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씽크홀이 생겼습니다
굴곡진 인생에 골절 하나쯤 추가해도 되잖아요?
뼈 붙을 때까지는 슬롯 꽁 머니는 안 해야죠.
딸아이가 침대에 누워 생애 최초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불현듯 생각이 나 조무사 여사님들께 물었는데 너무도 당연하게 슬롯 꽁 머니는 안 된다고 하셨다. 된장.
“선생님, 혹시 그럼 슬롯 꽁 머니는…?”
“한 손으로는 안 되니까 그것도 당분간 쉬는 게 맞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학교 끝나고 피아노랑 슬롯 꽁 머니 하는 걸로 귀가 시간을 맞춰 놨는데 달리기 하다 팔이 부러져서 슬롯 꽁 머니도 피아노도 최소 3주 동안 못 한다니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어머, 큰일 났네. 제 돌봄에 갑자기 구멍이 생겼네요. 이거는 그냥 구멍도 아니고 완전 씽크홀인데…“
결혼을 하셨다면 중학생 고등학생 또래의 자녀가 있을 것 같은 물치실 여사님들께서는 내가 무슨 앓는 소리를 하는 건지 단박에 알아차리셨다.
“애기 학교 끝나고 슬롯 꽁 머니를 못 가는구나?“
“네, 퇴근 시간이랑 맞춰 놨는데 다 나을 때까지 못 가는 거면… 슬롯 꽁 머니코 빨리 수학 학원이나 공부방이라도 알아봐야겠다.”
응급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침대 커튼을 걷고 “야, 너 이제 슬롯 꽁 머니랑 피아노 못 가서 공부방 다녀야 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외치고는 “엄마, 나 붕대에 그림 그려도 돼?”라고 묻는 아이에게 맘대로 하라는 영혼 없는 대답을 던지며 곧장 물리치료실 밖으로 나가 공부방과 수학 학원을 검색했다.
아이 친구가 다니는 공부방으로 상담 전화를 하고, 피아노 원장님, 슬롯 꽁 머니 사범님께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현타가 왔다.나는 썩었다.애가 팔이 부러졌는데 슬롯 꽁 머니 아플지, 슬롯 꽁 머니 불편할지를 걱정할 줄은 모르고 스케줄을 어떻게 해야 할지만 걱정하다니.
3학년이라 집에 혼자 둬도 집을 태워 먹거나 강도한테 잡혀 가는 일은 없겠지만 한 달 가까이 오후에 혼자 둬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긴급 돌봄도 알아봤는데 행정실에서는 그건 코로나 때 하다가 없어졌으며 1, 2학년이 대상이라 해당 안 된단다.
통화를 마치고 될 대로 되라며 터덜터덜 대기실로 들어오다가 물치실에서 막 나오신 조무사 여사님을 마주쳤는데 뭐 좀 알아봤냐고 하시길래 네, 하고 대답했다. 다행히 얼마 후 학교 돌봄 선생님에게 지역 돌봄 센터 연락처를 받았고, 또 다행히 원래는 대기가 있는 곳이랬는데 겨울 동안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줄 알았다.)
사실 이 골절은 한 달 전에 발생했는데, 덕분에 나는 위경련이 왔고 며칠 동안 강제 1일 1식을 하는 럭키한 불상사가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 살이 잘 안 빠지는 줄 알았는데 웬 걸, 못 먹으니까 잘만 빠지더라.) 이상,미혼이고 유자녀인데 괜찮고 싶은 내 이야기의 번외 편 되시겠다.
그리고 슬롯 꽁 머니가 괜찮은지와는 별개로, 나는 정말 괜찮다. 슬롯 꽁 머니의 골절상 같은 건 내 혼인 상태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이미지 출처=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