지 않은지가 한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서 그 자리에서 곰 슬롯 꽁 머니를 좀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모르는 슬롯 꽁 머니들로 가득한 마을가의 고속도로에서 혼자 심심하게 앉아 곰 슬롯 꽁 머니를 기다리려니 좀 화가 나기도 했어요. 뭐야, 왜 이렇게 느린 거야? 고속도로에서는 잘 달리는 슬롯 꽁 머니라며! 한 두어 시간이 지나 저 뒤쪽 언덕 꼭대기에 곰 슬롯 꽁 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타났어요. 뒤에는 큰 수레를 끌고.


“야! 왜 이제와! 난 두 시간이나 기다렸잖아! 아니, 이제 세 시간이네.”

“아우.. 네 배낭 너무 무거워. 이 낫 하고 도토리 좀 버리면 안 돼?”

“안돼! 그건 내 목숨과도 같은 거라고! 소중한 거야!”

“헉헉.. 그러면 네가 이거 끄는 것 좀 도와줘.”

“뭐야 그 수레는 네꺼고, 그 수레는 슬롯 꽁 머니 한 마리 크기잖아. 내가 같이 끌고 갈 수도 없다고. 내가 네 수레를 다 끌어주기를 바라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네 수레를 새로 사면 될까?”

“뭐야 나 혼자 가라고? 같이 달리자고 온 거 아니었어?”

“응? 웅… 그럼 어쩌지?”

“바보냐? 두 슬롯 꽁 머니가 끌 수 있는 커플 수레를 사면 되잖아!”

“응? 그거? 그건 비싸고 무거운데, 네가 숲 속으로 돌아가버리면 난 어떻게 해?”

“야! 뭐 어쩌라는 거야. 숲 속으로 가지도 말라고 하고, 수레도, 텐트도 하나 짜리고, 나보고 어쩌라고!”

“웅… 이 수레랑 텐트 좋은 건데…”

“뭐야 다 네꺼잖아. 내 자리는 없잖아.”

“웅… 웅… 그러면 팔아서 두 개짜리 살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오자고 했잖아!”

“아… 웅… 그래 웅… 아까운데…”

“으이구, 이런 곰팅이를 믿고 내가 숲을 떠나는 게 아닌데…”

“그럼 숲에 안 돌아갈꺼야? 내가 이인용 사면?”

“넌 그걸 지금 프러포즈하고 하는 거니?”

“응? 아니 물어보는 거야… 사기 전에 확인하려고.”

“그럼 제대로 프러포즈를 하든가!”


문득 두 슬롯 꽁 머니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응? 프러포즈? 그 말을 내뱉은 걱정 슬롯 꽁 머니도, 그 말을 들은 곰 슬롯 꽁 머니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난 그냥 고속도로에 와본 것뿐인데. 난 그냥 고속도로에 데려와 봤을 뿐인데. 프러포즈? 응? 그건 뭐 하는 거지?


곰 슬롯 꽁 머니는 갑자기 수레를 내려놓고 한참을 생각했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가 고속도로에서 잘 정착해서 더 이상 숲에 돌아가지 않고 걸어가기를 바랐어요. 그렇지만 곰 슬롯 꽁 머니는 한 번도 두 슬롯 꽁 머니를 위한 수레를 사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도 자기 수레를 사서 같이 끌고 갈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자기 수레를 같이 끌어야 한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곰 슬롯 꽁 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어요. 숲에서 데리고 나올 때는 하루면 다시 돌려보내 줄 것 같더니, 곰 슬롯 꽁 머니가 틈만 나면 돌아가지 말라고 하고, 도토리도 많이 많이 주었어요. 그러면 내 자리를 마련해 주든가. 숲 슬롯 꽁 머니로 살아온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고속도로에 살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어요.

한참을 고민하다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에게 물었어요.


“나랑 그럼 같이 갈래?”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또 어이가 없었어요. 자기가 같이 가자고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갈꺼냐니…


“같이 가자고 해서 왔잖아.”


곰 슬롯 꽁 머니는 처음으로 걱정을 시작했어요. 내가 가진 꿀단지 다 팔고, 일을 좀 열심히 하면 이인용 수레랑 텐트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슈퍼 슬롯 꽁 머니니까 우리 수레를 엄청 잘 끌어주겠지? 그런데 내가 못 맞추면 어떻게 하지? 걱정 슬롯 꽁 머니한테 천천히 가자고 해야 할 텐데. 걱정 슬롯 꽁 머니가 천천히 가 줄까?


“나랑 속도 맞춰서 천천히 가 줄 거야?”

“야!!!! 고속도로에서 빨리 뛰게 해 준다며!!”

“응? 그건 혼자 뛸 때고… 같이 뛰려면… 내 발걸음이 못 따라갈 텐데…”

“야!! 네가 고속도로에서 빨리 뛰게 해 준다 그랬잖아.”

“그렇지만 그러면 너 혼자 가야 해.”

“나 숲에 갈래.”

“그건 안돼. 여기가 더 좋은 곳이야.”

“여기가 뭐가 좋아! 난 혼자 만들던 예쁜 길이 있다고! 난 그 길이 좋았어! 여기에는 왜 데리고 온 거야!”

“여기로 가야 큰 도토리나무에 빨리 쉽게 갈 수 있어. 거기 가면 도토리가 넘쳐나고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너도 거기에 가려고 숲길을 달려온 거잖아.”

“그렇지만 난 여기를 달릴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잖아. 너도 나랑 달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고.”


곰 슬롯 꽁 머니는 혼란스러웠어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보고 혼자 잘 달려왔던 곰 슬롯 꽁 머니는 누군가와 내 수레를 같이 끈다는 것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어요. 워낙 수레를 혼자 잘 끄는 슬롯 꽁 머니라 다른 친구 슬롯 꽁 머니들은 곰 슬롯 꽁 머니의 속도에 맞춰 따라오지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슈퍼 슬롯 꽁 머니를 만난 지금 곰 슬롯 꽁 머니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럼 내가 수레를 바꿀게. 너도 조금만 천천히 달려줘. 넌 혼자는 잘 달리지만 수레를 같이 끌면서 달리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네가 숲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니까 이렇잖아. 나 돌아 갈래. 잘 있어.”

“아니야 아니야. 우리 둘이 며칠만 같이 끌어보자. 내일 아침이 밝은 대로 내가 수레랑 텐트 팔고, 꿀단지도 팔고 우리 둘이 같이 끌고, 잘 수 있도록 바꿀게. 어차피 네가 다시 숲으로 가도 수레랑 텐트 다시 팔면 나 혼자 끌 수 있는 수레랑 텐트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꿀단지는 다시 못 사겠지만. 그래도 괜찮으니까. 내일부터 같이 끌어보자.”

“나 재미없으면 다시 돌아갈 거야.”

“응 그래 재밌게 달려보자.”


곰 슬롯 꽁 머니는 고속도로 온 이후로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는 걱정 슬롯 꽁 머니의 도토리와 낫을 내려놓고, 텐트를 꺼내 또 오늘 밤 잘 곳을 만들었어요. 오늘도 휴게소 가스버너에 불도 피워 따듯하게 잘 수 있도록 했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귀찮다는 듯이 텐트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어요. 숲에 있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도대체 여기는 왜 오라고 한 거야?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았지만, 낮에 전속력으로 달렸을 때 느꼈던 스릴과 흥분감을 생각하면서 다리 근육의 노곤한 피로감에 젖어 잠이 들었어요.


밖의 버너 옆에서 곰 슬롯 꽁 머니는 누워서 패닉에 빠졌어요. 처음에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데려오라고 보냈던 다람신님한테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어요.


“다람신님. 왜 저를 걱정 슬롯 꽁 머니한테 보내셨어요? 저는 이제 어떻게 달려요?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슈퍼 슬롯 꽁 머니잖아요. 어떻게 같이 달려요? 제 수레에 지금까지 최소한의 짐만 담아서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이제 걱정 슬롯 꽁 머니랑 같이 달리려면 힘들지 않을까요? 어떻게 같이 달려요?”


다람신님은 다 알고 계셨다는 듯이 말씀하셨어요.


“내일 아침에 수레 새로 사고 달려봐. 내가 좋은 수레 하고 텐트 싸게 파는 수레 샵 소개해 줄게. 32번 출구 앞에 가면 좋은 가게가 있을 거야. 내가 내일 아침에 슬롯 꽁 머니 두 마리가 간다고 얘기해 놓으마. 너희는 뭐 그리 걱정이 많니?”

“네? 저 친구가 걱정 슬롯 꽁 머니고 저는 곰 슬롯 꽁 머니인데요?”

“어휴 미련 곰 슬롯 꽁 머니 같으니라고. 이만 자라.”

“네”


다음날 아침.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를 깨워서 32번 출구 앞에 있는 수레 샵에서 좋은 가격으로 새 2인용 수레와 텐트를 바꿔서 나왔어요. 이제는 야외 취침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문득 안도감이 들었어요. 짐을 옮겨 싣고 곰 슬롯 꽁 머니는 걱정 슬롯 꽁 머니에게 수레 끄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자 이 수레는 여기 앞부분에 있는 레버를 당기면 브레이크야. 달리기 전에는 이 브레이크를…”

“이야아아앗~!!!! 뭐야 이거 안 움직이잖아! 이거 뭐 이래!”

“그러니까 이 브레이크를 풀고”

“응 이렇게? 앞으로 당겨? 이렇게?”

“아니 앞으로 밀어”

“이렇게? 꺄악~~~~ 쿵”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있던 슈퍼 슬롯 꽁 머니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브레이크가 풀리자마자 균형을 잃고 앞으로 튀어나가다 넘어지고 말았어요. 뒤에 있던 짐들은 와르르 쏟아지고 걱정 슬롯 꽁 머니는 무릎과 팔에 멍이 들고 말았어요.


“괜찮아? 아프지?”

“아 아파…… 흑…… 저거 왜 저래?”

“응, 시작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먼저 풀고 힘을 주기 시작해야 하는 거야 천천히.”

“그럼 미리 말해줘야지!”

“응 말해주려고 했는데..”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걱정 슬롯 꽁 머니는 수레 안에 쏜살같이 달려가서 서 있었어요.


“브레이크를 이렇게 밀고, 천천히 앞으로, 이렇게.. 와 간다~!!”


곰 슬롯 꽁 머니는 고속도로에 사는 모든 슬롯 꽁 머니들이 5살 때부터 하는 수레 끌기에 성공하고 기뻐하는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보면서 웬일인지 마냥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 곰 슬롯 꽁 머니야! 이거 무거워 같이 끌어.”

“응?”


곰 슬롯 꽁 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슈퍼 슬롯 꽁 머니가 무겁다니. 같이 끌자니. 도토리 5개만 먹고도 200미터를 달리는 슈퍼 슬롯 꽁 머니인데.


“응? 어, 그 그래..”


곰 슬롯 꽁 머니는 쏟아진 짐들을 다시 싣고 왼쪽 운전석에 서서 걱정 슬롯 꽁 머니를 바라봤어요.


“뭐해? 빨리 끌어.”

“응.”


곰 슬롯 꽁 머니는 능숙하게 브레이크를 풀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어요. 걱정 슬롯 꽁 머니도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어요. 처음 해보는 수레 끌기이지만 슈퍼 슬롯 꽁 머니답게 금방 몸에 익혀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럼 이제 속도를 높인다.”


두 슬롯 꽁 머니들은 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어요. 꽤 빨라진 수레를 끌고 있는 두 슬롯 꽁 머니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배어나기 시작했어요.


“아 힘들다.”


놀랍게도 힘들다고 먼저 말한 쪽은 걱정 슬롯 꽁 머니였어요.


“잠깐 쉴까?”

“아냐, 더 달릴래.”


두 슬롯 꽁 머니들은 빠른 속도로 다른 수레들을 지나쳐갔어요. 둘이 같이 땀이 났고, 둘이 같이 숨이 차 올랐어요. 그제야 곰 슬롯 꽁 머니는 자신도 슈퍼 슬롯 꽁 머니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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