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슬롯을 느낄 수 있었을까. 사실 슬롯은 아니지만 슬롯이라고 여기면 더 극적으로 보이니까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슬롯은 아니라면 뭐라고 할 것인가. 처음 겪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정적인 사건을 쉽게 슬롯이라고 이름 지을 것인가. 그렇게 하면 슬롯은 마침내 슬롯의 지위에 오르는가. 절대악이 줄어들고 내가 겪은 악이 내가 겪었다는 이유로 날 최근 가장 크게 흔들었다는 이유로 슬롯이 되나. 슬롯이라고 하면 뭔가 좀 대단해지나. 충격과 경험과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극대화되나. 나는 지금 나에게 비아냥 거리는 건가. 너는 지금 슬롯도 아닌 아주 일상적인 아주 약간 부정적인 일을 겪었다고 그걸 슬롯의 카테고리에 욱여넣어서 원인 제공 상황을 악으로 규정하려고 바둥거리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 그럴 것까지 없다.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긴 하다. 하지만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순위를 매긴다면 그렇다. 그때는 정말 최초로 겪는 슬롯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실시간이었고 현실이었으며 직접 겪은 당사자니까. 위기였다. 무너질까 봐. 댐의 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주먹이 빠지고 그 구멍으로 누수된 물이 댐을 무너뜨리고 지키려던 마을을 뒤덮고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들을 뒤덮고 애써 키운 농작물을 뒤덮고 산과 들을 파헤치고 애써 가꿔온 작은 세상을 완전히 파괴할까 봐. 그 작은 세상이 누군가에게 전부였던 이들을 몰살할까 봐.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처럼 폭격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로 수년 동안 스크랩한 사진들, 파괴한 도시들, 주검들, 장례식, 오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의 모래성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나의 모래성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모래성이었고 우리의 모래성이라고 했지만 오랫동안 축조에 공들인 단단한 완성체였다. 급습을 당했다. 난 부둥켜안고 지켜야 했다. 나(정신과 감각, 반응과 표출)는 훼손되었고 우리의 결과물은 지켜져야 했다. 후속 공격이 뒤따랐고 이 역시 예상을 벗어난 영역이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지만 이런 일은 발생했다. 최선은 다했고 슬롯을 면했지만 기대한 건 이게 아니었다. 조금 무너졌지만 무너지지 않은 게 아니다. 무너지지 않은 것과 무너진 것은 다르다. 그 차이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완전히 다르니까. 완전히 다르다. 완전히. 언젠가 희미해지더라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깊고 섬세하고 밝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긴밀한) 우리 편 때문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우리 편이 없었다면 이 글의 내용은 달랐을 것이다. 우리 편이 오늘을 살렸다. 무너지며 불타며 완전히 사라질 뻔하던 날.
Ver.2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슬롯으로 느낄 수 있었나요. 사실 슬롯은 아니지만 슬롯이라고 여기면 더 극적으로 보이니까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슬롯은 아니라면 뭐라고 할까요. 처음 겪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부정적인 사건을 쉽게 슬롯이라고 부를 건가요. 그렇게 하면 슬롯은 마침내 슬롯의 지위에 오르나요. 절대악이 줄어들고 내가 겪은 악이 내가 겪었다는 이유로 날 최근 가장 크게 흔들었다는 이유로 슬롯이 되나요. 슬롯이라고 하면 뭔가 좀 대단해지나요. 충격과 경험과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극대화되나요. 나는 지금 나에게 비아냥 거리나요. 너는 지금 슬롯도 아닌 아주 일상적인 아주 약간 부정적인 일을 겪었다고 그걸 슬롯의 카테고리에 욱여넣어서 원인 제공 상황을 악으로 규정하려고 바둥거리는 거 아니냐고.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요 그렇지 않아요. 그럴 것까지 없나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게 맞나요. 하지만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순위를 매긴다면 그게 맞아요. 그때는 정말 최초로 겪는 슬롯의 순간처럼 느껴졌어요. 실시간이었고 현실이었으며 직접 겪은 당사자니 알아요. 위기였어요. 무너지고 있었어요. 댐의 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주먹이 빠지고 그 구멍으로 누수된 물이 댐을 무너뜨리고 지키려던 마을을 뒤덮고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들을 뒤덮고 애써 키운 농작물을 뒤덮고 산과 들을 파헤치고 애써 가꿔온 작은 세상을 완전히 파괴할까 봐 두려웠어요. 그 작은 세상이 누군가에게 전부였던 이들을 몰살할까 봐.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처럼 폭격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로 수년 동안 스크랩한 사진들, 파괴한 도시들, 주검들, 장례식, 오열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나의 모래성에 균열이 가고 있었어요. 나의 모래성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모래성이었고 우리의 모래성이라고 했지만 오랫동안 축조에 공들인 단단한 완성체입니다. 급습을 당했어요. 난 부둥켜안고 지켜야 했어요. 나(정신과 감각, 반응과 표출)는 훼손되었고 우리의 결과물은 지켜져야 했어요. 후속 공격이 뒤따랐고 이 역시 예상을 벗어난 영역이었어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나요. 하지만 이런 일은 발생했어요. 최선은 다했고 슬롯을 면했지만 기대한 건 이게 아니었어요. 조금 무너졌지만 무너지지 않은 게 아니에요. 무너지지 않은 것과 무너진 것은 달라요. 그 차이를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완전히 다르니까. 완전히 달라요. 완전히. 언젠가 희미해지더라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에요. (깊고 섬세하고 밝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긴밀한) 우리 편 때문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어요. 우리 편이 없었다면 이 글의 내용은 더 어두웠어요. 우리 편이 오늘을 구해줬어요. 무너지며 불타며 완전히 사라질 뻔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