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바카라 꽁 머니 무슨 힘이 있겠냐지만 죽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힘도 있다. 미움을 흩어내는 힘 혹은 자비를 심는 힘.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는데, 막상 진짜 죽어버리면 바카라 꽁 머니 당황을 하나, 그때부터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던 자신의 마음을 잊어버린다. 아니면 진짜 죽었으니까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자동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사실은 죽인 것도 아니고 나 홀로 방구석에서 죽을 만큼 미워한 것뿐인데 -조금이라도 그의 육체에 흠집을 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형을 가져다 놓고 저주를 퍼부은 것도 아닌데- 진짜로 죽어버리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라도 드는 것일까?
아빠는 바카라 꽁 머니를, 바카라 꽁 머니는 아빠를 경쟁이나 하듯 미워했다. 하지만 그 경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바카라 꽁 머니는 줄곧 열세였고, 아빠는 우세였다. 이혼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든, 비극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는 자유가 따른다. 아빠가 바카라 꽁 머니를 죽도록 싫어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기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싫어하는 일을 제3의 인간이 바로잡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아빠의 미움 경쟁은 늘 고도를 달렸다. 바카라 꽁 머니가 죽기 전까지.
그 모습이 썩 좋게 보이진 않았다. 버섯이나 오이를 싫어하는 행동도 갓난아이 앞에서는 조심해야 할 일이다. 부모가 편식하는 음식을 자식도 편식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러하다. 바카라 꽁 머니를 향한 아빠의 분노 표출은 제 앞에 핏덩이가 있건, 저를 낳아준 부모가 있건 가리는 일이 없었다. 그 행동이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이염된 아빠의 분노가 꽤 오랜 시간 바카라 꽁 머니를 향해 있었다. 바카라 꽁 머니가 나를 버린 줄 알았던 것이다. 이혼. 그것이 핏덩이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핏덩이와 같이 살아보려고 했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는 그것을 몰랐던 순간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간 아빠가 내뿜었던 분노의 불꽃들이 도대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 분노 곁에는 늘 내가 있었는데, 활활 타는 불에 그슬려 볼품이 없어진 건 정작 나인데.
바카라 꽁 머니와 일 년에 두 번씩 여행을 다녔던 나는 독립문 앞에서, 에펠탑 앞에서, 오줌싸개 소년 동상 앞에서 남긴 기념사진들이 가득이었다. 카카오톡 메신저에 바카라 꽁 머니와 여행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두면 아빠는 귀신같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진 내려라.
시위를 하듯 여러 번 바카라 꽁 머니와 찍은 사진을 올려두고 다시 여러 번 아빠의 메시지를 받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바카라 꽁 머니가 죽자, 아빠는 더 이상 그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제야 미움이 멎었다.
바카라 꽁 머니의 죽음이 아빠의 마음에 자비를 한 알 심어 놓기라도 한 걸까? 부디 그의 좁디 좁은 마음 밭에 자비라는 것이 자리할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