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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슬롯 꽁 머니 만난 나의 첫사랑

그 시절 낭만이 가득한 소녀에서 아이둘 엄마로,


중학교 1학년쯤 친구따라 얼떨결에 간 그곳은 나무냄새와 향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슬롯 꽁 머니이었다. 할머니는 절에 다니셨지만 내가 슬롯 꽁 머니을 다니는 것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리고 거긴 좋은 곳이라며 안심하셨다. 그보다 더 어린 초등학생시절 나도 모르게 사이비 종교에 빠진 적이 있었기에 할머니는 차라리 슬롯 꽁 머니이 낫다하셨던 것 같다.


교회든 성당이든 그곳이 사이비이든 나는 어딘가에 간절히 의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위안을 얻고 싶었다. 부모에게서 충족되지 못한 슬롯 꽁 머니과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 필요했기에 지나치게 종교에 빠지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어찌됐건 슬롯 꽁 머니 그날로 또래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생부 미사(예배)는 토요일 오후시간이었는데 슬롯 꽁 머니 학교에서 마치자마자 책가방을 던져두고는 성당에 가기 바빴다. 슬롯 꽁 머니 찬양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설교 말씀은 사실 조금 지루해 졸기 일쑤였지만 사실 무엇보다 더 좋았던 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정확히는 언니 오빠들!


나보다 기껏해야 한 두살 혹은 네다섯 살 터울의 언니 오빠들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큰 어른처럼 느껴질 정도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대체로 모태신앙 출신(?)들이었는데 그들의 부모님들은 성당의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학교선생님이거나 아주 신실한 믿음을 가진 듯 해보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자녀들은 나랑은 왠지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우 밝고 선하고 세련됐으며 똑똑하고 조금은 부유해보였다. 슬롯 꽁 머니 그런 언니 오빠들이 참 좋았지만 그와 정반대로 느껴지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조금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슬롯 꽁 머니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좋아했기에 성당에서 하루종일 살 정도로 열심히 기도모임과 미사준비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 당시 학생부 미사 반주는 늘 통기타 두대로 진행되었는데 중학생이던 반주자 언니 오빠들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 인수인계가 필요하다며 나를 불렀다. 나에게 기타를 가르쳐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 동경하던 반주자 자리에 내가 앉을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물론 그 당시 슬롯 꽁 머니 용돈으로는 개인 기타를 살 형편은 안됐기에 당분간 성당에 있는 연습용 기타를 빌려서 배우기로 했다.


마침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레슨을 받게되었다. 웃는 얼굴이 각시탈마냥 반달눈이 되던 천사같이 착한 선배언니와 눈매가 비슷하게 선한 개구지면서도 다정한 그 오빠에게 번갈아 배우게 되었다. 슬롯 꽁 머니 그 시간이 너무 좋아 추운 바람이 새차게 부는 날에도 씩씩하게 성당으로 향하곤 했다.


너무 추워 손이 꽁꽁 얼어도 얼굴이 촌년병마냥 홍당무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차갑고 건조한 손으로 한 시간 내내 기타를 잡느라 손 끝에 피가 나도 그저 좋기만 했다. 피가난 손은 곧 상처가 아물면서 굳은 살이 올라왔고 슬롯 꽁 머니금 딱딱해진 손끝은 오히려 기타를 잡기에 유리했다.


그렇게 피가 나게 연습한 결과 나는 어느덧 반주자 자리에 앉게 되었고 그로부터 슬롯 꽁 머니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흘러 나도 어느덧 인수인계를 해주어야 할 때가 되어 동생들을 내가 아는 한에서 열심히 가르쳐 반주자 자리를 내어주었다.


드디어 스무살이 되어 대학을 갔다. 새내기의 부푼 마음은 대학생활의 꽃인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졌고 단연 슬롯 꽁 머니동아리를 망설임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잘 치는 선배들 사이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지만 그저 선배들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사회에 나와 여러 일을 하면서도 취미생활로 슬롯 꽁 머니와 노래를 틈틈이 연습하곤 했다. 그러다 몇몇 선배들과 노래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우리는 어설픈 실력이지만 버스킹을 하기 시작했다. 노래하다 삑사리도 나고 가사도 까먹고 엉망진창일때도 있었지만 그 시절 그것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그러다 선배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하나 둘 흩어지고 나는 방구석 낭만을 즐기는 신세가 되었다. 혼자서 자취방에서 슬롯 꽁 머니치며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니 뜻밖에도 너무 잘한다며 지인들에게 칭찬을 받곤 했다.


나는 사실 엄청 잘 치는 수준은 아니었고 그저 단순한 코드에 쉬운 주법으로 유행가 몇 곡 정도 치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어린시절 배웠던 슬롯 꽁 머니 손에서 놓지 않았기에 용감하게 버스킹도 하고 과감히 영상을 찍어 올리는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혼과 함께 육아를 하면서 슬롯 꽁 머니 기타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나름 기타를 잘 아는 선배에게 추천받아 좋은 기타를 샀건만 이건 칠 시간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긴 아깝고 이래저래 고민하다 당근마켓에 아주 싼 가격으로 팔고 말았다.


그 당시 사간 사람조차 의아해 할 정도로 좋은 물건을 헐값에 파는 것이 무척 속이 쓰리긴 했지만 육아를 하면서 더 이상 개인적인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처분을 해버렸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아이들은 자란다’는 것이다. 아이둘을 유치원에 보내고 낮시간엔 알바를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 시간, 나만의 취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슬롯 꽁 머니금 떠올랐다.


아이가 자라면서 온전히 엄마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기타를 슬롯 꽁 머니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당근에 팔았던 나의 기타와 같은 것이 또 있을까 하여 당근마켓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마땅한 것이 없었기에 인터넷으로 가성비 좋은 기타를 찾았고 배달의 민족답게 바로 오전에 주문한 기타를 그날 밤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나는 최대한 소리를 줄여 기타줄을 튕겨보았다. 인터넷에서 급히 악보를 찾았고 코드를 짚어보았다. 손이 굳긴 했어도 그럭저럭 코드를 보고 저절로 손이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기타를 손에서 놓은 것이 큰아이 나이만큼이니 딱 슬롯 꽁 머니이다.


나는 7년만에 슬롯 꽁 머니 첫사랑을 만났다.


부드러운 바디의 촉감과 묵직한 나무냄새,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은 나를 무척이나 흥분시켰다. 14살 소녀가 느꼈던 첫사랑의 감정이 슬롯 꽁 머니 되살아났다. 그 시절 추울때나 더울때나 나와 함께 하며 나를 성장시켜 준 이 존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극단적인 비유이지만 마치 잘려나간 나의 신체 일부가 슬롯 꽁 머니 재생이 되는 기분이랄까.


이렇게 슬롯 꽁 머니 나에게 와 준 그대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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