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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60살에도 필요하다.

피고인은 미혼모로 슬롯 꽁 머니를 낳고 자신의 성을 따라 슬롯 꽁 머니 이름을 지었다.


슬롯 꽁 머니의 출산을 반대했던 친정 식구들과 연을 끊고 홀로 슬롯 꽁 머니를 키웠다.


이 피고인의 재판은 매번 수요일이었는데, 초등학생인 슬롯 꽁 머니는 학교에서 수요일에는 일찍 마친다고꼭 엄마와 함께 재판에 왔다.


피고인의 죄명은 음주운전이었는데, 징역형이 예상되는 상황에 선고기일이 다가왔다.


선고기일 전 딸이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는

판사님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알아요.
그렇지만 우린 서로에게 유일한 보호자예요. 도와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슬롯 꽁 머니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학교에 잘 다니겠다고 했지만 슬롯 꽁 머니를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피고인은 슬롯 꽁 머니를 맡길 곳이 없다고 했다. 나는 관할구청 아동청소년과에 연락해서 사정을 설명드렸다.


담당 공무원은 슬롯 꽁 머니가 보육원처럼 장기적인 보호시설로 들어가면 친부모라도 데리고 나오는 절차가 복잡하다면서 학대 아동들을 단기로 보호하는 시설을 알아보았다. 이 슬롯 꽁 머니는 학대받은 아동이 아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관할 구에는 이미 아동학대 보호시설 자리가 다 찼다. 그전에는 이렇게 학대받아서 부모와 분리된 아동들이 많은지 생각하지 못했다.


공무원은 다른 관할 아동학대 피해자 보호시설에 겨우 자리를 만들어서 슬롯 꽁 머니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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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선고기일.


피고인의 딸은 엄마의 만류에도 오후 2시 선고 시간에 맞추어 엄마를 따라왔다.

둘은 법정 안 방청석에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며 쓰다듬고 손을 잡기도 하면서 속삭였다.


사건번호와 피고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피고인은 자리에 가방을 두고 피고인석으로 나갔다. 아마 자신이 구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경험상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피고인처럼 있으면 구속이 자명했다.


나는 피고인의 가방을 안고 피고인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보통 선고기일에는 변호사가 나오지 않지만 , 나는 엄마가 구속된 이후 홀로 남을 슬롯 꽁 머니를 위해 법정에 나갔다.


징역형이 선고되자 피고인이 살짝 비틀거렸다. 그리고 이어서 슬롯 꽁 머니가 조용히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피고인의 휴대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피고인이 구치소에 영치시켰다가 출소하는 날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방을 피고인에게 넘겨주었다.


피고인은 담담하게 교도관을 따라서 유치감으로 들어가는 문을 향하다가뒤돌아서서 미소 띤 얼굴로 딸을 쳐다보며살짝손을 흔들었다.


피고인이 들어가자 나는 방청석에 있는 슬롯 꽁 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당시 법정에는 선고를 받으러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슬롯 꽁 머니는 크게 소리 내어 울지 않고 눈물을 쉼 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제 세상에서 혼자가 된 것이다. 집에 가도 어딜 가도 이 슬롯 꽁 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슬롯 꽁 머니가 매고 온 예쁘고 작은 백팩을 들고 나직하게 "가자.."라고 말했다.


슬롯 꽁 머니는 한참을 차분히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다가 일어서면서 숨이 넘어가듯서럽게흐느꼈다.


슬롯 꽁 머니가 울면서 천천히 걸어 법정을 나가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지켜보았다.


선고할 사건이 많았음에도 재판장님은 슬롯 꽁 머니가 법정을 나갈 때까지 다음 사건을 호명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지켜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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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꽁 머니는슬롯 꽁 머니일 뿐이다.슬롯 꽁 머니는죄가 없다. 가여웠다.마는, 마흔에도 필요하다. 엄마가 없으면 60살도 슬프다.


나는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무원에게 전화를 했다. 슬롯 꽁 머니를 데리고 내려가서 대기하고 있던 공무원 두 분을 만났다. 공무원은 슬롯 꽁 머니를 보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차에 태워서 법원을 나갔다.


이후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슬롯 꽁 머니를 보호시설로 잘 입소시켰으며, 슬롯 꽁 머니의 복리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겠노라고 문자가 왔다.


슬롯 꽁 머니는 다른 관할로 가게 되어 전학을 시켰고, 주변에서 슬롯 꽁 머니의 엄마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피고인의 딸을 보내고 몇 시간 뒤 나는 피고인을 구속한 재판부에 또 다른 사건이 있어서 증인신문을 하러 들어갔다.


그 사건 증인신문이 그 재판부의 마지막 재판이라서 재판을 마치자 경위가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라고 했다.재판장님이 법정을 나가는 것이다.


나도 이제 사무실로 가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나가신 줄 알았던 재판장님이 우물쭈물 서 계셨다.


법정을 나가려던 찰나 재판장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변호사님, 슬롯 꽁 머니는
보호해 주실 분에게 잘 갔나요..

재판장님은 다른 피고인들과 형평을 지키기 위해 피고인을 구속시키셨지만 우는 슬롯 꽁 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던 것 같았다.




슬롯 꽁 머니가 시설로 들어간 이후 통화를 했다.


엄마는 다음 봄이 가기 전에는
너랑 함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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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시간이 가고 해가 가는 것이 점점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올해만큼은 시간이 빨리 지나서 얼른 다시 봄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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