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불고, 비도 아주 이슬처럼 조금 오던 4월 21일. 혹시나 우천 취소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던 날, 더블 헤더가 이뤄졌다.
첫 번째 파라오 슬롯 시간, 3시간 8분.
두 번째 파라오 슬롯 시간, 2시간 50분.
첫, 두 번째 파라오 슬롯 사이 대기 시간, 41분.
이를 합치면 무려 5파라오 슬롯 58분이다.
파라오 슬롯는 무려 18이닝이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연속 두 번 파라오 슬롯라 연장전은 따로 없었으니 망정이지…….
첫 번째 파라오 슬롯는 9대 9의 무승부가 되었다.
9대 3에서 9대 9가 되면서 롯데의 기세는 돌아온 상황이다.
두 번째 파라오 슬롯가 시작되었다.
1회 말
1번 타자, 윤동희의 우중간의 2루타로 시작했다.
2번 타자, 황성빈이 타격했다. 유격수 키를 넘겼다. 중견수 앞 안타다. 윤동희는 홈으로 들어오며, 파라오 슬롯 1대 0. 시작부터 매우 좋다.
3번 타자, 빅터 레이예스. 빛이 나는 그가 타격했고, 타구는 빛처럼 저 멀리 우주 끝까지 날아갔다. 우주 저 멀리 넘긴 거라면 담장도 당연히 넘겼겠지?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 탄생이다. 파라오 슬롯 3대 0
3회 말까지 별일 없었다. 2회 초, 1, 2루의 1아웃 상황이다. 위기에도, 홈런 타구 같은 장타를 전준우가 점프해서 막아내기도 했다. 3회 초, 1, 2루를 내준 상태에서도 땅볼 처리, 삼진 처리, 견제사 등으로 완벽히 막아낸다.
그러다 4회 초가 찾아온다.로하스가 때렸다. 그 또한 빅터 레이예스처럼 우측 담장을 거뜬히 넘기는 파라오 슬롯 만든다. 스코어 3대 1이다.등에 식은땀이 확 나더라. 만약 전 파라오 슬롯에서 1루 주자를 견제사로 아웃시키지 못했다면? 로하스가 그 파라오 슬롯에서 홈런을 때렸다면? 스코어는 3대 3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상상만 해도 무섭더라.
무서운 게 떠오를 땐 귀여운 걸 보라
5회 초
김상수도 파라오 슬롯 때린다.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 파울인가 했는데 홈런이더라. 스코어 3대 2.
5회 말
1번 타자 윤동희의 타격. 유격수가 공을 잡았으나 이미 세이프! 내야 안타다.
2번 타자 황성빈. 그는 오늘의 첫 번째 파라오 슬롯에서 시즌 1호, 2호 홈런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시즌 3호 홈런을 만들었다. 도루 전문가가 홈런까지 막 만들어 낸다고? 대단한데?
마침 황성빈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겼다. 해설자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더라.
“황성빈 선수, 오늘 야구장 출근 전에 뭘 먹고 왔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해설자님.
파라오 슬롯는 5대 2.
달도 참 좋더라
6회 초
강백호의 유격수를 빠져나가는 1루타.
황재균의 좌익수 앞 안타.
KT 위즈는 1점 득점한다.
파라오 슬롯 5대 3.
8회 말
레이예스의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의 1루타.
전준우의 중견수, 유격수, 2루수 한복판 그 어딘가에 떨어지는 안타.
연속 안타 덕분에 노아웃 2, 3루다.
5번 타자 정훈이다.
오 정훈
자이언츠 정훈
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날려버려!
야 하는데 왜 땅볼이야? 하…….
1아웃 예약이다.
그런데, 이게 매우 느리네?
그 사이 레이예스가 3루에서 홈으로 들어온다.
정훈은 당연히 1루에서 아웃이다!
공을 잡은 투수가 1루수에게 바로 던졌다.
그런데 이걸 못 잡네? 당연히 잡을 거라 여겼던 걸 놓치니, 롯데 입장에선 참 좋다.
정훈은 1루에서 살았고, 전준우도 3루에 무사히 도착한다.
파라오 슬롯 6대 3.
이후, 손호영의 3루수와 유격수 사이 안타마저 성공한다.
전준우가 홈으로 들어오며 파라오 슬롯 7대 3.
이기면 풍경도 예쁘다
9회 초
4점 차이로 세이브가 아닌데도 결국 그가 마운드로 나온다.
롯데의 어머니, 롯데의 마에스트로, 롯데의 머리 긴 남자, 롯데의 언제 머리 자를까 궁금한 남자 1위.
바로 김원중이다.
박병호에게 좌측 1루타를 허용했지만,
황재균은 우측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한다. 1아웃.
조용호를 볼넷으로 출루시키며 1아웃 1, 2루다.
9번 타자, 김상수가 타격한다. 공을 2루수가 잡았고, 1루로 던지면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공이 날아가긴 날아갔는데, 1루수 위로 저 멀리 날아간다. 정훈이 간신히 잡았다. 그것도 점프해서! 그러고 베이스를 밟았으나, 그 사이에 김상수는 홈으로 들어오고, 세이프다.
1번 타자, 천성훈. 좌익수 쪽 희생플라이로 3루 주자가 들어오며 파라오 슬롯 7대 4다.
이때 나온 1루 응원석에서 나온 농담이 있다.
4점 차에서 3점 차라고?
설마 세이브를 얻기 위한 김원중의 큰 그림?
농담이다. 농담. 설마 그러겠나?
2번 타자, 김민혁. 타격한다. 먹힌 타구라 멀리 가지 못했다. 나름 잡을 수 있었다고 판단했으나, 이를 2루수 최항이 잡으려다 실패한다. 거기다 뒤로 넘어지기까지. 그 사이 바로 2루 주자가 3루를 거쳐 홈으로 들어온다.
파라오 슬롯는 7:5에 2아웃 1, 3루 상황
3번 타자, 강백호다.
솔직히 무섭더라.
여기서 홈런이면, 역전인데?
그 생각을 들킨 건가?
진짜 때리더라?
그런데 각도가 정말 무시무시한데?
정말로 홈런?
파라오 슬롯 8대 7이면 9회 말까지 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지날 때, 거의 담장에 붙어서 수비하던 좌익수 전준우의 글러브로 공이 도달한다.
에이 괜히 이상한 상상 했구만.
그렇게 파라오 슬롯는 끝난다.
이기면 풍경도 예쁘다
색다른 경험이다. 솔직히 힘들긴 하더라. 집에서 12시 반쯤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9시 반이었고. 무려 9파라오 슬롯이다. 계속 소리 질렀고 흔들었다. 비도 조금씩 맞아서 체력적으로도 지치기도 했고. 그런데 진짜 놀랍게도 다음날까지 하나도 안 힘들더라.
확실히 깨달았다. 맥이 빠지게 지는 파라오 슬롯를 목격했더라면, 슬픔과 피로로 하루 이상 갔을 거다. 멋진 무승부와 깔끔한 승부를 목격했기에 지칠 틈이 없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