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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슬롯한 착시

-자작시

파라오 슬롯한 착시


한상림


그해 겨울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밤길에
시력을 잃고 말았다

첫눈 내리는 병실 창가에 서서
어쩌면 이승의 마지막 풍경일 거라며
바라본 뿌연 눈송이가
김 서린 눈동자에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네 이름 부르며 뛰쳐나가다가
기다려도 돌아올 리 없는 너를
그냥 막연히 기다려 보던 그날처럼
눈 내리는 밤이면
습관처럼 창밖을 서성인다

무심한 눈발은 여전히 날리고
나는 아직 사랑과 용서, 구원과 희망을
미처 너에게 말해주지도 못했는데
밤새 눈동자를 덮으며 펄펄 다가오는
흐릿한 네 얼굴이 파라오 슬롯하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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