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우연에 우연이 거듭된 사건이었습니다.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원래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고, 저도 다른 아이를 입양할계획이었거든요.
시작은 '생명공감'사이트의 안락사 명단에 오른 ‘스파키’였습니다.어릴 때부터 품어온, 귀가 쫑긋한 테리어 계통의올 블랙 로망견!그렇지만 9개월차의 신혼부부라는 것이, 새 사람, 새 살림에 적응하느라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존재이기에, 몇 일 동안 고민이 계속 됐습니다. 맞벌이 부부, 더욱이18평짜리 좁은 집. 이 집에 혼자 두는 것은 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돌리려던 차에이런 글을 접하게 됐습니다.
“얼마전 만해도 죽음의 문턱에 있던 녀석들입니다. 힘들게 찾은 살길을 위해 함께 도와주세요.”
그런가? 철창보다는 좁은 집이라도 내어주는 편이 나을까? 하루 서너시간이라도 같이 있어주는 것이 나을까?
그제야스파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사를 밝혔으나, 다행히이미 저보다 먼저 결심해주신다른 분께 슬롯 머신 프로그램을 가게 됐더군요.
아쉬움도 잠시, 솔직히말하자면, ‘무거운 짐이 나를 피해 갔구나’하고안심이 됐습니다.
생명공감에서스파키 대신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임시보호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입양이 결정된 아이인데, 2주정도 임시보호를 하면서 예방접종이며 중성화 수술 등을진행해야 한다면서요. 강아지를 입양하느냐 마느냐의 고민을 직전까지했던 터라, 까짓 2주 못 맡을 것도 없다 싶었습니다.
언뜻 사진으로 본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참 못생겼더군요. 헝클어진털, 사시인 것도 같고 심지어 부정교합까지. 너무 못생겨서국내입양은 힘든 게로구나, 하며 2주 정도 임시보호를 하기로했습니다.
보호소시절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
10월 17일, 유난히 더웠던 토요일.
서울역에서처음 만난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케이지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집 앞 동물병원에서 털을 빡빡 밀고 보니, 예상보다 더 못생겼더군요. 심지어불러도 오지 않고, 눕지도 않고, 벽만 보고 꾸벅꾸벅 조는이 뻣뻣한 녀석을 내가 왜 맡았을까, 이왕이면 예쁜 강아지가 좋았을 텐데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저녁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에감정표현이 많이 없는 양반김(남편, 선비 같은 성격의 김씨남자)이 아가 다루듯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안심시키고,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그런양반김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추고, 저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고… 우리셋의 삶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연은 한번 더 일어났습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타기로 한비행기가 2번이나 취소가 되었거든요. 그 사이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바로 입양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보호소에서 가족을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제 겨우 푹신한 잠자리와 가족의 체온에 익숙해진 아이에게 다시철창이라니. 그래서 우리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와 같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미국에는슬롯 머신 프로그램 대신 두 마리의 다른 강아지가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첫날 저녁부터 미국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행이야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무던한 강아지로, 같이 지내기 재미있는 아이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양반김의 구멍난 양말이고, 방구를 뻔뻔하게 잘도 뀌죠. 가끔 산책을 시켜주는것만으로도 엄청 즐거워하고, 퇴근하는 우리를 매일 열렬히 반겨줍니다.
요즘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게 ‘사랑해’라는 단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가 가만히 저에게 기대오거나, 눈을 맞추거나, 머리를 쓰다듬을 때에도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게 한 번, 옆에 있는 양반김에도 한 번. 그럴 때마다, 제 마음속에도 뜨거운 무언가 뭉글거립니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어린 시절을 모른다는 것이 가끔은 아쉽지만, 앞으로더 많은 날들을 함께 하자고 약속하면서 우리는 첫 번째 여름을 뜨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oh!boy'070호 <나의 개 이야기에 실렸던 글입니다.
김현성 작가님 덕분에, 슬롯 머신 프로그램와 함께 즐거운 경험을 하였고 또 근사한 가족사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