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는다는 것
어느 날 점심.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식사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한 손 가득 도시락을 들고 서였다. 식사량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 내 몫까지 싸 온 모양이었다. 전날 통 음식을 들지 않던 걸 심각하게 받아들인 걸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내민 건 손바닥만 한 도시락 용기였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점심같이 먹어요, 제가 넉넉히 싸 왔거든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그렇게 말하면서 지선 씨는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늘상 먹던 반찬, 비슷한음식들이었다. 지선 씨는 식욕이 없다고 매번 자신을 변호해왔지만, 나는 늘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어떻게 저토록 일관된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나는 빈번히 넌더리를 치면서도, 그녀의 자제력에 내심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의 전체적인 태를 보곤 그 사람의 깊이나 너비를 가늠해보듯,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의 행동에서도 어떠한 세계랄지, 생활이랄 지를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다. 하나, 그건 선망하고 또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여타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 세계는 내가 도저히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아닌 것 같았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이거 드세요, 따로 준비했는데 괜찮으실지는 모르겠어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지선 씨는 국이라도 좀 뜨다 보면 속이 나아질 거라고 계속해서 그릇을 내 쪽으로 옮겨왔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간이 조금 심심할 수도 있어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나는 마지 못해 국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몸에 적당한 온기가 돌았다. 마디마디가 늘어지며 기운을 잃는 것처럼 긴장이 풀렸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제가 어제 책을 봤거든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나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나를 위해 뭔가 애쓰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그런 사람이었다.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있어서,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불순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소설이었는데,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고양이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나는 궁금증이 서린 얼굴로 반응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사뭇 진지한 눈매를 갖춰 말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거기서 그러는데,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서 과거와 미래를 모른대요. 오직 현재만 있다는 거예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놀랍지 않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나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게 무언가, 싶어 고개만 까딱였다. 그러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고민했다. '현재'만 존재한다는 말이 근사해 보이기도, 또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겨우 알 수 있는 한에서 얼마간 상상과 오해를 반복했다. 별안간, 뭐가 됐든 나는 결국 내 임계치 내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매번 그런 식으로 불가능에 좌초되온 것이 내 이해일지도 몰랐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그게 뭘까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더 이상 알기를 포기한 사람의 심정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자,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수저를 내려놓곤 식탁 어딘가를 공들여 바라봤다. 먹기를 멈춘 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저도 잘 모르겠어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여전히 탁자에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미처 입을 타고 나오지 못한 말이 잠겨 있는 듯한 눈매였다. 나는 미역국을 떠 다시 삼켰다. 별도의 간을 하지 않은 터라 입에 무리가 없었다. 속이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를 마치곤 소화도 시킬 겸 잠시 뒤 공터를 걸었다. 그러다 흑염소가 나무 한 그루에 묶여 있는 걸 보곤 덜컥 놀라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전에 부장님이 보양식을 챙겨 먹어야겠다며 한동안 바쁘게 전화를 걸어대는 것 같았는데, 기어코 흑염소를 한 마리를 들여다 놓은 모양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당장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육식을 하는 입장에선 무어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여름 풀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서 숨 가쁘게 번져가고 있던 여름의 일이었다. 그러자 문득 지선 씨가 달리 보였다.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으로 제 식욕을 죽이며 살아온 데에 대한 새삼스러움이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끔, 짐승의 눈을 보면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함께 있던 지선 씨가 푸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참 서글퍼 보이지 않아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그 말을 듣곤, 나는 한동안 염소를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끔 사람 눈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짐승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진심을 따져볼 요량으로 눈을 마주 보잖아요, 전 그게 얼마간 진실이라고 봐요. 눈은 진정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하나.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되짚는 말에 몇 가지 단어가 가시처럼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눈이나 속내, 태도 같은 단어들이었다. 염소는 여전히 우리 쪽에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무구한 눈으로 진귀한 광경을 훔쳐보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선이 닿는 그 끝에, 우리가 서 있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그런데, 지선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먹기 시작한 거예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던, 줄곧 참아왔던 질문이었다. 지선 씨의 말을 듣자니, 이상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은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물어놓고도 조금 무례한 것 같아 금세 머쓱해졌다. 누군가와 달리 놀랍도록 식욕을 줄이며 살아온 것에 대한 새삼스러움이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뭐가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채식하시잖아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가 허리를 수그려 손바닥을 염소의 코 앞쪽으로 내밀었다.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뜻으로 건넨 손인듯했다. 염소는 코를 킁킁대다, 이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마른 바람이 흩어지며 나부끼고, 온갖 풀벌레 울음소리가 여름의 한 자락을 거듭 합창했다. 시끄러우면서 동시에 날 선 활력이 감도는 소리였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아, 예. 채식이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따가운 볕이 피부를 찔렀다. 도저히 사그라들 줄 모르는 더위와 소음 덕에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름의 한 가닥을 연주하듯 풀벌레가 끊임없이 반복해 울어댔고, 불볕에 몸에선 땀이 눈물처럼 기운 없이 흘러내려서였다. 여름은 여타 계절들과 달리 시달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한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되는. 그러기에 무얼 더 먹어야만 하는 계절일지도 몰랐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저는 뭐든지 먹을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먹지 않아요.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대답을 듣곤 어찌나 벙 쪄 있었던지. 겉으론 별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 말은 당시 내겐 조금 진지한 말이었다. 동시에, 그건 내가 지금 포기해버린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 말이기도 했다. 어떤 여지를 죗값처럼 치르려는 사람이. 나와 달리 한 세계와의 충돌을 기꺼이 몸으로 받아내려는 사람이 내 앞에 심문하듯 놓여 있었다. 정작,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는 말을 한껏 진지하게 내어놓곤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나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게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제 삶을 이미 형벌처럼 여기는 이에게, 내 결백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내 기분과 상관없이 여름 오후의 볕은 부추기듯 더욱 맹렬하고 무덥게 내렸다.몹시 원망스런 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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