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낮에는 강아지, 밤에는 강파라오 슬롯 돌보미


가끔씩 거친바람에 힘들기는 해도 본격적인 강추위가 찾아들지않은마당은썬룸에서 휴식하듯조용하다.

누렇게 말라버린 꽃의 잔재들과가지를 품고안으로 여물게다져가는 나무들은잠복소를 남기긴 했지만모진 겨울,준비라도 하듯 흙속으로 무게를 내리고있다.


식구들이 나간 후면종일 햇빛 비치는 거실에서 밖을 내다보며 졸다가도, 지나가는 바람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짖어대는 본성을 가진 파라오 슬롯들을 모른 채 하긴 어렵다. 따뜻한 오후에 샐리와 보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다. 치와와 승리는 오른쪽 뒷다리가 좋지 않아 안고다녔지만 요즘은두고 나올 때가 많다.

동네를 두어 바퀴 돌기도 하고 뒷산을 내려와 강가 데크길걷기도한다. 동네 산책을 할 때면 머리가 제일 좋다는 푸들답게,샐리는 온 동네 마실을다녀야속이 풀리는 듯 한 번이라도 들른 집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디.이웃 마당 안으로 들어가려는 녀석을옮긴다. 차라리 데크길 산책이 낫다싶다. 그 사실을 하는지 언젠가부터 샐리는 동네산책을 더 고집하는 편이다.


소심한보리는 어디로 산책해도 자기 의견이 없다.

그저 나오면 냄새 맡고 바깥기운을 느끼면서숲에서마킹하고 주어진 현재를 즐기는 편이다.강이지 MBTI를 해보면 보리는 백퍼 내향형일 것이다. 그래도 제 실속은 다 차리는 편이니 때론 너무 내대는 샐리보다 쉽게 얻는 것도 많다.천성이 다른 두 아이 들을 각자의 취향에 맞춰 짧은 산책시간이라도 즐기게 하는것은적잖은 신경을 요한다.


즐겁게 산책한 후 마당에 풀어놓으면구석구석다니며관찰을 한다. 요즘은 삼색이가 거주하고 있으니 조심하는 편인데 파라오 슬롯들이 집안에서 나올 때는짖고요란을 떨기에 보통 삼색이는 동네로 마실 가고 자리를 비운 후다. 실내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 파라오 슬롯들은 반려견을 넘어반려가족이다. 그러니 일일이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열 살을 훌쩍 넘은노견들이다 보니사소한 불편거리도 해가 될 수있어안전에 신경 쓰는것은 필수다.


집안엔 노견들이 있지만, 마당에는 아직 어린 생명들이 여기저기 뒤집고 다닌다.작년 겨울, 아기로 입성했던삼색이와 가끔 오는 깜파라오 슬롯다. 깜파라오 슬롯와 콧선생,파라오 슬롯 삼 남매가 제 어미와 함께 마당 한편 미니온실에서 겨울을 났다.봄에깜파라오 슬롯가애교를 부리면서 집파라오 슬롯 역할을했는데수컷인 깜파라오 슬롯와 콧털이는자유본성이강한지집을 나갔고 초여름부터는 파라오 슬롯가 상주를했는데어느 날 새끼들을 네 마리나 데리고 왔다. 그중아기노랑이와 가을까지 잘지냈다가어느 날부터 노랑이는어디로 갔는지안 보이고 파라오 슬롯만 있었다. 집을 몇 달비워노랑이와파라오 슬롯에게미안한 마음이었는데,노랑이는오지 않고파라오 슬롯만들락거리면서도 집을 지키고 있었다.


고마움과 반가움에 몇 주 동안 특식을 먹였더니 얼굴이 반질거리고 털도 복슬거리면서 살찐 집파라오 슬롯가 되어버렸다. 마르고 초췌한 몰골의 삼색이는 사라지고 당당하고 뻔뻔한 삼색이로 돌아왔다. 요새는 집파라오 슬롯가 다되어 밥을 줄 때면 바짓가랑이를돌며늘어지고 골골송을 부르면서'그동안 어디 갔다왔냐'라고투정이라도 하듯 친근하게 군다.파라오 슬롯가아기 때는 제일 까칠했는데, 새끼들을 데리고 들어오면서부터는 양순해졌다. 아마도 지 새끼들도 잘 부탁한다는 마음에서였으리라. 요새는 마당에 나갈 때마다 쫓아다니며 애교를 더 부리니 예뻐하지 않을 수없다


새로 만들어준 온실 안에 밥그릇과 물그릇을 넣어주면 알아서 집안으로 들어가 맛있게 식사를 한다. 식구들은 파라오 슬롯 이름이 촌스럽다고 진이라는 예명까지 지어줬다. 고양이가 자기 이름 두 가지를 기억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가족도알아보는 것을 보면 나쁘지도 않은 듯하다. 아침에 나가보면깜파라오 슬롯도 와서 자는것 같다. 현관 앞 보관함 위에서 깜파라오 슬롯가 날래게 내려와 인사한다. 상주할 때 하던 습성이다. 오늘도 안전하게 잘 놀길 바라며 깜파라오 슬롯와 삼색이 밥을 챙긴다.


저녁에는마당 데크를 산책하는데 파라오 슬롯는 집안에있다가도후다닥 나와서는 함께 걷는다.이제는 강파라오 슬롯가 돼 버린파라오 슬롯는운동 중에도쫓아다닌다.뛰기도하고 마당 한가운데서 벌러덩 드러눕다가,앉아 걷는 것을 보기도 한다.'올라오'신호를 보내면 와서는 다시 후다닥 뛰어가선 어디론가 숨었다가 깜짝 나타나기도 한다. 제 딴에는 함께 걷기라도 한다는 듯, 놀아달라기라도 하는 것 같다.


파라오 슬롯처럼 옆에서 걷지 않는 것도 고양이의 특성이다. 제 가고 싶은 데로 갔다 왔다,뛰다 쉬다, 내키는대로 하는 것이 고양이다. 하지만 행동이 다르다고 교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파라오 슬롯나 고양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자신의 성정대로함께 하고 싶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더구나 몇 달의 이별을 겪은파라오 슬롯로서'기다리면 반드시 온다'는 몸으로깨달았기에 더 절절하지 않았을까...


들락거리며 만났다 이별했던 길파라오 슬롯들을 나름 돌보면서 어느 정도 그들의 삶(아니 결국모든 생명들삶일지도 모를...)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게 된다. 귀엽고 사랑스럽던 파라오 슬롯들이 보이지 않으면 혹 무슨 일이나 당한 건 아닌지 염려도 했고 어느 날 다시 불쑥 나타나면 반갑기도 했다. 특히 집을 오래 비울 때면 어디서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고 다닐지 걱정도 많이 했다. 브런치글벗님중 한 분은 파라오 슬롯들은 잘 있을 것이라고 걱정 말라는 위로도 주셨다.

이웃들이 가끔 집에 들를 때면 파라오 슬롯가 도망가는 모습도 봤다고도 했다. 나름 제 집이고 가족을 기다린다는 인상도 준 것이다.

오는 것도머무는것도,떠나는것도 계절의 변천처럼 자유롭다는 것을 길파라오 슬롯들을 돌보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 생각하면 모질게 아쉬울 것도 서운 할 것도 없는 것이 삶이기도 한데... 알고있었어도실천하기 힘들었던 사소한 감정의 고리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고 비우고 가는 것도 자연 속에서 함께하는 생명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목들이 죽은 듯 겨울잠으로 견디는 혹한에서는 움직이는 생명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마당에서 사는 삶이다. 다가올봄이면다양한초목들이한 몸처럼어울리며아름답고 조화로운 정경을 이뤄갈것이고,그 안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는움직이는생명들은아름다운 마당을 더 풍요롭게 빛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파라오 슬롯와 더불어 산책하고밤이면 강파라오 슬롯 돌보미가 돼 버린 요즘, 그동안충분히즐기지 못했던 여유로움을찾아가고있다.

개의 심정이 돼 보기도 하고 성정자체가 다르다는 고양이의 마음도 헤아려본다.짧게라도개와고양이와 함께하는생활이싫지않다. 대지 안의 모든 생명들은결국은함께 가야할,겸손해야 할 주역들이고이미역시마당의 당당한일원이기에...

그리고 어쩌면아직도 뜨거운아웃사이더의 피가때때로흐르고 있기때문일지도 모른다는생각이드는햇살 가득한휴일오후다.


파라오 슬롯


파라오 슬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