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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슬프지 않아

에드워드 호퍼 <슬롯 꽁 머니

<소소한 갤러리


첫번째 그림

에드워드 호퍼 <슬롯 꽁 머니





이런 곳에 슬롯 꽁 머니이 살까, 하는 곳에도 집이 있고 슈퍼가 있고 학교가 있다.

어떤 차도 갑자기 기름이 부족할 것 같지 않은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슬롯 꽁 머니를 본 적 있을 것이다. 기름 넣으러 오는 차가 별로 없어, 슬롯 꽁 머니 아저씨도 누렁이도 지루한 표정으로 도로만 바라보고 있는 그런 슬롯 꽁 머니.에드워드 슬롯 꽁 머니(Edward Hopper)가 그린 슬롯 꽁 머니도 딱 그렇다. 깊은 숲을 앞둔 곳에 고립된 채 홀로 불을 밝힌 곳. 호퍼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곳의 쓸쓸함과 고독감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도로변 식당, 버스정류장, 외곽의 모텔. 그래도 그런 곳엔 적어도 하루 혹은 몇 시간은 머무르지만 슬롯 꽁 머니는? 기름만 넣으면 곧장 떠날 곳이 된다.


슬롯 꽁 머니에드워드 호퍼, <슬롯 꽁 머니, 1940, 캔버스에 유채, 66.7*102.2cm, 뉴욕 현대미술관



슬롯 꽁 머니는 20세기 초 뉴욕에서 활동한 애쉬킨 화파(Ashcan school)의 멤버였다. 이들은 도시인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그린 화가들로 도시생활의 어두운 면 까지도 가감 없이 표현했다. 슬롯 꽁 머니가 평생 두 눈으로 좇은 것도 바로 그런 장면들이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 속, 고독함에 절어 있는 개인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슬롯 꽁 머니의 그림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는 그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얻기 때문 아닐까. 외로운 사람의 마음은 외로운 사람이 더 잘 안다는 그런 비논리적인 근거를 굳이 가져와본다. 여기 외로운 나, 저기 외로운 너, 우리 둘은 어쩌면 서로에게 다른 그 무엇보다도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



검정 넥타이에, 정장 조끼까지 걸친 슬롯 꽁 머니의 남자는 하루 종일 뭘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언뜻 보이는 옆모습은 무표정하고 피곤해보인다.저 멀리서부터 차차 어두워지는 숲 속에서 슬롯 꽁 머니의 레몬색 불빛은 밤새 홀로 일렁일 것이다. 차를 몰고 우거진 숲 속을 달리던 누군가는 기름이 그리 부족하지 않은데도 일부러 이 슬롯 꽁 머니에 차를 세울지도 모른다. 뿌연 안개와 함께 곧 짙은 어둠이 덮쳐 올 밤길을이제 한참 더 달려야 하니까. 새벽빛이 밝아올때까지 외로운 여정은 계속될 테니까. 사람의 온기가 옅게나마 느껴지는곳에서 시간을 좀 보내야 그나마 기운을 보충할 수 있겠지. 깔끔한 옷차림을 한 슬롯 꽁 머니 아저씨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얻는 누군가가 있었을 터다..



20세기 초 뉴욕은 상상 이상으로 활기차고 시끄럽고 분주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슬롯 꽁 머니의 마음이 향한 하나의 컷은 어둔 배경 속에 골똘히 서 있는 어느 여자이고 남자였다. 그는 그들을 섬세하게 화폭에 담았다.슬롯 꽁 머니는 내향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따지자면 내면의 소리에 민감한 사람. 슬롯 꽁 머니의 그림은 당시 뉴욕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지만 관조적이거나 차갑지 않다. 내면으로 고요히 침잠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진실함이 그림 속에 따뜻한 온기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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