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하기로 약속을 한 첫 주말이다. 합정에 있는 교보문고가 가까우니 그곳으로 가기로 한다. 오랜만의 가족 나들이(?)이니 점심도 간단하게 사 먹고 천천히 서점을 둘러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슬롯 꽁 머니는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점심메뉴는 참으로 신중하게 검색을 하고 고른다. 과연 책도 점심메뉴 선정에 기울이는 정성만큼 공을 들여 고르려나 궁금하다.
경제 관련 책 중 아무거나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읽으라 했으니, 나에게 먼저 묻지 않는 한 참견은 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가 슬롯 꽁 머니 뒤적이고 있는 동안 미리 봐두었던 슬롯 꽁 머니 들고 읽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 보라는 듯이 집중해서 보는 척(?)을 하고 있다.
아빠가 무슨 슬롯 꽁 머니 보는가 궁금했나 보다. 몇 장 넘겨보더니 슬쩍 내려놓고 다른 슬롯 꽁 머니 고른다. 케이스 스터디와 사진이 많은 책이다. <MIX라는 제목이었는데, 브랜드와 포지셔닝. 잘 섞으면 끝내주는 뭐가 될 수 있다는 케이스를 모아 놓은 책이다. 슬롯 꽁 머니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실제로 마케팅을 하는 분들에게는 인사이트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지금 시점에서 아이에게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고른 책은 사진도 없고,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 부담이 되었나 보다. 책 제목부터가 뜨악하다. <자본주의
<믹스 그 책은 아직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책의 내용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시작을 하려고 슬롯 꽁 머니 골랐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이러다 '사리' 나오는 거 아닐까. 슬쩍 보니 홍여사도 인내하고 있는 표정이다.
슬롯 꽁 머니 고르고 나서 책방 옆, 애니메이션 숍도 들려본다. 바구니를 들고 마치 뭔가 살 것처럼 돌아다니더니, 구경만 하고 나온다. 살 것도 아니면서 바구니는 왜 들고 다녀? 이 상점의 ‘룰’이란다. 조그마한 캐릭터 스티커가 책 값보다 비싸다. 한 개 고르고 나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면 어쩌나 했더니, 구경만으로 만족했나 보다. 이 캐릭터 저 캐릭터 설명을 해주며 신이 났다. 아니면 내가 ‘눈치’가 없거나.(홍여사도 역시 모르는 척하고 있다. 역시 환상의 콤비)
슬롯 꽁 머니는 학교공부로부터 해방된 것에 몹시 만족하는 눈치이다.(한 번도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슬롯 꽁 머니 뜻대로 해 주기로 했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필요한 공부는 계속하기로 했지만, 이게 언제까지 유효할는지. 게으른 부모가 슬롯 꽁 머니말만 듣고 너무 쉽게 학교공부 포기를 응낙한 건지. 착잡하기만 한데, 슬롯 꽁 머니는 인생이 즐거워진다는 표정이다. 공부가 그렇게 싫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