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둘째 조카를 출산한 동생을위해 그 곳으로 날아간 엄마의 빈자리 덕에,토토 바카라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워낙에 주중에는 안부전화도 잘 하지 않고, 일요일에나 한번 얼굴 내비치며 토토 바카라 해준 밥을 먹으며 TV나 실컷 보다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인 나였다.
그런 나에게 혼자 남겨진 예순 중반의 토토 바카라 맞이하는 마음은, 뭐랄까 방학숙제같은 느낌이랄까? 신경은 쓰이지만, 무언가를 챙기려니 막막한 그런 느낌? 애교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살림을 잘 하는 것도 아닌 것이, 그런다고 엄마의 부재동안 짐을 싸서 본가에 들어가 잠시 사는 것 조차 마땅치 않은, 하지만 무언가는 꼭 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 그런다고 아빠가 나의 수발이 필요한호호 백발의 노인도 아니고, 어쩌면 오히려 아빠가 나를 귀찮아 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간에 이참에 무엇이 되었건 딸노릇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애매한 느낌이었다.
엄마가 없던 첫주일요일은 엄마가 남겨놓은 각종 얼린 국과 반찬, 그리고 토토 바카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며 구해 놓은 전시회 표 덕에 별 무리없는 꽉찬 스케줄의 하루를 보냈다. 두번째 주 일요일은 내가일요일 약속이있어 간단하게 저녁만 함께 먹고 헤어졌드랬다. 세번째 주 일요일은 친구가 보내준 영화 초대권 덕에 둘이 눈물 쏙 빼며 "장수상회"를 관람했다. 네번째 주 일요일은 토토 바카라가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는 날이라 토요일 저녁을함께 했다. 한달이 지나가니 엄마의 국과 반찬이 떨어진지 오래라이미 주말은 아파트 근처의 식당을 전전하며 밖에서 해결한지 한참 되었다. 그런 다음날 일요일 오후 집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데 토토 바카라에게서 디리릭 문자가 왔다.
"마라톤 하고 남은 보쌈 고기 있는데, 맛있겠지?"
순간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에잇 하는 마음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같이 운동한 사람들은 아직 맥주한잔들 하고 있을꺼야, 나는 딸내미랑 저녁 먹는다고 나왔어"
괜시리 옷 챙겨입기 귀찮어"에잇"했던 마음이 죄송스러워졌다.
다섯번째 토요일에는 아예 짐을 싸서 본가에서 자고 갈 준비를 했다. 토요일 저녁 종로에서공연 한편을 같이 보고, 군것질 거리들로 한껏 장을 봐 집으로 왔다. 일요일 아침에는 둘이서 내내 집안 청소를 했다. 나는 청소기로 밀고, 토토 바카라는 걸레질을 하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토토 바카라는 빨래를 널고.. 점심엔 인터넷 레서피를 뒤져 토토 바카라가 좋아하시는 멸치 국수를 대충 만들어 먹고, 오후에는 운동화가 필요하다는 토토 바카라의 말에백화점에 가서 신상 운동화도하나 장만해돌아왔다. 요리에 탄력을 받은 나는 인터넷에 또 돌아다니는 초간단 레서피를 뒤져 버터 계란밥으로 저녁을 지어 먹고, 개그 콘서트를 보며 같이 낄낄 거리다 집으로 왔다.
그렇게 엄마가 없는, 토토 바카라와의 단둘이 주말은 참 길었다.
밥을 준비하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공연을 보러 이동하는 시간,백화점으로 같이 걸어가는 시간,그 모든 시간이 온전히 둘만의 시간이었다.엄마와 함께였던 그 시간을, 토토 바카라와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는 그런 시간 말이다.
알고보면 토토 바카라도 참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문방구를 운영하는 토토 바카라는 시시콜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다. 문방구 앞에 새벽마다 나타나 배변을 하고 가는 유기견(혹은 유기묘- 아직 정체 불명이다) 이야기, 예의 없는 손님 이야기, 군대 이야기, 운동 이야기. 요즘 한참 빠져있는 SNS 이야기... 수다를 떨다보면 식탁앞에 두어시간 앉아 있는 것은 예사였다.
알고보면 토토 바카라도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예전에는 액션 영화를 즐겨하시더니, 이제는슬픈 영화를 보면 두 눈이 빨개져서 극장 밖을 나왔다. "국제 시장"을 볼때도 "장수상회"를 볼 때도 토토 바카라와 나는 동시에 훌쩍이고 동시에 손수건을 들었다.
알고보면 토토 바카라도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토토 바카라는 그동안 메뉴 주도권을딸내미와 엄마에게 늘 양보하셨다.드시고 싶은 것도 여자들 위주, 보고 싶은 것도 여자들 위주였다. 하지만 엄마가 안계신 지금만큼은 토토 바카라가 좋아하는 곱창전골이며 순대국을 거침없이 선택했다.음악이라고는 도통 안들으실 줄로만 알았던 토토 바카라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을 좋아했고, "장고"같은 서부 영화의 삽입곡도 좋아라 하셨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엄마는 나에게"한 여자" 였지만, 토토 바카라는 늘 나에게 "토토 바카라"였다.
가족에 대한책임감과 딸들에 대한 엄함을 양 어깨에 메고 있는"토토 바카라".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희생한당신의 시간과 취향. 그 속에 감춰져있한 사람으로서의 토토 바카라 왜 그동안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지금부터라도토토 바카라 부탁해.
2015.5.3 ( 토토 바카라와 함께한 일요일)
10년전 독립해 혼자 살고 있던 나는,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아빠와의 몇달이 제법 부담스러웠던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동안 토토 바카라 알게되어 기쁘기도 했나보다.
지금은 더이상 문방구를 운영하지도 않으시고, 마라톤도 건강에 무리가 되어 더이상 안하신다.
소소히 당구를 치시거나, 겸이의 ( 6살 아들래미) 하원후 놀이터 시간을 챙기는데 더 바쁘신 우리 토토 바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