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건너려다 바카라에서 오던 오토바이와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그도 놀랐는지 오토바이 헬멧 속의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째려보는 것 같다.
태국은 운전석이 바카라에 있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좌측통행이다. 항상 머릿속에 생각하고 조심했는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방금 길을 건너면서도 바카라을 먼저 살펴야 했는데 습관적으로 왼쪽을 보고 차와 오토바이가 없으니 안심하고 차도로 발을 내디뎠다. 바로 그 순간, 오토바이가 내 앞에서 ‘끽’ 급정거를 했다. 숨이 멎는 듯 깜짝 놀랐고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이 났다.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운전석이 바카라인 나라들은 과거 영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 많다고 한다. 2024년 현재 약 75개의 나라가 있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태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이스라엘, 홍콩 등. 이렇게나 많은 나라들의 운전석이 바카라에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국에서 올 때 국제운전면허증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직접 와서 보니 도저히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자신이 없다. 길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도 이렇게 불안하고 헷갈리는데 자동차를 반대로 운전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태국에서 꼭 운전을 해야 한다면 여기서 다시 운전 연수를 받아야 할 것 같다. 태국에서 운전은 과감히 포기했다.
처음으로 방콕 시내 교통의 중심지인 빅토리 모뉴먼트 (1941년 프랑스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만든 전승탑)에 가보기로 했다. 방콕 시내 교통 노선을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했다.
25 바트 바카라
8 바트 바카라
공짜 바카라
우리 집은 방콕의 서쪽에 있다. 방콕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바카라를 타는 것, 두 번째는 지하철을 타는 것, 세 번째는 그랩(Grab)이나 볼트(Bolt) 등 앱으로 부르는 택시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다. 그 밖에 뚝뚝이도 있지만 미터기 없이 흥정을 해서 가격을 협상해야 한다. 내가 타기엔 힘들 것 같다. 뚝뚝이는 오픈카여서 방콕 시내 매연을 다 마실 수도 있다. 내 취향은 아니다. 방콕 시내의 교통체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침을 먹고 집 앞 바카라 승강장으로 갔다. 10분쯤 기다리니 515번 파란색 바카라가 왔다. 내 앞으로 2~3명의 학생들이 탄다. 앞문으로 타면서 현금을 내려고 했으나 바카라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학생들도 돈을 내지 않고 스캔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자리에 앉는다. 나도 뒤따라 빈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진한 청색 유니폼을 입은 할머니 한 분이 길쭉한 대나무 통처럼 생긴 것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와 뭐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이분은 누구지?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지? 무슨 물건을 파는 사람인가?’
나는 태국어를 모르고, 이분은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것이다. 전화기로 번역 앱을 켜서 할머니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빅토리 모뉴먼트에 가고 싶습니다.’
전화기를 본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25밧입니다.”
오잉? 영어로 말한다. 안내원 할머니의 유창한 영어를 듣고 나니 내 입에서도 영어가 술술 나온다. 내 안에 잠들어있던 영어가 태국 바카라 안에서 깨어났다.
“태국 바카라는 처음 탑니다. 빅토리 모뉴먼트를 미리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 걱정 마세요. 알려줄게요.”
2024년 가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바카라 안내원을 태국에서 만났다. 그것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현대식 할머니 안내원을. 게다가 그녀는 친절하다.
바카라요금은 타는 구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안내원 할머니가 멋있어 보인다. 편안한 마음으로 창밖을 구경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안내원 할머니는 이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어디에서 탔는지 어떻게 기억하고 그 사람에게 가서 교통비를 받을까?’
복잡한 바카라 안에서 바쁜 그녀를 붙잡고 물어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기회가 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9월의 방콕 날씨는 34도와 35도를 오르내리지만 시내바카라 안의 온도는 21도로 시원하고 쾌적하다. 내가 탄 시내바카라 옆으로 커다란 트레일러를 두 개 연결한 긴 트럭이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간다.
방콕 시내는 버스와 트럭, 지상철, 지하철, 택시, 오토바이, 뚝뚝이, 자전거 등 온갖 탈것들이 혼재해 있다. 내가 탄 버스 바카라으로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왼쪽으로도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오토바이들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은데 아무 사고 없이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잘 흘러간다.
여러 가지 탈 것들
‘빅토리 모뉴먼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방콕 중심 도시철도인 BTS(지상철)와 MRT(지하철)와도 연결된다. 사람들이 자꾸 BTS라고 말하는 걸 듣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