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입플 11

브런치북 19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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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홍차 한 잔 어때?

< 카지노 입플 백번만 만나줘

어떤 추억은 향기를 머금고 있다. 나에게는 홍차의 향기가 그렇다. 마을 언니들과 점심을 먹던 날, 함께 홍차를 마시러 갔다. '카페 판'이라고 불리는그곳으로. 처음에는 원도심의 작은 골목에 카페가아닌 홍차 집이 있다는 마을 언니의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호기심에 한번 가보았지만 굳게 닫힌문이 영영 닫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 추천으로 '카페 판'의 계정을 알게 되었다. 주인은 지금 프랑스라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싱가포르이라고 했다. 맛있는 차와 독특한 소품을 찾아 여행 중이라는 피드를 보았다.


그 후로 꼭 가봐야 하는 곳이 되었다.


제주 돌담 위 둥근 티팟이 그려진 간판처럼, 독특한 자신감을 품고 있는 그곳이 궁금했고 무엇보다 홍차의 진한 향기를 기억하는 나라서.


큰 카지노 입플의 집에서는 늘 홍차 향기가 났다.


12


삼 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나는 매사 억울한 일이 많았다. 분명 내가 동생인데 집에서는 오빠보다 더 자주 설거지를 했고,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오빠 때문에 민수 동생으로 불렸다. 그러나 정작 나를 억울하게 만든 오빠는 하도 나를 곰순이라고 놀려서 울분하게 만들었다. 울고 툴툴거리다가 가끔은 내가 진짜 곰순이처럼 못났건가 하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큰 카지노 입플는 '고려청자'라고 불러주었다.


태어나 처음 들어본 세련된 이름이었다. 고려청자처럼 세상에 딱 하나 존재하는 빛을 지닌 사람으로 자랄 거라고 큰 카지노 입플는 말하고 또 말해주었다. 그런 큰 카지노 입플의 무릎에 앉아있으면 오빠도 더는 나를 곰순이라고 놀리지 못했기에 큰카지노 입플 집에 가는 일이 더욱 좋았다.


세련된 말만큼이나 큰 카지노 입플의 집에서 나는 모든 냄새가 좋았다. 미군에서 일하던 큰카지노 입플 집에는 신기한 물건과 함께 처음 맡는 향이 가득했다. 닫힌 뚜껑 위로 킁킁대며 맡아본 바셀린의 향, 알록달록 곰돌이 모양의 하리보 젤리의 향. 그중 특히 레몬을 짜넣은 향긋했던 홍차 향이 늘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우유에 홍차를 넣고 마셔봐야지. 레몬 향이 나는데 왜 색은 갈색인 걸까. 호시탐탐 홍차 한 모금을 노리는 내 입에 카지노 입플는 각설탕을 넣어주셨다. 혀끝으로 각설탕을 굴리며 나도 빨리 홍차를 마시는어른이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마신 홍차는 향긋한 향기와 달리 텁텁하고 씁쓸한 맛이 났다.


이런 떫은맛을 왜 그때 카지노 입플는 자주 마셨던 걸까. 평소 집에서는 마시지 않지만 큰 아빠 집에서는 홍차를 마시던 시간이 카지노 입플에게는 쉬는 시간이었음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시집 식구가 생기고, 남편의 어머니가 아닌 남편 큰 어머니의 주방에 서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향긋하지만 텁텁한 맛, 씁쓸해도 뱉지 않고 삼키는 맛.


엄밀히 말하면 카지노 입플는 굳이 큰 아빠 집을 자주 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빠와 큰 아빠는 이종 산촌 지간이었을까. 적당히 주방일을 거들며 담소를 나누기만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은 딸이라는 이유로 오빠보다 내가 더 자주 설거지를 했던 시절이니까, 카지노 입플도 당연히 큰 집에 가면 분주히 움직였다.


온갖 일을 다 하고도 고된 시집살이로 맘고생 마저 시키는 고모들과 달리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카지노 입플는 큰 카지노 입플의 주방에서 서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큰 카지노 입플도 엄연히 시집 식구였고, 처음에는 호의로 했던 행동도 당연시되었을 것이다. 당연해진 일은 그만두기가 힘든 법이다.그러면서 점점 카지노 입플는 지쳐갔을 것이다.


카지노 입플에게 찾아온 파킨슨병은 '나를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병이라는 걸 어느 책에서 읽었더랬다.또 다른 책은 말했다.


슬플 때 울지 않으면 다른 장기가 대신 운다고.


자기감정을 잘 들어내지 않는 카지노 입플를 그저 무뚝뚝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카지노 입플는 힘든 것을 느끼지 않으려 참다 보니 좋은 것도 느끼기 힘들 졌을 것이다. 병의 모든 원인이 시집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큰 아빠와 거리를 두게 되었고, 큰 아빠가 돌아가신 후 더는 큰 집에 가지 않았다.


카지노 입플에게 묻고 싶었다. 카지노 입플가 나의 보호자이던 시절 카지노 입플는 왜 카지노 입플를 보호하지 못했던 거냐고.


09


어쩌면 그 시절 카지노 입플는 울타리를 갖고 싶었던 거라고. 그때 카지노 입플의 나이보다 다섯 살 많은 나는 생각한다. 모진 시집살이를 시키던 네 명의 고모보다 어른인 큰 아빠 큰 카지노 입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이유 없는 구박을 한 번쯤은 막아줄. 카지노 입플 편에서 목소리를 내줄 그런 울타리 같은 사람이 카지노 입플는 필요했던 거라고.


그 울타리에 기대기 위해 힘들어도 묵묵히 주말이면 시내버스에 삼 남매를 태워 역곡에서부터 신길동까지 그 먼길을 오갔던 거라고 카지노 입플를 이해한다.


그런 카지노 입플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얻어낸 울타리는 결국 카지노 입플가 바라던 진짜 울타리가 되진 못 했지만 나에게 카지노 입플는 그런 울타리였다고.


한 번도 나에게 고려청자 같은 세련된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없는 카지노 입플지만마음 깊이 나를 사랑해준 덕분에 나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다고.


부당한 일 앞에 부당하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우선적으로 돌볼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그랬기에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의 많은 지분이 바로 카지노 입플가 지나온 시간들에 있다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어느 날.

딱히 할 일이 없어 지루한 어느 오후

카지노 입플와 함께 홍차카페에 앉아 괜스레 옛이야기 꺼내기 좋은 홍차 향기를 앞에 두고.

카지노 입플

+제주 원도심의 숨은 보물,

티하우스 '카페 판' 부모님도 좋아하실티웨어가 가득한 곳이라 절로 옛 추억을 꺼내보기 좋은 곳입니다.

@cafepanjeju


+이미지 출처

© pixeldustie, 출처 Unsplash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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