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때문에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 주말에 특별한 일이 많았다. 토요일 오후에는 태권도 학원에서 에어바운스 행사가 있어서 신나게 놀다 왔고, 그 후엔 동네 친구가 오랜만에 집으로 초대를 해서 또 원 없이 놀다 왔다. 일요일엔 가족들과 동네 물놀이장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요일 저녁. 그림일기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뭐에 대해서 쓰고 싶어? 에어바운스 다녀온 거? 친구네 집 놀러 간 거? 물놀이 다녀온 거?
아니 나 바카라 게임 발사한 거 쓸건대
뭔 말인고 하니, 토요일 아침에 1시간 정도 그 전날 학교에서 만들어온 바카라 게임을 집 앞에 나가서 쏘고 놀았었다. 10m 밖에서 우다다다 달려와 점프해서 버튼 장치를 누르면 하늘로 솟구치는 그런 바카라 게임이었다. 90도 각도로도 쏘아 올리고 45도 각도로도 쏘아 올리고 그냥 대지와 수평하게도 쏘아보고 지나가던 동네 동생들도 한 번씩 하게 해주고 했던 바로 그 바카라 게임. 생각해보니 금요일 밤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바카라 게임 쏘러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아 너는 이게 하고 싶었구나. 네가 직접 만들어온 바카라 게임을 쏘아보고 싶었구나. 어떻게 해야 잘 날아가는지 알고 싶고 또 그걸 엄마랑 친구들이랑 이야기해보고 싶었구나.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것을 소비할 때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생산할 때 희열을 느낀다. 다만 남의 것을 소비하는 게 직접 생산하는 게 쉬우니까 그 길을 택할 뿐. 창작의 고통은 그 무게와 상관없이 항상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만 그만큼 또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기쁨도 크다.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냐 물으면 능동적인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었다. 누가 시켜서 뭘 하기보단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 나는 비록 제도권에서 원하는 상을 내 목표로 삼고 그 길을 향해 달려왔지만 이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애는 알아서 그 길을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상상하고 해 바카라 게임 만들어바카라 게임 실패하고 또다시 해바카라 게임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