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쓰고 싶어 책을 샀다. 내 고민이 책 제목에 그대로 나와 있었다. 일기를 슬롯사이트 바꾸는 법. 나는 정답을 쉽게 얻고 싶어 책을 샀지만, 책에 정답은 없었다. 대신 좋은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 좋은 글감 찾는 법, 메시지가 있는 글 쓰기, 타인이 내 글에 공감하는 법 등. 모든 질문에는 작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들이라 정답은 아니다. 결국 각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가야 나의 에세이가 완성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특별하고 각별하게 생각합니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내가 제일 우울한 것 같고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자신이 겪은 고생 담을 노트에 끼적여보는 사람과 어우 피곤해하며 그냥 자는 사람.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전자겠죠?
사소하게 끄적거린 슬롯사이트가 나중에 의미 있는 큰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책에서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포로감시원을 다룬 라디오 다큐멘터리 <조선인 전범 - 75년 동안의 고독을 시작한 단계에서부터 끄적인 슬롯사이트 이야기가 좋았다. 아주 작은 씨앗을 심어주었던 슬롯사이트부터, 실제로 이야기를 발전시키며 그 과정에서 했던 슬롯사이트, 감정의 흐름 등을 소개해주는 과정이 마치 내가 그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감정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슬롯사이트는 누가 하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띄고 그 슬롯사이트를 다룬 결과 또한 아주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슬롯사이트를 남기고 어떤 기록을 하는지 궁금해서 최근 그런 책들에 더 손이 갔던 것 같다. 최근 읽었던 책들이 좋은 참고가 되었지만 결국 슬롯사이트든 기록이든 정해진 내용과 형식은 아무것도 없고 나만의 슬롯사이트와 나만의 이야기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에 남는 구절:
"슬롯사이트같이 사소한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우리는 항상 사소한 것들의 도움 및 방해를 받고 있지 않냐고. 강아지가 꼬리만 흔들어도 웃을 수 있지 않냐고, 미세먼지만 심해도 우울하지 않냐고, 소음만 심해도 떠나고 싶지 않냐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몇 문장을 옮겨 적고 큰 소리로 외우는 것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사소한 일'이란 말을 언젠가는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 질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룬 성취, 그 전 단계에는 자신만의 슬롯사이트가 존재할 것이다. 줄 치고, 삭제하고, 또 쓰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하트 표시, 별 표시, 엑스 표시, 동그라미 표시, 온갖 색깔의 펜, 온갖 필체, 각주, 화살표.... 슬롯사이트는 인내심의 표현이다. 우리는 슬롯사이트를 재료로 책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작업을 완성하고, 특별한 날을 준비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더 나은 생각을 찾고, 노동을 값지게 할 수 있다.
꿈꾸는 사람에게 일어날 가장 설레는 일. 꿈을 공유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다.
4. 언컨택트 / 김용섭
너무 늦게 읽었나. 코로나 19 초기라면 신기하게 읽었을 이야기들이 이제는 너무 일상이 되었다. 특히 비대면 시대의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워낙 관심이 많아 그동안 많이 찾아 읽어서 새로운 얘기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온갖 분야에서 비대면의 영향을 다양한 사례로 살펴본 건 의미 있다고 느꼈다.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어느 부분에서 비대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
언컨택트는 서로 단절되어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선택된 트렌드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안과 위험의 시대, 우린 더 편리하고 안전한 컨택트를 위해 언컨택트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언컨택트 사회는 모든 타인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가리는 것이다.
슬롯사이트도 알차게 끝난 느낌. 8월의 첫 책은 얼마 전에 서촌 '한 권의 서점'에서 구매했던 '커플의 소리: 아 무샹.' 지금 반쯤 읽었는데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