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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림 못 그려" 6살 토토 바카라의 반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승의 날 카드가 문제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줄 카드 3장을 완성해야 했다. 저녁 먹고 스케치북 사이에 두고 토토 바카라와 거실 바닥에 앉았다.


“자, 이건 별이(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교사를 별명으로 부른다)한테 줄 카드야. 어떻게 꾸며볼까?”


토토 바카라는 종이에 스티커를 잔뜩 붙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어몽어스 스티커로 앞뒷면을 다 채울 기세다.


“자, 우리 스티커만 붙이지 말고 그림도 그려보자. 별이 카드에 어떤 그림 그리고 싶어?”


사인펜 든 토토 바카라의 손이 종이 위에서 잠깐 움직이다 멈춘다. 어두워지는 얼굴. 기어가는 목소리.


날날이 : “나 그림 못 그리는데…”

나 : “아니야! 못 그리는 게 어딨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돼!”


텐션을 끌어올려 밝은 목소리로 토토 바카라를 격려했다. 슥, 슥, 스으으. 다시 펜을 든 토토 바카라는 선을 그었다 이내 힘이 없어진다.


“나 그림 못 그려. 엄마가 그려.”




최악이다, 최악


토토 바카라세모 그리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pexels


벌써 밤 9시 반. 한숨이 푹 나온다. 토토 바카라는 별이에게 주는 편지니까 별 모양을 그리고 싶다 했다. “이렇게 세모, 반대편에 이렇게 세모를 그리면 별 모양이 되는 거야.” 알려줘 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점에서 점까지 직선이 아니라 물결이 친다.


아니. 여기 점, 여기 점, 여기 점. 세 개만 슥슥슥 연결만 하면 되는데 세모 그리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별 그리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냐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킨다.


이제 6살. 다른 애들은 엄마 아빠 모습도 그림으로 그리던데 날날이는 형체 있는 그림은커녕 펜도 아직 제대로 못 잡는다. 다른 애들은 젓가락질도 잘하고 빠른 애들은 한글도 쓰던데.


아니다.토토 바카라마다 발달 단계가 다르고 날날이에게는 날날이만의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부모가 자신의 욕망을 토토 바카라에게 투영하는 건 어른답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벌써 6세 중반인데 아직 세모도 못 그리고. 펜도 제대로 못 잡고.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래. 못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저 태도는 뭐지?


토토 바카라를 키우면서 속이 터질 때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나랑 너무 닮아서. 나랑 너무 달라서.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겪어본 인간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니 나를 기준으로 토토 바카라를 판단하게 된다.


잘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감과 의욕이 땅굴을 파고드는 모습. 토토 바카라는 나를 닮았다. 넉살 좋게 뻔뻔하게 해 보면 좋으련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토토 바카라는 토토 바카라대로 졸려서 정신을 못 차린다. 그만하고 싶다고, 엄마가 하라고 짜증을 낸다.

“날날아! 너 왜 해보지도 않고 못 하겠다고 해!
너 그렇게 포기하다가는 평생 이렇게밖에 그림 못 그려.
누가 보면 이 그림은 시냇물방(5세반) 동생들이 그렸다고 할 걸!”

입이 삐죽삐죽. 결국 토토 바카라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 나이 토토 바카라들에게 한 살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여섯 살 자부심이 얼마나 큰데 다섯 살이랑 비교하다니. 아 정말 최악이다.내가 정말 최악이다. 남편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부인. 나한테 하는 것처럼 애한테 하지 마.”


우는 토토 바카라를 재우러 간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는 쓰레기야.”



그림을 못 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토토 바카라가 그림을 잘 못 그리는 건 괜찮았다. 나도 남편도 미술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문제는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발을 빼는 모습이었다. 부족해도 조금씩 노력해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아예 못하겠다고 하는 모습. 저런 태도가 나중에 학습을 할 때도,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 같았다. 토토 바카라가 등 센서 때문에 누워서 잠들지 못할 때처럼,일어나지도 않은 부정적 상황을 상상하며 대하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남편은 말했다. 날날이는 아직 6살이라고. 계속 자라고 있다고. 차근차근 계단식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갑자기 확 성장할 수도 있다고. 무엇보다 지금 날날이는 연필 쥐는 것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겠냐고.


남편의 말에 수긍이 가면서도, 그렇게 토토 바카라를 잘 이해하고 있으면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는지 화가 났다. 본인은 마치 이 상황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자기가 평론가야 뭐야.역시나 모범생 병을 벗어나지 못한 남편은 그림 쉽게 그리기 책을 바로 주문했다.


얼마 후, 담임교사와의 면담에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사는 말했다.지금은 토토 바카라에게 평생 믿음을 심어주는 시기라고.날날이는 칭찬을 해줄수록 더 잘하는 토토 바카라이니 혼을 내기보다는 작은 것도 계속 칭찬하고 응원해 주라고. 이왕이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했는지 장점을 이야기해주면 더 좋다고.


경쟁심이강하기는한데대놓고경쟁심을불태우는아니라뒤에서조용히계속연습해서, 잘하지?’보여주기를좋아하는성격. 게다가강한인정욕구까지. 토토 바카라는나를닮았다. 내가제일싫어하는바로잔소리다.



날날이의 미술관

토토 바카라토토 바카라는 스스로를 미술가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진은 자료 사진 @pexels


몇 달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토토 바카라가 갑자기 그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레고 만들기만 좋아하던 토토 바카라가 집에만 오면 스케치북을 꺼내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여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기는 한데 토토 바카라만의 상상력과 개성이 가득했다. 특히 색감을 쓰는 방식이 독특했다. 어떻게 이렇게 색 조합을 쓸 수 있을까.토토 바카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날날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좀 신기해. 얘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 걸까?”


토토 바카라는현관앞에자신의그림을붙여놓고날날이의미술관에오신것을환영합니다라고써달라했다. 집구석구석그림을전시했고, 친구들에게그림을선물했다. 토토 바카라는스스로를미술가불렀다.담임교사는이전에는그림그리는것도힘들어하던토토 바카라가이제는장씩거침없이그림을그리고, 만들기때도한번해보지라는태도로자신감있게토토 바카라디어를낸다고말했다. 날날이가정말많이변했다고. 감동이라고.


사이무슨일이있었을까. 그림에 대한 잔소리 대신계속칭찬을해줬다. 가끔은(많이) AI같은순간도있었지만그림은어떤점이특별하고, 이전그림과는어떻게달라졌는지구체적인피드백을곁들였다. 어린이집에서도교사가함께애썼다.


칭찬을 너무 많이 했더니 부작용도 나타났다. 토토 바카라 앞에서 다른 그림을 칭찬하면 안 된다. 토토 바카라와 샤갈 특별전을 보러 가기로 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샤갈의 그림이 토토 바카라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미리 작품을 보면서 '이 사람 진짜 그림 잘 그리지?' 했더니 토토 바카라가 하는 말.


“치. 샤갈이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토토 바카라가 자기만 특별하다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다. 칭찬이 과했나 걱정하고 있는데 초등학생 토토 바카라를 키우는 같은 어린이집 엄마가 말했다. 학교 가면 어차피 다 자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금방 알게 된다고. 그러니 지금은 자신감에 취해도 괜찮다고.내가 또 너무 앞서갔구나.


오늘도토토 바카라는나는결코그리지못할그림을그려낸다. 그림을통해자신을표현하는법을배우고있다. 나는번도겪어보지못한경험이다. 토토 바카라가어떻게자랄까. 불안보다는기대가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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