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뒤끝이 길다.마음에 남은 앙금을 뜻하는 그 '심리적' 뒤끝 맞다. 한때는 물리적 뒤끝까지 길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더 튀어나와 있던 물리적 뒤끝과는 2023년 5월,외과적 수술로 작별을 고했다. 물리적 뒤끝보다 지독한 심리적 뒤끝은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런지.
뒤끝이 길면 피곤하다. 나에게나 주변 사람에게나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기억력이좋은 자의 숙명이려니 받아들이고 살다가도 한번씩 현타가 온다. 나의 뒤끝은 정도가 심하다.7-8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어기어이 사과를 받아낸 적도 있다. 그것도 그저 스쳐 지나간 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그러고 보니 그 사람도 항문외과의 의료진 중 한 사람이었더랬다.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05
마침내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는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내가 들어갈 차례였다. 어련히 알아서 불러주겠지, 진료실을 등지고 앉아 계속 아내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카라 꽁 머니;어어? 잠시만요!바카라 꽁 머니;
갑자기 아내분이다급한 외마디 소리를 냈다. 그제야 진료실 쪽을 돌아보니 나보다 한참 늦게 온 다른 환자가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어안이 벙벙해 말을 잃은 나 대신 아내분이 목소리를 높였다.
바카라 꽁 머니;이 분이 먼저 들어가셔야 돼요!바카라 꽁 머니;
잠시 움찔하는가 싶던 간호사는 잠깐 사이 태연하게고쳐먹은 얼굴로 답했다.
바카라 꽁 머니;저 분이 먼저예요.바카라 꽁 머니;
바카라 꽁 머니;아니에요. 여기 이 분이 제일 먼저 오셨어요!두 시에 오셨는데 저희 남편수술 때문에 지금까지 기다리신 거예요!바카라 꽁 머니;
더 이상 나의 권리를 위해 타인이 싸우게 둘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이는 방금 남편의 응급수술이 잘끝났다는 소식을 듣고이제야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한 환자 보호자가 아닌가.
바카라 꽁 머니;저 오후 2시에 예약했고, 두 시간째 기다렸는데...이번이 제 차례 아닌가요?바카라 꽁 머니;
지극히 당연한 이의 제기에간호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새침하게 답했다.
바카라 꽁 머니;저 분이 더 앞 시간에예약하셨어요.바카라 꽁 머니;
바카라 꽁 머니;제가 오후 첫 진료로 예약했는데, 어떻게 저보다 앞 시간에 예약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저 환자분은 오전 예약인데 오후 네 시가 다 돼서오셨다는 얘긴가요?바카라 꽁 머니;
간호사의 미간이 팍 일그러졌다. 곤란한 듯 잠시 눈알을 굴리던 그는갑자기 픽 웃음을 흘렸다.
바카라 꽁 머니;그럼 뭐 어떻게 해드려요? 저 분 나오시라고 해요?바카라 꽁 머니;
바카라 꽁 머니;네, 그렇게 해주세요.바카라 꽁 머니;
바카라 꽁 머니;...이미 진료중이셔서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바카라 꽁 머니;
알고 보니 순서를 새치기한 환자는해당 간호사의 지인이었다. 제 지인이라는 이유로 간호사 마음대로 진료 순서를 바꾼 것이다. 그래놓고 뻔뻔하게 거짓변명으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모든 게 들통난 뒤에도사과 한 마디 없었다. 기가 막혔지만,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 잘못 없는 아내분이괜히 안절부절못하며 몹시 미안한 얼굴로나를 바라보고 있었기때문이다. 애써 웃으며 그이에게 인사를 건네고병원을 나섰지만,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억울함은 오래도록 가슴에 맺혔다.
그로부터 7-8년이 지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연히그 간호사를 만났을 때, 나는기어이 그때 일을 끄집어내 그에게서 반쪽짜리 사과-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까지 속상하셨다니 제가 죄송합니다-나마 받아내고야 말았다.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떠올릴 때마다 어제 일처럼 분통이 터졌는데,언제 그랬냐는 듯 미운 마음이 일시에 가라앉았다. 나의 뒤끝이란 얼마나 집요하고 또 어찌나 얄팍한지.
문득 떠오르면 미안해진다. 나의 집요함에 질려 허겁지겁 사과를 건네고 허둥지둥 멀어져 간타인들에게.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미안하진 않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이가 저지른 무례에 비해 관대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사과도 했는데 이렇게 글로 박제까지 할 건 무어냐,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 가장 유감인 건, 바로 나 자신이니까. 뒤끝이 길면 정말이지 피곤하다.
이번 뒤끝이 한 달짜리임을감지했을 때, 나는 갈등했다. 뒤끝의 상대가 선이바카라 꽁 머니였기 때문이다.
선이바카라 꽁 머니, 그이는 누구인가. 30대에 만난 선이바카라 꽁 머니는나와 띠동갑이지만 나이로 거들먹거리는 법이 없고, 세상 둥근사람이지만 다른 이의 모남을 고까워하는 법 없는,나의 오랜 이상향이다. 나의 되바라짐을 허허 웃어넘기고 나의 까칠함을 오냐오냐 다독여준, 몇 안 되는 참어른이다. 심리적 어부바도 어부바로 친다면, 30대 이후의 나는 어느 정도 바카라 꽁 머니가업어 키웠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바카라 꽁 머니가 나의 치질 소식에 좀 웃었기로소니 이렇게까지 서운할 게 무어냐. 선이바카라 꽁 머니가 어떤 바카라 꽁 머니냐. 나의온갖 패악과 건방을 다 받아준, 흡사 친정 같은 바카라 꽁 머니가 아니냐.선이바카라 꽁 머니 앞에서나 어리지, 나이로 치면 나도 어엿한 성인인데 어른의 소갈딱지가 이래서야 될 말이냐. 아무리 나를 다독여봐도 서운하다. 너무 서운하다.
'놀리려고 웃었겠어. 바카라 꽁 머니도 웃고 나서 바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래, 수술 받는다는 말만 듣고 놀랐다가그 수술이 치질 수술이라고 하니까순간 웃음이 터질 수도 있지.'
'근데...전화통화였으면 모를까...카톡으로 굳이 웃을 필요는 없지 않나...? 난 진짜 많이 아프고 무서운데...'
03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도시의 유명항외과 원장님은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차라리 동구를 보자마자 바카라 꽁 머니;이건 당장 수술해야 해!바카라 꽁 머니;를 외치며 매스를 꺼내 들길 바랐는데, 그는 바카라 꽁 머니;너 같은 환자는 하루에도 열두 명은 본다바카라 꽁 머니;는 듯 심상한 얼굴로 칼자루를 내게 넘겼다.
바카라 꽁 머니;수술을 할 지, 잘 관리하면서 약물로 치료할 지는 본인 선택이에요. 어떻게 하실래요?바카라 꽁 머니;
이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그저 망한 동구를 추스르며 망연자실 진료실을 걸어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동구는 세상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난 언제까지 망한 동구를 달고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당장이라도 수술해달라고 드러누울 걸 그랬나. 복잡한 심경으로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누웠다. 종일 외출로 부어오른 동구의 통증에다 선이바카라 꽁 머니에게서 받은 내상까지 더해져 한참을 시름시름 앓았다.
저녁 즈음 다시 선이바카라 꽁 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카라 꽁 머니;어떻게 됐니?바카라 꽁 머니;
바카라 꽁 머니;일단 수술은 안 하고 좀 지켜보기로 했어요. 근데 지금도 좀 많이 아파서...바카라 꽁 머니;
바카라 꽁 머니;하하하하하하하!바카라 꽁 머니;
아프다는 말에 터지는 바카라 꽁 머니를 이해할 수 있다. 말 속에 숨어 있는 '동구'를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겠지. 하지만 바카라 꽁 머니를 이해한다고 해서 바카라 꽁 머니에게 느낀 서운함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외상과 내상으로 점철되어 꿈자리도뒤숭숭한 밤을 보낸 뒤,결국 나는 선이바카라 꽁 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화로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또 다시 동구 얘기를 하다가 나는 울고 바카라 꽁 머니는웃게 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강을 건너게 될 지도 몰랐다. 바카라 꽁 머니가 준 내상과는 별개로 여전히 바카라 꽁 머니가 좋았다.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운한 마음을 털어내고 꽁기한 카톡 따위안 보내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말했잖은가. 뒤끝이 긴 자는 피곤하다. 지르고 후회할지언정 구태여 피곤한 길을 택한다.
역시 바카라 꽁 머니는 바카라 꽁 머니였다. 바카라 꽁 머니라면 이렇게 말해줄 줄 알았다. 바카라 꽁 머니가바카라 꽁 머니다워서, 찌질한 동생은 더 많이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