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나뭇잎이 없으면 겨울이 되었단 뜻이잖아. 겨울이 되어야 슬롯 오지. 난 슬롯 오는게 좋아. 슬롯 오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탈 거야."
그리고 소은이의 바람대로 오늘 드디어 슬롯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 밖으로 슬롯 펑펑 오고 있는 걸 보고
"소은아, 눈 와."라고 소리를 쳤더니 자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왔다.
평소에는 그렇게안 일어나던 애가 이렇게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는 거였나. 아이는 창 밖을 바라보며 기뻐했고,아이가 눈을 보고 슬롯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산 위로 커다란 눈송이가 펑펑 내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그 예쁜 순간이 카메라에는 다 담기지 않아 아쉬웠다.눈으로만 볼 수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
그런데 엄마가 서울에 간 사이, 부녀는 슬롯 내리는 순간을 차곡차곡 담아 예쁜 모양을 빚어냈다.
눈으로 곰돌이도 만들고, 오리도 만들고, 하트도 만들고.남편이 보내온 사진 속에 행복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나도 밖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제는 각자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사실에 새삼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만난 날 낯설어하던 어린 시절의 소은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동안 시간이 이렇게 흘렀음을, 세월이 이렇게 지났음에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아이 곁에 무사히 있으니까.
언젠가 슬롯 오는 게 기쁘지 않을 만큼, 소은이가 커버릴 날도 올 것이다. 어른이 되어 운전을 시작하면눈 슬롯 걸 싫어하는 어른이 될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소은이에게 이 글을 보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