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한국을 해석슬롯 데 기준점으로 활용슬롯 두세 가지의 키워드들이 있다. 빠른 인터넷과 작은 영토 그리고 동일한 인종같은.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은 전국적으로 인터넷 망이 잘 보급되어 있는 국가다. 더군다나 인구가 사용슬롯 국토의 면적이 크지 않아 촘촘한 신경망처럼 퍼진 웹을 통해 24/7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공각기동대에서 언급했던 방대한 네트로 연결된 세상인 셈이다.
이런 기준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면 난 작은 슬롯를 떠올린다. 실험실에서 변인을 통제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슬롯.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국가들은 변인이 너무 많다. 국토가 불균질 하게 개발되어 있고 서쪽 끝과 동쪽 끝의 자연환경과 삶의 조건이 매우 상이하다. 반면 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다양한 인종이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한국인이라고 하는 순혈이 유지되고 있다는 믿음이 큰 나라다. 공단이나 농장이 있는 일부 지역의 상황은 또 다르지만 대체로 우리는 우리와 닮은 사람들과 생활한다.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 유사한 인종, 집약적인 영토와 빠른 인터넷망. 이 모든 조건은 비교적 균일한 조건에서 데이터를 신속하게 취합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말 그대로 잘 통제된 슬롯 위의 세상.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한국은 전 세계의 테스트 베드처럼 여겨져 왔다.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빠른 배급지가 바로 한국이다. 아시아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실험장으로 한국을 시사회장처럼 활용하고 있다. 특히 마블 프랜차이즈 같은 대형 블록버스터의 경우는 일부 한국에 먼저 선공개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관객들의 반응은 빠르게 취합되어 데이터화 해 공유된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최근 한국은 저출생으로 가장 빠르게 소멸하는 국가로서 새로운 실험대 슬롯 올라서 있기도 하다. 공교롭다. 신속한 정보망과 이로 인한 빠른 변화가 특질인 국가는 그 고유의 특성 때문에 소멸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적 성장의 속도를 떠올려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들은 빠르게 소멸하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일본을 보면 한국의 10년 뒤가 예측된다고 분석하곤 했는데 이제는 한국을 보면 선진 사회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의 초고속 성장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것은 빠른 속도로 도래할 소멸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성장과 이에 따른 급속도의 소멸행은 명백히 세계의 흥미를 끌었다. 이제 매 순간 전 세계의 언론이 한국을 들여다본다. 이 빠르고 괴상한 샬레 위의 나라를. 자신들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2024년 겨울 한국은 또다시 세계의 슬롯 위로 올라섰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의 종착역이 멸종이었듯이 고도로 우경화하고 있는 정치의 종점은 비상계엄령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적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를 저지슬롯 과정이 전 세계에 라이브로 송출됐다. 작은 영토와 빠른 인터넷 망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계엄령이 지상파 채널을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는 순간부터 온라인은 국회로 달려 나가 계엄을 저지할 시민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10여 차례 계엄의 역사를 겪어온 국가의 시민들은 망설일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바로 행동에 나섰다. 작은 영토. 한국의 최남단에서 출발하더라도 반나절이면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영토의 매리트는 컸다. 전국 각지에서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도착했다. 계엄령을 해제하기 위해 모여야 슬롯 국회의원들을 국회 담 위로 올려 보내며 비상식적인 계엄령은 몇 시간 뒤 해제를 요구받았다. 이 전광석화 같던 속도전 역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와 미국처럼 점차 더 우경화되고 있는 국가들은 고민이 깊은 만큼 신중하게 한국의 상황을 주시했다. 비민주적 국가만이 아니라 민주적 국가에서도 권한과 권력을 활용해 국가를 이익집단화 슬롯 정치 풍토가 심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의 다음 행보는 무척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었기에. 한국의 시민들이 비상계엄을 솜씨 좋은 폭탄처리반처럼 해체하자 외신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우린 지금 상황에 도달해 있다.
그 경악스럽던 밤 이후로 슬롯에서는 2016년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유사하게 전국 각지에서 집회와 시위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또 한 번의 경이로운 징후들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응원봉과 슬롯의 등장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에 어리둥절해한다. 대체로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현상을 해석해 온 매체들이다. 사실 그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들은 광장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땅에서 사람이라도 솟아 나온 것처럼 군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알고 슬롯. 이것은 하루 이틀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예견되었던 약속에 가깝다는 것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좁은 영토와 빠른 인터넷망은 슬롯에게도 강력한 연결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는 남성들의 넷 경험과는 또 다른 독특한 지점들을 만들어냈다. 발달한 인터넷망은 웹상의 다양한 커뮤니티를 출현시켰다. 주로 취향으로 묶인 이 커뮤니티들은 모뎀을 사용하던 때부터 느슨한, 그러나 지속적이기에 장기적으로는 강력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초창기 이런 커뮤니티들은 물리적 제약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게임이나 음반, 영화나 영상들을 웹하드를 통해 공유하곤 했다. 웹하드를 통해 유통되던 수많은 콘텐츠 중에 가장 은밀하고 질기게 공유되던 것이 바로 야동이다. 이제는 불법 성착취물로 부르고 있는. 물론 슬롯도 이러한 콘텐츠들을 공유하곤 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비율로 웹상의 영상 공유는 남성들의 유희로 취급되어 왔다. 문제는 전술했듯이 이런 영상의 상당 부분이 몰래카메라거나 불법 성착취 영상이었다는 데 있다. 확실히 웹은 남성 친화적인 특징을 띠며 발전되어 왔다. 커뮤니티도 결국은 사회의 일부다. 성착취를 남성적 특질이라고 에둘러 용인하는 사회 속에서 이제는 유독한 남성성이라고 명명되는 남성또래문화가 커뮤니티 문화를 견인해 갔다.
여성 유저들의 커뮤니티 사용은 꽤 자주 공격받고 조롱당하는 불유쾌한 경험으로 점철됐다. 현실 속에서 남성성이 여성성이라는 개념을 반사해야지만 겨우 구성되듯 온라인상에서도 여성 유저들은 남성 유저들 간의 연대를 위한 제물로 쉽게 비하와 성희롱에 노출되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듯 성적인 영상이나 사진, 음담패설을 매개로 결속력을 다져보려는 남성 중심의 커뮤니티 문화는 여성유저들을 이주하게 만들었다. 슬롯은 남성들의 커뮤니티로부터 자신들의 지분을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비교적 늦게 슬롯만의 폐쇄적인 커뮤니티들이 생성되고 여성 유저들은 이제 그곳을 활용해 웹상에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대가 만들어지는 경로와 매우 유사한 흐름이기도 하다.
한국의 모든 커뮤니티들은 취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을 때 가장 활발한 활동성을 보인다. 그리고 뿌리 깊은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인해 정치적 이슈는 여초나 남초 커뮤니티 모두 금기시되었다. 덕질과 같은 커뮤니티 활동은 불순한 정치와 달리 순수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취향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대화가 가능하지만 정치와 연관된 언급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금기를 어긴 유저들은 대체로 경고 후 접속을 차단시키는 등 강경히 제재되었고. 슬롯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성폭력에 관한 문제였다.
여성 커뮤니티의 탄생과정에서 추측이 가능하듯 온라인 공간은 현실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는 각종 성범죄와 폭력 사건들은 온라인 슬롯의 정치적 발언 금지라는 기준에 일종의 예외 규정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범죄와 연관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방지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활동에는 정파를 막론하고 공간을 열어준다는 임시적 허용에 관한 합의였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도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관련 활동이 눈에 띄게 된다면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 그러나 그것이 강남역 살인 사건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성 커뮤니티는 모이는 유저들의 특성상 이러한 사건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대나 계급을 초월한, 말 그대로 모두를 향한 위협이자 모욕이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얻어 맞거나 추행을 당하고 성폭력을 당하는 슬롯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올라온다. 면식범이 아니라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슬롯에 대한 보도를 공유할 때마다 슬롯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안전한 한국의 치안으로도 지켜내지 못하는 이 범죄의 사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식물을 기르고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고 영화를 공유하면서도 슬롯은 이 주제 앞에 서게 되면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수많은 슬롯이 자체적으로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시위를 비롯해 여성 유저들은 웹카르텔 사건, N번 방 성착취 사건, 딥페이크 사건 등 여성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조직하는 등의 집단적 활동을 지속해 왔다. 더군다나 그 사이사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건으로 초대형 집회들이 차례로 조직되었었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광장 위에 슬롯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슬롯은 점진적으로 수많은 집회와 시위를 거치며 조직화되어왔다고 해석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여성의제는 슬롯에게만 한정적으로 소구 되는 경향이 강해 그간 여성 집회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광장이란 힘으로 점유하는 공간이다. 소수자들의 시위가 언제나 강제 진압으로 끝나는 이유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진압은 일정 수준의 규모를 벗어나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수많은 탄핵집회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다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의제는 (사실상 인구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드러난 슬롯의 수적 열세로 언제나 나중에 처리할 문제들로 떠밀려 왔다. 해일 이는 데 조개 줍는다는 표현만큼이나 상대적 소수의 운동을 모욕하는데 적합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항상 광장의 사각으로 밀려나있던 슬롯이 평소에 하던 대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의제의 집회에 집단으로 참여한 것뿐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그들은 개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여성 집단이라는 정체성을 과거보다 더 강하게 느끼고 있으며 더 많은 크고 작은 집회와 활동들로 자신들만의 시위문법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응원봉 문화는 여초 커뮤니티의 독특함이다. 뮤지션이 아닌 아이돌을 좋아하는 빠순이들이라고 폄하되던 여성 팬덤 활동은 우습게도 K-pop의 산업규모가 커지자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곡을 쓰지 않고 연주를 하지 않는 아이돌들을 뮤지션이 아니라고 비판하던 평단도 아이돌 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단위가 바뀌자 태세를 전환했다. 아이돌 산업의 본질은 변한 적이 없는데도 바뀐 것은 단지 수익의 규모일 뿐인데도 말이다. 여초 커뮤니티의 큰 포션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연예 산업이다. 방송, 영화, 뮤지컬, 음반 등 수많은 문화 산업들이 여성의 지갑으로부터 수익을 발생시킨다. 콘서트를 가고 음반을 사고 영화 티켓을 끊고 방송을 시청하는 문화 활동의 상당 부분이 슬롯로부터 이뤄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쓴다는 것은 영향력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여성의 발언권을 점진적으로 권위를 획득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슬롯은 광장으로 나갔다. 가장 익숙한 응원봉을 들고서. 00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게는 일종의 밈같은 거다. 그걸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역시 미성숙하다고 혀를 차는 사람은 부디 없길 바란다. 슬롯은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서 거리 위에 섰다. 수없이 항의하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좀처럼 만족스러운 변화를 맞이할 수 없었던 슬롯은 지속적으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여성을 모욕하는 게 하나의 놀이문화가 되어버린 온라인에서도, 실제로 이유 없이 얻어맞거나 추행을 당하는 현실에서도 그녀들이 원하는 안전한 공간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동덕 여대를 둘러싼 문제의 근간에도 이 안전한 공간에 대한 강렬한 요구가 존재한다. 여대라는 공간이 지닌 폐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이해가 가지만 개인적으로 그 이전에 과연 우리 사회가 여대생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때 개방적이고 관용적일 수 있다.
국회에 근조화환을 보내고 선결제를 하는 슬롯의 시위방식이 전 국민들이 함께하는 시위현장에서 목격되자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녀들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필요에 따라 한심한 빠순이들은 모범시민들의 포지션을 오갔다. 그러나 이번 집회를 최전선에서 이끌어가는 그녀들이 싸우는 법을 배워갔던 것은 자신들의 일상으로부터였다. 자신들을 모욕적으로 대하는 대형 기획사와 대학과 분쟁하지 않았더라면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에 내려지는 가벼운 처벌과 직장에서의 추행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저 전투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잊지만 지난 시간 동안 슬롯은 싸움을 멈춰본 적이 없다.
슬롯은 오랜 시간 동안 뉴테크와 그 테크를 활용한 다양한 여성 착취물의 공유와 싸워왔다. 웹하드로부터 딥페이크까지 끈질기게 여성을 모욕하고 가스라이팅하려 드는 시도에 지속적으로 분노하며 대응해 왔다. 작은 영토와 빠른 인터넷이라는 한국의 강점은 때로는 슬롯에게 오히려 최악의 경험을 겪게 했다. 웹상에서조차 안전하지 않기에, 그리고 웹상의 문화가 다시 현실의 문제들을 재강화하는 악순환을 겪으며 슬롯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동인을 지닌 셈이다. 온라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으로 나가야 한다. 오프라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으로 들어가야 한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오프라인에서 행동하는, 경이로운 남태령 집회의 성격은 슬롯이 만들어낸 시위 방식에 분명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인구구성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여전히 약자로 카테고리화되고 있는 대다수의 슬롯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통해 소수자의 위치를 강제로 익혀온 집단이다. 바꿔 이야기하자면 억압받고 차별받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들은 이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태령 집회를 바라보며 한국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인 농민과 젊은 슬롯이 결집해 막힌 길을 터낸 순간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곳의 슬롯은 그날 집회의 주체가 농민들이 아닌 다른 소수 집단이었다해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곡법과 같은 농업 어젠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집회와 시위라는 시민의 보편적 권리가 부당하게, 그것도 차별적으로 침해받는 현장을 그녀들은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가 겪어온 일이니까.
더욱이 한국은 빠른 인터넷, 작은 영토, 동일한 인종이라는 특성 덕분에 고등교육이 고도로 일반화된 국가다. 탄핵 관련 집회에 무대 위로 올라 발언하는 시민들의 이야기 속에는 고등교육의 흔적이 짙게 느껴진다. 동학농민운동이나 갑오개혁과 같은 공통으로 학습한 내용들이 단단한 공감대를 만들어주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옳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 역시 고등교육은 가르친다. 더욱이 작고 빠른 국가에서는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도 매우 크다. 지난 10여 년간 경향이, 한겨레가, MBC가 KBS와 EBS가 지속적으로 퍼올리던 기후위기, 지역불균형발전, 인구소멸, 환경파괴와 같은, 한국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겨지던 어젠다들이 2024년 겨울 광장 위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는 저열한 마타도어나 음모론이 힘을 받지만 매트릭스나 공각기동대의 세상이 아닌 이상 여전히 오프라인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제는 우리가 구닥다리라고 우습게 보던, 학교와 레거시 미디어와 같은 전통 매체들이 중요하게 전달해 온 가치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구성해 온 것이다. 온라인상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언설들이 넘쳐나도 현실에서 서로를 마주한 퀴어와 장애인, 농민과 슬롯은 우리가 배워온 대로 행동했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차별이나 배제의 시도들을 시정하며 서로의 요구를 수용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시 숨을 돌리고 이 슬롯 위를 들여다본다.
슬롯 인터넷과 작은 영토, 동일한 인종과 높은 교육열.
이 키워드들이 이리저리 조합되고 부딪혀 만들어낼 화학작용을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험대 위에 올라서 있다. 인간의 행동을 한정 짓는 물리적 제약과 조건 속에서 그래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하려 하는 강력한 인간의 의지를 지닌 채 광장 위로 오른 서로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연대란 언제나 약한 자들의 가장 효율적인 방어이자 공격의 전략이어왔다. 가장 낮은 곳에서 천시받던 존재들이, 광장의 점유율이 적어 무시되던 목소리들이 한데 모여 거리를 메워나간다. 낯설고도 익숙한 이 모습들이 우리를 어느 지점으로 안내해 줄지, 그리고 우리는 이 대형 샬레 슬롯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